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이기환 전국부장·정리 | 임아영 기자
ㆍ“4대강 좀더 겸손했어야 … 광화문광장 ‘과욕’ 반성”
“‘민심을 읽는 데 실패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인터뷰 도중 반성, 소통, 겸손, 대화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이번 선거 결과를 의식한 말이었다. 분명 그랬다. 오 시장은 지난 4년 동안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 그러고도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쉽게 승리할 것이라는 결과가 속속 나오자 선거에서 쉽게 이기리라 생각한 그였다.
힘겨운 선거 결과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터. 첫 재선 시장이란 기록을 남긴 오 시장을 지난 9일 서울시장실에서 만났다. 근소한 표차로 승리해 다소 위축되고 힘들었을 것으로 보였는데 오 시장은 의외로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었다. 예상을 뒤엎는 선거 결과가 오히려 보약이자 채찍이 됐다고 했다.
당선되자마자 들어야 했던 ‘강남시장’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당선을 정치적 의미로 축소시키고 싶은 자들의 표현”이라면서 오히려 “지난 선거에 비해 비강남지역에서 고루 득표한 게 당선에 영향을 줬다”고 해석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진행하는) 프로세스를 겸손하게 했으면 반대가 덜했을 것”이라면서 정부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식 정책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9일 서울시장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선거에서 나타난 표심을 읽고 소통에 중점을 두는 시정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디자인서울 정책 등 시민들과 간극 실감… 공감대 넓히기 노력”
- 어떤 ‘민심’을 읽는 데 실패했다는 것입니까.
“정치공학적으로, 기계적으로 해석할 일은 아닙니다. 지금 각 당에서 선거에 대한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각자 자기 반성을 하면 되겠죠. 저는 제 반성을 하면 되는 일이고요. 민선 4기 때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걸 내걸고 해 왔는데 시민들과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예를 든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디자인서울 정책은 21세기 행정의 요체이자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이지만, 이 정책이 시민들께 전달되는 과정에서 (정책에 대한) 진심이 전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 시장은 도시의 외형에 관심이 있구나’ 하는 식으로 전달돼 그 괴리와 간극이 컸습니다. 시민들께 충분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 광화문광장 같은 경우 ‘과욕’이라는 단어도 사용했는데.
“광화문광장은 역사성을 디자인한 공간입니다. 대부분 시민들이 엄숙한 공간, 역사성이 돋보이는 공간을 원했는데 서울이나 대한민국이 가진 역동성을 보여주자는 뜻에서 스노잼 대회를 열었던 겁니다. 하지만 역사성이 정착되기 전에 역동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으니 ‘과욕’이 아니었나, ‘속도 조절’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시민들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선거 기간 민선 4기 정책이 폄하되면서 제가 폄하·비판의 빌미를 준 게 아니었는가 반성하게 됐습니다. 선거 기간이 오히려 뒤집어 생각할 기회가 됐습니다. ‘시민소통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민선 4기 때 먼저 했더라면 많은 오해를 덜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반성을 할 기회가 됐습니다.”
- 야당 구청장과 야당 시의원, 진보 성향의 교육감에게 둘러싸여 ‘충돌’이 많이 생길 것 같습니다.
“싸움을 붙이지 말아 달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각자 공약했으니 양쪽에서 발목을 잡은 상황이 있죠. 정치적인 세력이 있고,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도 있고, 개인적인 자존심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표현한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마음을 열어놓고 무엇이 진정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행정인지 대화로 풀겠습니다.”
▲ “여소야대 의회와 마음 열고 대화할 것… ‘강남시장’은 오해”
- 광장이 ‘허가제’로 운영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야당 시의원들이 ‘광장 조례’를 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요.
“‘허가’는 이용의 충돌을 막기 위한 의미입니다. ‘허가’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이용 목적’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시민단체 쪽에서는 정치집회를 허용하라는 것입니다. (시의회가 ‘여소야대’로 된 것이)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의회가 열리면 조례를 바꿀 것이고 바뀐 내용으로 광장이 사용될 텐데 국민이 그 모습을 보게 되겠죠. 1~2년이 지나면 무엇이 바람직한 광장 이용인지 국민적 여론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공감대는 탄탄할 것입니다.”
- 차기 대권후보 얘기를 안 할 수 없는데요.
“(대권후보로 언급되는 것에 대해)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일부러 노력합니다. 차기냐, 차차기냐 답변하는 것 자체가 시정을 시장으로서 처리하는 게 아니라 대권후보로서 처리한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4년 마친다고 했더니 4년 마치면 그뒤에는 (대권 도전을) 하겠다는 마음이 있다고 기정사실화되더군요. 전임 시장이 대통령이 되셨기 대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제가 원해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4년 동안 비전과 정책으로 승부하겠습니다.”
- 지우고 싶다고 말했지만 상황이라는 게 지운다고 해서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피하지는 않으실 겁니까.
“(답변을) 유도하지 마세요.”(웃음)
- 차세대 지도자군으로서 ‘4대강 사업’을 어떻게 보십니까.
“4대강 사업은 필요하지만 진행하는 프로세스를 좀 더 겸손하게 했으면 반대가 지금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4대강 사업은 수량과 수질을 확보하는 사업이고 필요합니다. 며칠 전에 박준영 전남지사가 솔직하게 필요하다고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자꾸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대니까 복잡해지는 겁니다. 그러나 민심을 읽는 데 부족했던 점을 생각하면 진행하는 프로세스를 겸손하게 했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자면 절실하게 원하는 두 군데, 낙동강과 영산강만 먼저 골라서 시행을 했다면 반대의 정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랬다면 지역사회에서는 큰 기대와 찬성 분위기에서 시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진행을 보면 1~2년이면 끝나는 사업인데 그렇게 되면 이명박 정부 말기쯤에는 나머지 두 군데 강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이번 지방선거 결과 ‘40대 기수론’이 나왔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편의적인 정치공학적 분류라고 봅니다. 작위적인 분류 방법입니다. 우연히 40대가 많이 당선됐습니다. 시대의 흐름이 그 세대가 전면에 나서도 되는 나이가 됐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운 분석이 아닐까요. 기본적으로 세대별로 구분하는 데 관심이 없습니다.”
- 강남 3구의 ‘몰표’를 받아 당선됐다며 ‘강남시장’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저의 당선을 정치적 의미로 축소시키고 싶은 것이겠죠. 표를 분석해보니 오히려 비강남 지역에서 골고루 득표한 게 당선에 영향을 줬습니다. 2006년 선거 때는 강금실 후보와의 강남 표차가 8 대 2로 앞섰지만 이번에는 그 격차가 줄지 않았습니까. 사실 한 달 동안 경선을 거치면서 재산세 공동과세제도를 도입하고, 비강남 지역에 공원 등 휴식시설을 만들고, 교육 투자도 비강남 지역에 많이 했던 부분을 제대로 평가 못 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정책들로 강남지역에서는 오 시장이 비강남지역에 경도된 정책을 편다고 부글부글했었고요. ‘뺏긴 사람은 기억하는데 받은 사람은 기억 못 한다’고 자조 섞인 얘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선거 결과를 보니까 그 얘기가 틀렸구나 싶었고, 표심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또 이번 선거 기간에 강남·북 균형발전을 저만큼 강조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 복지정책에 대해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서울형 복지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거 기간 중에 복지정책조차 ‘겉치레 복지’라고 폄하했지만 수혜자들은 압니다. 희망플러스통장·꿈나래통장 수혜자가 작년까지 2만명, 올해 말에는 3만명으로 늘어납니다. 복지 패러다임의 변화는 계속될 거고요. 정치적 딱지를 붙일 일이 아닙니다. 그런 변화는 앞으로 더욱 더 가속도가 붙을 것입니다. ‘서울형 그물망 복지’를 씨줄날줄로 엮겠습니다.”
- 경향신문 독자들께 한마디 해 주십시오.
“지지해준 분들이나 지지하지 않은 분들 모두에게 균형 잡힌 시정을 펼치겠습니다. 이 말에 모든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 ‘소통위원회’ 구상 뭔가
야당 구청장·진보교육감과 소통 창구
오세훈 시장은 인터뷰 내내 ‘소통’을 강조했다. 21명의 야당 구청장, 시의회의 여소야대 구도, 진보 성향의 교육감 등 피해갈 수 없는 상대들과 합리적 소통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시민들과 직접 소통할 기회를 많이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런 일들을 ‘시민소통위원회’가 하도록 하겠다는 게 오 시장의 구상이다.
“시민소통위원회는 직접 시민을 찾아가는 형태가 될 겁니다.”
오 시장은 시민소통위를 제대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현장을 찾아가는 시장이 되겠다고 했다.
시민소통위 위원들과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소통하는 게 아니라 학생·2030세대·택시업계·디자인업계 등 수없이 많은 대화 대상들을 직접 만나겠다는 뜻이다.
오 시장은 “지금까지는 민원이 있는 분들을 주로 만났다. 이제는 민원 해결형 소통이 아니라 정책 수립 단계부터 의견을 직접 듣겠다. 소통위원들은 단지 ‘이 시점쯤에는 누굴 만날 타이밍이다’라는 것을 제시하는 매개체 내지 조력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 시장이 이처럼 소통에 큰 비중을 두는 것은 지난 4년간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염두에 둔 데 따른 것이다. 말하자면 ‘불통시장’에 대한 비판을 해소하겠다는 뜻이다. 시민소통위 위원 수와 인적 구성 등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임아영 기자>
■ 오세훈 당선자는
△ 서울 성수동 출생 △ 대일고 △ 고려대 법학박사 △ 변호사 △ 16대 국회의원 △ 민선 4기 서울시장
■ 오세훈 당선자 주요 공약
● 4년간 1조원 투입, 사교육·학교폭력·준비물 없는 ‘3무 학교’ 만들기
● 2012년까지 소득 하위 70% 무상보육 확대
● 365일 24시간 공공보육시설 확충
● ‘서울형 신고용정책’으로 일자리 100만개 창출
● ‘어르신 행복타운’ 5곳 건설, 노인 요양시설 30곳 확충
● 공공임대주택 10만가구 건설
● 서북·서남·동북권 르네상스로 강남·북 불균형 해소
● 저층 주거형태에 아파트 장점을 접목한 ‘서울 휴먼타운’ 조성
● 2020년까지 대학가 인근에 저가 맞춤형 주택 ‘유스하우징(학생복지주택)’ 2000~3000가구 공급
● 광역급행철도 건설
'광역단체장에 듣는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시종 충북도지사 (0) | 2010.06.16 |
---|---|
염홍철 대전시장 (8) | 2010.06.15 |
김두관 경남도지사 (0) | 2010.06.14 |
김문수 경기도지사 (0) | 2010.06.13 |
안희정 충남지사 당선자 (0) | 2010.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