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4월8일 경주 노서리 215번지에서 밭을 갈던 주민 김덕언씨가 금귀고리·금반지 각 1점과 금구슬 33알을 발견했다.
김씨의 신고를 받고 달려온 일본인 학자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추가발굴에서 나머지 금귀고리 1점과 금팔찌 1쌍 등과 금구슬 44알, 비취색 굽은 옥 1점 등을 더 찾아냈다.
금구슬 77알과 비취옥을 이으니 완벽한 목걸이가 됐다. 여기에 합체된 금귀고리 한 쌍까지…. 무덤 주인공이 차고 있던 장신구 세트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유물의 운명은 얄궂었다.
김씨 수습품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아리미쓰 발굴품은 도쿄제실박물관(현 도쿄 국립박물관)으로 나뉘어 이산가족처럼 보관됐다.
그러다 1965년 한·일 협정 체결로 일본에 있던 유물 반쪽이 천신만고 끝에 돌아왔다. 문화재관리국은 1967년 합체된 금팔찌(454호)·금귀고리(455호)·금목걸이(456호)를 보물로 지정했다.성공적인 이산상봉인 것 같았다.
그러나 금귀고리(455호)에서 문제가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소장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이 제작한 각종 전시도록이나 자료에서 보물 455호를 소개하면서 ‘노서리 215번지 금귀고리’가 아니라 ‘경주 황오동 출토 금귀고리’ 사진을 써온 것이다.
이 엉뚱한 사진이 30년 넘게 학자들의 학술논문에까지 실렸지만 누구도 까맣게 몰랐다.
그러다 2000년 이한상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현 대전대교수)의 논문을 본 일본인 후지이 가쓰오(藤井和夫)가 “다른 사진이 실렸다”고 알려오면서 비로소 밝혀졌다. 후지이는 일제 강점기의 발굴자인 아리미쓰와 친분을 쌓았던 사람이라 노서리 귀고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1967년 보물지정 때 행정착오로 유물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지정은 맞게 했는데 도록 등 자료를 만들 때 엉뚱한 사진을 실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무튼 2009년 뒤바뀐 보물 455호를 처리하기 위해 문화재위원회가 열린 것은 좋았다. 그러나 결론은 희한했다. 이유도 모른채 소박 당했던 노서리 귀고리보다 주인행세를 했던 황오동 금귀고리가 ‘더 화려하니’ 보물의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노서리’는 보물 455호의 지위에서 아예 빠지고 ‘황오동 금귀고리’가 정식으로 안방을 차지했다. 노서리로서는 명예회복은커녕 ‘못생겼다’는 낙인까지 받고 완전히 쫓겨난 꼴이다.
물론 유물 자체만을 보면 황오동 귀고리의 외모가 더 훌륭한 것은 사실이다.
이한상 교수는 “황오동 귀고리의 경우 맨 아래 늘어뜨린 부분이 유례가 드문 펜촉형이라는 점이 돋보인다”면서 “또한 흠집이 전혀 없는 완벽한 조형미를 자랑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노서리 귀고리의 경우 늘어뜨린 밑부분 장식이 통통한 심엽형(나무잎 모양)이어서 시원한 멋이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리가 약간 찌그러진 게 흠이다.
하지만 이교수의 말마따나 문화유물을 외양이나 조형미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유물이 담고 있는 스토리 또한 가치판단의 으뜸 요소가 될 수 있다.
출토 때부터 한국인 반쪽으로 나뉘었고, 서울과 도쿄로 흩어졌다가 천신만고 끝에 해후한 노서리 귀고리의 사연 또한 일제강점기의 기구한 역사를 웅변해주고 있다.
역사성의 측면에서 볼 때 문화유산의 가치는 황오동에 견줘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문화재청은 이제서야 소박데기가 된 ‘노서리 금귀고리’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 줄 모양이다. 노서리(노서동)와 황오동 귀고리의 문화재 가치를 재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아마도 보물 455호의 지위에 ‘노서리 귀고리’를 회복시키고, 그 자리를 점유하고 있던 황오동 귀고리에게는 새 보물번호를 부여할 것 같다.
보물 이름을 뺐다 넣었다 하는게 마땅치는 않지만 늦었더라도 잘못을 고치는 것 또한 용기라 할 수 있다. 노서리 귀고리 처지를 생각해보라. 얼마나 원통한 세월이었겠는가.
말이 나온김에 앞으로 보물로서 명예회복할 노서리 귀고리와 새로운 보물번호를 받게 될 황오동 금귀고리를 특별전시실에서 보고 싶다. 이 또한 훌륭한 스토리텔링 아닌가.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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