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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자 思來者

옹주의 화장품에 수은·납…거기에 개미 수천만마리까지

(최근 모 방송프로그램에서 화협옹주의 화장법을 방영한 적이 있다. 새삼스레 지난해 10월 썼던 기사를 옮겨본다.)

‘화장품에 탄산납하고 수은은 물론 수천만 마리의 개미가 분리된채 함유된 이유는 무엇일까.’ 2015년 경기 남양주 삼패동에서 영조의 딸이자 사도세자의 친누나인 화협옹주(1733∼1752) 무덤이 발굴된 바 있다. 화협옹주는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 사이 낳은 딸이다. 이 무덤은 화협옹주와 남편 신광수(1712~1775)를 합장한 묘인데, 후대에 남양주 진건면으로 이장하기 전 조성한 것으로 판단됐다. 무덤에서는 영조가 직접 지은 글을 새긴 지석(誌石)과 함께 화장품이 발굴됐다.

화협옹주 무덤에서 출토된 화장용기에서 수천만마리의 개미 유체가 확인됐다. 머리와 가슴, 다리가 잘린 개미유체의 용도는 아직 모른다.|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돌 함 안에서는 화장품 추정 물질이 남은 청화백자합 약 10점과 분채(도자기에 칠한 연한 빛깔의 무늬) 백자, 목제합, 청동거울과 거울집, 목제 빗 등이 나왔다. 이 가운데 19살에 홍역으로 사망한 화협옹주가 발랐을 화장품이 주목거리였다. 그런데 청화백자합 등 도자기 9건과 목합 3건 등 12건의 화장품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우선 원통형 청화백자합에 담겨있던 백색과 적색가루에서 인체에 유해한 탄산납과 수은 성분을 확인했다. 즉 원통형 청화백자합 속 백색 분말은 탄산납과 활석을 1:1 비율로 혼합해 제작한 것이며, 분채 자기에 있던 적색 분말에는 진사(辰砂)를 구성하는 수은과 황이 함유됐다는 것이다. 탄산납은 2200년 전 진시황 시대부터 불로불사의 약이자 피부를 팽팽하고 하얗게 만드는 화장품으로 여겨졌다. 피부에 잘 흡수돼 혈액의 공급을 일시적으로 방해하여 피부를 창백하고 탱탱하게 만들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창백한 미인’을 만드는데 제격이라는 것이다. 수은의 경우 얼굴을 발그스름하게 만드는 효과를 주었기에 화장품으로 사랑받았다.

백색과 적색 가루에서 확인된 납과 수은 성분, 납과 수은은 피부를 창백하게 탱탱하게(납), 혹은 얼굴을 발그스름하게(수은) 만드는 효과 때문에 예부터 화장품 성분으로 활용됐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물론 유독성이 판명된 수은과 납이 화협옹주 화장품에서 나온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발굴된 화장용기에서 나타난 하나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즉 청화백자합 2건에 담겨있는 액체시료 중 하나를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니 황개미종 수천만마리가 머리, 가슴, 배 부분이 분리된 상태로 들어있었다. 왜 엄청난 개미가 들어있었을까. 김호윤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는 “여러 문헌을 뒤졌지만 아직도 그 용도를 모른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선 개미의 ‘톡 쏘는’ 독특한 물질인 개미산을 활용했을 가능성을 두고 분석했지만 용액에서 개미산 성분(13.9ppm)보다 식초성분(초산염·108ppm)이 8배 검출됐다. 김호윤 학예사는 “이것은 개미를 식초에 담갔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미 수천만마리를 담은 이 액체의 용도는 밝혀내지 못했다.

처음엔 꿀과 같은 단 액체를 좋아하는 개미가 몰려들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화협옹주의 무덤은 좀처럼 틈을 찾을 수 없는 회곽묘이다. 회를 발라 조성한 조선시대 회곽묘는 포클레인 삽날에도 끄덕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 개미가 이 회곽묘 안에 들어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협옹주는 개미 성분이 든 화장품을 바른 것일까. 아니면 약용으로 마셨다는 것일까. 그러나 <동의보감> 등 현전하는 의서를 죄다 살펴봐도 개미 성분이 화장품으로 쓰인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