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렇게 밝고 통쾌한 물건을 낳아 사람들이 이용하니 노인 눈이 아니요 젊은이의 눈이로다. 털끝만큼 작은 것도 볼 수 있으니 누가 이러한 이치를 알아내었나. 바로 구라파의 사람이도다. 저 구라파의 사람이 하늘을 대신하여 인을 행하였도다.”(<성호집>)
실학자 이익(1681∼1763)의 안경예찬론이다. 임진왜란 전후 조선에 들어온 안경은 이런저런 이유로 눈이 침침해진 독서인의 ‘잇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 안경예절이 생겼다. 이규경(1788~?)은 “아무리 눈이 나빠도 존귀한 사람이나 연장자 앞에서는 안경을 써서는 안된다”면서 “안경 너머로 높은 분이나 연장자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 건방지기 때문”이라 소개했다.(<오주연문장전산고>)
심지어는 지존인 임금(정조)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안경을 꺼려 했다.
“내 시력이 점점 이전보다 못해져서 경전의 문자는 안경이 아니면 알아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안경을 쓰고 조정에서 국사를 처결한다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이다.”(<정조실록> 1799년)
정사에는 없지만 헌종(1834~1849)과, 그 당시 권력을 휘두르던 외척 조병구(1801~1845)의 야사가 있다. 조병구는 헌종 임금의 어머니인 신정왕후 조씨의 오빠, 즉 헌종의 외삼촌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조병구가 안경을 쓴채 헌종 임금을 알현했다. 가뜩이나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에 염증을 느낀 헌종은 안경 쓴 조병구의 면전에 “외삼촌의 목에는 칼이 들어가지 않느냐”고 꾸짖었다.
또 얼마후 헌종은 조병구가 안경을 낀채 신정왕후 조씨를 만나고 있는 모습을 또 보고 거듭 책망했다. 연속으로 꾸지람을 들은 조병구가 집에 돌아가 음독자살했다. 물론 정사에는 없는 야사지만 높은 사람 앞에서의 안경 착용이 금기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황현(1855~1910)의 <매천야록>은 “서재필(1864~1951)이 고종을 알현하는 자리에 안경을 쓰고 궐련을 꼬나물고. 뒷짐을 지고 나타나…조정이 온통 분노했다”고 고발했다.
서재필은 “안경을 벗으라”는 궁중 나인들의 제지에도 “나는 미국 시민권을 얻은 외신(外臣·외국관리)”이라며 끝끝내 반들반들한 안경을 쓰고 고종을 만났다. 서재필은 이 때문에 ‘싸가지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이 모두가 옛 문헌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철지난 예절이다. 국내의 안경 착용 인구가 50%를 넘은 지가 언제인데 이런 구닥다리같은 ‘안경예절’이란 말인가.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2016년 안과분야 학술지인 옵살몰로지에 실린 논문은 “2050년 무렵 근시로 안경을 찾는 전세계 인구는 50%선인 48억명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다.
최근 MBC 임현주 앵커가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한 것이 새삼 화제를 뿌렸다.
“‘여자앵커가 안경을 쓰면 안된다’는 사람은 없었지만 (안경 착용으로) 금기를 깬 기분”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다.
남자 앵커의 안경은 허용하고, 여자 앵커의 안경은 금기시했던 우리 안의 묵계가 이토록 뿌리깊었단 말인가. 아직도 여자가 안경을 쓰는 데까지도 용기를 내야 하는 그런 후진적인 사회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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