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0자(18) 속히 돌아오라. 모든 것 해결됐다. 그이와 언니는 너를 찾아 헤매고 있다.’
경향신문 1964년 11월 7일에 ‘한 줄 광고’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개구쟁이 시절 이런 광고를 패러디 해서 “000야, 빨리 돌아오라. 아버지 바지(혹은 빤쓰) 줄여놨다”는 등의 농지거리를 나누며 실없이 낄낄 댔던 기억이 새롭다. 돌이켜보면 유치찬란한 농담인데, 무엇이 그렇게 우스웠는지 참….
‘한 줄 광고’를 더 살펴보니 30대 여인의 구혼광고가 눈에 띈다. ‘재혼, 가옥 고급 둘, 건실 남 원함.’
그러니까 재혼을 원하는 이 30대 여인은 ‘고급주택이 2채나 있으며, 건실한 남자를 원한다’는 구혼광고를 낸 것이다. 아마도 숱한 남성들이 이 광고를 보고 도전하지 않았을까. ‘미망인 및 불구자도 가 양복업 박’이라는 알듯 모를 듯한 남성의 구혼광고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만성 임질을 특수 치료한다는 광고와, 요도염 정확치료 광고 등도 보인다. 그러고보니 60~70년대 전봇대에 ‘임질·단소·조루…’와 같은 질병을 치료해준다는 알쏭달쏭한 쪽지광고가 왜 그리 붙어있었는지 모르겠다.
결혼 답례 찰떡을 대할인해준다는 광고도 흥미롭다. 광고는 ‘청첩장과 택시 한 대를 무료제공한다’는 내용과 함께 ‘찰떡 12개 60원’을 50원에, ‘케키 40원’을 50원에 각각 할인준단다.
■‘뻐스 차장(車掌)’ 모집
우연히 들여다본 김에 6~7일 경향신문 광고를 쭉 훑어보았다. 당대의 광고를 보면 그 시대의 사회·생활사를 일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제품 광고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은 탓이리라. 금성이 신발매한다는 ‘고성능 골드표 건전지’가 겨우 눈에 띌 뿐이다. 골드표의 특장은 ‘국내 유일의 충격압출가공에 의한 아연관 사용으로 누액이 완전방지되고 방전이 절대 안되며 라디오용으로 특수배합하여 장시간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1964년 당시 TV수상기 대수는 전국적으로 불과 5만대였다. 절대 다수 사람들은 라디오로 세상과 소통했다. 라디오와 전축을 월부판매한다는 광고가 나올 정도였다. 따라서 라디오에 부착하는 건전지는 필수품이었고, 그래서 그나마 건전지 광고가 게재됐던 것 같다. 라디오에 붙은 건전지에서 흘러나와 늘어붙은 누액을 없애는 것이 최신 기술이었으리라.
광고 가운데 ‘관인 전국자동차차장 양성소’의 ‘합승뻐스 여차장 모집’ 광고를 보라.
‘한달교육 수시입학 입학금 없음, 기숙사 완비, 국졸 이상 16~22살까지의 여자, 신체결함 무 한자, 졸업후 자격증, 전원 취직 책임 알선’
사실 여차장은 배고픈 시절, 동생들은 물론 온 식구들을 먹여살린 ‘우리 누나’였고, ‘언니’였다. 경향신문 1962년 12월 7일자는 ‘인권의 벽지(僻地)를 살핀다’는 제목아래 ‘과로, 천대, 적은 보수에 시달리는 직업’을 소개하면서 ‘뻐스 차장(車掌)’를 으뜸으로 꼽고 있다.
“서울 시내에 하루 760여 대의 뻐스와 2000여 명의 뻐스 차장이 300만 시민의 다리가 되어주고…. 그러나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하루 16~18시간 근무하는 차장의 나이는 16~20세의 소녀들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성으로서 완성할 시기에 있는 시기에~만원 손님들 속에 붐비며 너무나 값싼 보수를 받으면서….”
신문은 “이들의 봉급은 월 800~1000원에 불과하다”면서 인권침해 사례의 으뜸 사례로 ‘뻐스차장’을 꼽고 있는 것이다.
■무서운 병 결핵을 퇴치하라!
당시 신문 광고의 대다수를 차지한 것은 의약품 광고 및 유흥업소 광고와 영화광고였다.
그 가운데 특히 결핵치료광고가 눈에 띈다. 1964년 4월 8일 경향신문 사설을 보면 결핵은 세계 1위의 으뜸 전염병이었다.
당시 전세계적으로 1500만명이 결핵으로 신음하고 있고, 해마다 300만 명이 결핵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특히 한국과 같은 후진국의 발병률은 심했다. 우리나라 인구 중 70%가 이미 결핵에 감염됐고, 결핵환자는 그 중 80만명 이상이었으며 사망자도 1년에 4만명에 달했다. 질병별 사망순위에서 단연 1위를 차지했다.
1964년 11월 6~7일 경향신문 사회면을 보자. 당시 결핵협회 주관으로 40일 동안 극장표에서 1원(이류 이하의 극장)~5원(일류 극장)의 결핵모금기금을 따로 뗐다.
그런데 아세아·화양·동원·남도·천호 등 30개 극장들이 기금 일부를 가로챘다가 적발됐다. 환자들을 위한 기금을 떼어 먹은 극장들의 ‘만행’도 천인공노할 만하지만 결핵이 얼마나 심각한 질병이었는 지를 웅변해주는 기사이기도 하다. 11월 6~7일자를 보면 결핵약 광고가 눈에 띈다.
예컨대 결핵약 ‘에속실’ 광고는 ‘결핵약의 카다란 맹점이요, 또한 숙제로 남아있던 내성(耐性)과 독성 문제를 해결했다’고 선전한다. 광고는 ‘에속실이 항균력과 침투력이 뚜렷하기 때문에 치료기간이 훨씬 단축된다’고 했다. ‘메단짓드’라는 결핵약은 ‘다량투여로 치료기간을 단축시켜키면셔 특히 노쇠약자와 소유아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당시 어린이에게 가장 큰 고민은 회충·요충·촌충·십이이지장충의 퇴치였다. 신학기만 되면 자기 용변을 학교로 가져가서 검사받아야 했던 고역을 치른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회충이 없는 건강한 어린이’라는 광고문구로 시작되는 ‘아스카린’ 광고는 어린이 5명의 얼굴사진을 배경으로 삼아 다음과 같이 선전한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자꾸 마르는 어린이나 안색이 창백하고 자주 병에 걸리는 허약한 어린이는 회충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스카라는 회충·요충·편충을 동시에 없애주는 구충약입니다.”
■송해·박시명, 양훈·양석천, 김영운·고춘자 콤비에 이미자·박재란….
11월 6일자 신문에 게재된 ‘새나라쑈’ 광고가 흥미롭다.
‘성남극장에서 3일간 열리는 ‘만추(晩秋) 특송(特送) 레파토리’라는 문구가 보인다.
‘일류 코메디언 송해, 박시명, 양훈, 양석천, 박재란, 이미자, 최숙자, 김영운, 고춘자…. 여기에 인기절정의 가수 금호동, 천재소녀 (한국측) 박활란·(대만측) 손미령, 김세열 캄보밴드, 박태준과 아리랑 보이스, 銀방울자매….’
이름만 봐도 눈부신 당대 최고 스타들이 ‘새나라쑈’에 총출동하고 있다. 지금도 현역에서 불꽃을 사르고 있는 송해 MC의 30대 팔팔한 시절이다. 만담가인 김영운·고춘자 콤비, 양훈·양석천 콤비는 물론 이미자·박재란, 은방울 자매 등의 이름도 보이고….
캬바레 광고는 또 왜 그리 많았는지…. 서울역전에서 개관할 예정인 ‘궁원(宮苑) 캬바레’의 개업광고를 보라.
‘11월7일 개관, 영업시간 하오 6시부터, 기발행한 초대권 유효. 국내 최초의 완전 분리된 이중무대. 한국 트롬펫왕 이상우와 그 악단, 국내 미희(美姬) 총동원(15인조), 개업축하 특별초빙가수 윤일로. 동반대환영. 땐서 모집.’
광고 중 지금은 표현할 수 없는 ‘미희’라는 표현이 실소를 자아낸다. 그런 미희가 15인조나 총출동한다니….
■신파로 일관된 영화광고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의 사랑을 흠뻑 받는 게 바로 영화인 것 같다.
요즘 1000만 관객을 자랑하는 영화들이 심심찮게 등장하지만,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마땅치 않았던 50~70년대에도 영화는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당시의 영화광고를 보면 마치 변사가 이야기를 풀듯 신파조 일색이다. 60년 전인 1954년 11월 6일 경향신문 영화광고를 보자.
‘푸른 베일-넘쳐흐르는 아름다운 청년을 희생하며 애정과 감동의 눈물로 一生을 보내온 一여인의 눈물의 주옥편, 여성 대망의 名篇-수도극장’
‘창공에 사랑을 싣고-청춘의 달콤한 낭만을 마음껏 즐기는 앵두색 사랑을 창공에 싣고-동도극장’
10년 뒤인 1964년 11월 6~7일 영화광고도 변함이 없다. 국제극장에서 상영중이었던 ‘벽오동 심은 뜻은’이라는 영화 광고를 보라.
‘날이 갈수록 인기 충천 백만독자를 울린 연재소설의 감격을 또 한번 스크린을 통하여 양반제도가 빚어낸 비극 ! 그 곳에 꽃핀 淸純하고 哀絶한 사랑! 운명이라고 하기엔 너무 기구한 사연! 激情과 感淚를 금치못할 이조사극의 결정판. 고교생 이상 입장환영. 신영균·최은희·도금봉·허장강·박암·이예춘.’
명보극장의 ‘아내는 고백한다’라는 영화는 어땠을까.
‘냉혹한 남편과 따뜻한 애인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인의 종말은?’
그러면서 광고는 차범석·조경희·하유상 등 전문가들의 평을 구구절절 달아놓고 있다. 여류수필가 조경희씨는 “우리네 결혼생활에 경종을 울려준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는 평을 단다. 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그런 평을 가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출연배우는 김혜정·김석훈·태현실·김동원·감승호·박암 등이었다,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의 문제를 다룬 ‘여러분의 국도극장’에서 상영된 ‘수색대’ 영화광고를 보라.
‘전 극장가의 인기는 이 한편에 초집중. 울어야 합니까? 웃어야 합니까? 남북이란 비극 속에 우리의 아들과 형제 그리고 남편들은 이렇게 싸우고 쓰러졌다.’
■‘바스-룸에서의 마릴린 몬로의 농염한 자태’
외화 역시 다르지 않았다.
마릴린 몬로가 주연으로 출연한 ‘나이아가라’ 영화(을지극장)의 광고카피를 보라.
‘바스-룸 속에서의 몬로의 염자(艶恣), 나이아가라 폭포의 장엄한 경관, 하사웨이 감독 특유의 써스펜스.’
영화는 그러면서 ‘미성년자 관람 절대불가!’를 외치고 있다. 섹스심볼 마릴린 몬로의 ‘목욕탕(바스-룸) 속에서의 농염한 자태’가 어떻다는 이야기인가. ‘미성년자 절대 관람불가’라는 경고문까지 있으니 더욱 호기심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대학생은 특별할인에 전회 55원이라니….
을지극장의 ‘흑선(黑船)’은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각계의 찬사 신랄하고도 대담한 연출. 무지와 봉건적인 누습이 인간에게 얼마나 불행하고 인간의 진화를 저해하는 가를 죤 휴스톤 감독이 강조하고 있다, 과연 원제 그래도 일본 막부의 야만적인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묘파한 그의 수법은 신랄하고 대담하다. 일반 70원 조조 대학생 55원.’
■만 여성이여! 함께 울어다오!
단성사의 ‘스팔타카스’는 ‘300만의 명화. 국향(菊香), 한상(寒霜)을 꿰뚫고 충천(沖天)하는 화제, 인기! 간장을 애이는 감동의 휴메니티! 당당(堂堂) 구주(九週)도 초성황, 만 여성이여! 함께 울어다오!’라는 카피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일반 100원, 대학생 사병 80원이란다. 출연배우는 ‘카크 다그라스와 로렌스 오리뷔에, 진 시몬스’라면서….
그러니까 영화는 늦가을의 국화향기와 서릿발 속에서도 300만 서울 시민 사이에 화제를 뿌리고 있다는 것이다.
당당 9주이나 초성황을 이루고 있으면서…. 간장을 저미는 감동의 휴머니티를 선사했다니 얼마나 재미있는 영화였을까.
눈에 띄는 영화는 대한극장의 ‘벤허’다. 광고는 ‘고별 로드쇼!’라는 제목아래 아카데미 11개 부문에서 수상했고, 대형 70미리 영화라는 점을 강조한다. 초중고 45원, 대학생·사병 55원이며. 일반은 70원이라 한다.
또 하나의 영화는 중앙극장에서 상영된 ‘폴 뉴만’ 주연의 ‘헏(Hud)’이다.
‘헏은 패륜아? 현대란 새물결 앞에서 낡은 서부를 부수는 사나이! 불효, 불법, 불륜 일삼는 성난 헏 때문에 파트리시아 닐은 64년도 오스카 여수상을 타고…. 노도같은 인파 밀려 흥행 1위.’ 이런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의 문구를 보면 누구든 영화관으로 직행할 생각이 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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