국보 상감청자 사발의 바닥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꽃무늬가 컴퓨터 단층촬영(CT)으로 드러났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건국 1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특별전(대고려-찬란한 도전)에 전시중인 국보 제115호 청자 상감 국화넝쿨무늬 완(碗·사발)을 CT 촬영한 결과 바닥에서 국화형태의 꽃무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발 밑바닥에 새겨져있던 꽃무늬 상감. 바닥에 고여있던 유약층 때문에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번 CT촬영 덕분에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분석결과 그릇 내부(0.53㎜)와 외부(0.40㎜) 유약층 두께는 비슷하지만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두꺼워지고(1.00㎜), 내부 바닥에는 아예 유약층이 고여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영범 보존과학부 학예연구사는 “청자 사발 바닥에 고여있던 유약층 때문에 가려져 있었던 꽃무늬 문양을 이번 CT 촬영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도자사 전공자인 강경남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사는 “바닥 꽃무늬는 무늬를 제외한 바닥부분을 긁어내고 백토를 감입한 이른바 역상감 기법으로 새긴 것”이라면서 “국화처럼 생긴 문양이니 국화형 꽃무늬라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유약층이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두꺼워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CT촬영결과.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강경남 학예사는 “이번 촬영을 통해 바닥면까지 역상감(逆象嵌) 기법을 능숙하게 구현했던 고려시대 장인의 기술과 예술의 이면을 읽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 국보 청자상감 사발은 고려 중기의 문인인 문공유(1088~1159)의 무덤(경기 개풍군)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는 6.2㎝이며, 입지름 16.8㎝, 밑지름 4.4㎝의 크기이다. 사발 외부에 국화무늬가, 내부에 넝쿨무늬가 장식돼있다. 바탕면에는 백토로 상감돼있고 청색과 백색의 조화가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사발은 1926년 12월9일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일본인 고미술상인 이케우치 도라키치(池內虎吉)로부터 사들였다. 이때 문공유 무덤에서 함께 출토된 것으로 보이는 지석(誌石)과 중국 도자기 3점과 청자 접시 1점을 일괄 구입했다.
고려 중기 문인 문공유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청자상감 국화넝쿨무늬 사발. 국보 제115호이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묘주인공의 행적을 적은 묘지는 1159년(고려 의종 13년)에 문공유가 사망했음을 적시하고 있다. 따라서 연대를 알 수 있는 완형의 상감청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된다.
강경남 학예사는 “묘지 뿐 아니라 유물의 연대가 비슷하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일괄유물이 문공유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017년 CT 도입 이후 지금까지 100여점의 소장품을 분석했다”면서 “이 촬영 자료를 바탕으로 문화재의 안전성 검토와 제작기술 규명 및 디지털 원형자료를 확보하여 연구 및 전시자료에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족을 달아야겠다.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기사를 쓸 때마다 곤혹스러운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유물검색이다. 보도자료에 표현된 대로 ‘국보 제115호 청자상감 국화·넝쿨무늬 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기위해 박물관 유물검색란에 ‘청자상감 국화·넝쿨무늬 완’을 써넣지만 검색되지 않았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정확한 유물명칭은 한자와 한글을 섞은 ‘靑磁象嵌菊花唐草文대접’이었다. 이 무슨 기묘한 짜깁기 표현이란 말인가.
그리고 ‘당초문(唐草文)’은 바로 넝쿨의 한자어였다. 과연 이래서 누가 알아 볼 수 있겠는가.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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