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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BTS의 ‘No.29’ 맑은 종소리…‘슬픈 에밀레종’ 아닌 ‘세계에 울려 퍼진 꽃다운 인연’

‘두~엉! 두~엉!’. 그룹 방탄소년단(BTS)가 지난 3월 내놓은 5집 ‘아리랑’에 의미심장한 곡(?)이 담겨있다. 작곡가의 음악이 아니다. 
771년(혜공왕 7) 완성된 성덕대왕 신종의 종소리와 긴 여음으로만 1분38초 채웠다. 종소리는 6번 트랙 ‘No.29’에 실려있다. 성덕대왕 신종이 ‘국보 29호’(지금 지정번호를 부여하는 제도는 없어졌다)였던 것에 착안했다. 정보없이 종소리를 들은 팬이라면 ‘오디어에 문제가 있나’하고 생경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잘 들어보라. 끊어질 듯 이어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종소리는 '들매'(들을수록 매력)라는 생각이 든다. 예부터 종소리가 100리 밖에서도 들린다'(<신증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고 했다. 

그룹 방탄소년단 BTS가 지난 3월 내놓은 5집 ‘아리랑’에 담겨있는 종소리. 771년 완성된 성덕대왕 신종의 종소리다. 이 종소리는 6번 트랙 ‘No.29’에 실려있다. 성덕대왕 신종이 ‘국보 29호’였던 것에 착안했다. 1962년 12월29일자 대한민국 관보는 성덕대왕신종을 국보 29호로 지정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맥놀이의 조화
높이 3.66m, 무게 18.9t에 달하는 이 성덕대왕 신종의 종소리 비결은 무엇일까. 성덕대왕 신종 만의 맥놀이를 꼽을 수 있다. 
지난 2018년 김석현 강원대 교수가 그 현상을 분석했다. 그러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성덕대왕 신종을 치면 마치 어린아이의 울음 같은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대체 이 무슨 이야기인가. 
맥놀이는 비슷한 두 개의 주파수가 간섭할 때 진동이 주기적으로 커졌다 작아지는 것을 반복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종의 경우 두께의 불균일, 모양의 비대칭성 등으로 종의 각 부분에서 다른 진동수의 소리가 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어나는 현상이다. 성덕대왕 신종은 더 특별한 존재다. 미소한 비대칭성이 절묘한 주파수쌍을 만들어 그 간섭으로 특유의 맥놀이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성덕대왕 신종의 주파수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1000㎐ 범위 내에서 50여개의 고유주파수가 확인된다. 그런데 이 50여개의 주파수가 어느 하나 거슬리는 것 없이 조화를 이루며 은은한 소리를 낸다. 김교수는 “이것이 성덕대왕 종의 ‘천상의 합창’을 빚어냈다”고 설명했다. 

성덕대왕 신종의 기본음은 168㎐, 여음은 64㎐의 고유주파수를 각각 갖고 있다. 기본음(168㎐)은 168.52㎐와 168.63㎐의 두가닥 음파가 한 쌍을 이룬 것으로 측정됐다. 성덕대왕 신종의 맥놀이 주기는 ‘9.1초’라는 것이다. 64㎐(64.07㎐와 64.42㎐)의 여음은 2.86초 간격으로 끊어질 듯 반복되는 것으로 계산된다.

■어린이의 울음  
그 중 성덕대왕 신종은 ‘기본음=168㎐(168.52㎐와 168.63㎐)’, ‘여음(餘音)=64㎐(64.07㎐와 64.42㎐)’의 고유주파수를 각각 갖고 있다.
예컨대 ‘168㎐’는 1초에 168번 떨림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성덕대왕 신종의 기본음(168㎐)은 168.52㎐와 168.63㎐의 두가닥 음파가 한 쌍을 이룬 것으로 측정된다. 즉 두 가닥 음파의 차이는 0.11㎐, 즉 1초에 0.11번 떨림이다. 맥놀이 주기는 주파수의 역수로 정의된다. ‘1/0.11=9.1초’로 계산할 수 있다. 즉 성덕대왕 신종의 기본음(168㎐)의 맥놀이 주기는 ‘9.1초’라는 것이다. 
여음의 경우 두 가닥의 음파 차이는 0.35㎐(64.42-64.07)이고, 역시 맥놀이 주기를 계산하면 ‘1/0.35=2.86초’이다. 즉 여음의 맥놀이 주기는 2.86초이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 성덕대왕 신종의 경우 종을 치면 168Hz의 대표음은 9.1초 뒤 ‘…어~엉…’ 하고 울고는 사라지듯 하다가, 다시 한 번 9.1초 뒤에 약하게 울음을 토해낸다. 더불어 64㎐의 여음은 2.86초 간격으로 끊어질듯 이어지는 맥놀이를 보인다. 마치 살아서 숨쉬는 듯한 종소리다. 그래서 성덕대왕 신종의 종소리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곡을 하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다’는 표현이 성립된다. 

성덕대왕신종은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왕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제작하기 시작했지만, 경덕왕의 아들인 혜공왕이 완성했다.(771) 종은 맨처음 봉덕사에 걸렸다가 조선 세조 때 영묘사로 옮겨졌다. 그래서 종의 이름은 '성덕대왕신종' 혹은 '봉덕사종'으로 일컬어졌다. 하지만 최근까지 '에밀레종'으로 더 유명해졌다.

■0.3%의 오차 ‘스윗 스팟’
또 성덕대왕 신종에는 또하나의 비밀이 숨어있다. 성덕대왕 신종의 당좌(타종 때 망치가 맞는 부분)의 높이가 가장 경쾌한 소리가 나오는 이른바 타격중심에 정확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야구배트나 테니스 라켓으로 공을 때릴 때 ‘스윗 스팟(sweet spot)’에 맞으면 매우 경쾌한 타격이 된다. 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역시 스윗 스팟과 일치해 있는 당좌를 타격할 때 종걸이의 충격이 최소화하고 종소리의 여음 역시 길어진다. 

에밀레종 전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는 물론이고 <동경잡기>나 <세종실록> '지리지', <대동야승> 같은 후대의 문헌사료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에밀레종 전설은 1895년 구한말 선교사인 호러스 앨런이 <코리안 리포지터리>(4월호)에 기고한 ‘서울의 큰 종’에 처음 나온다

이것을 타격중심(종을 칠 때 종걸이 부분의 반작용력이 0이 되는 위치)이다. 타격중심에서 벗어나면 반작용력이 커지고 종걸이가 울려 잡소리가 많이 나게 된다. 측정결과 성덕대왕 신종(높이 3030㎝)의 당좌중심은 종 하단으로부터 846㎝ 높이에 위치해있었다. 
그런데 김석현 교수가 실측한 실제의 당좌중심은 856㎝의 높이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0㎝의 차이가 났다. 종신의 높이(3030㎝)에 대한 값과의 상대적인 오차는 단 (856-846)/3030×100=0.3%였다. 0.3%라면 오차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교사 앨런이 전한 '에밀레종' 전설은 "종을 제작할 때 시주받은 아기를 펄펄 끓는 쇳물에 넣어 비로소 완성했다. 그런데 이후 종을 칠 때마다 희생된 아기가 '어미탓' '어미탓'이라고 원망하는 종소리가 들렸다. 이것이 '에밀레'로 전해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료에 없는 에밀레종 전설 
성덕대왕 신종은 ‘봉덕사종’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종이 완성된 후 걸린 사찰이 봉덕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까지 이 종의 유명한 별칭은 따로 있었다. ‘에밀레종’이다. ‘마치 어린아이의 울음 소리 같다’는 김석현 교수의 표현은 바로 에밀레종의 전설을 떠올린 것이다. 
에밀레종 전설은 여러 버전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줄거리는 하나로 모인다. 즉 1255년 전 신라 장인들은 12만근(실제 18.9t)에 달하는 엄청난 무게의 종을 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주조 과정에서 번번이 종이 깨지고 틈이 생겼다. 결국 어린 아기를 시주받아 펄펄 끓는 쇳물에 던졌더니 비로소 종이 완성되었다. 그 이후 종에서 어린아이의 소리처럼 ‘에밀레’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자신을 쇳물에 던지게 만든 어미를 원망하며 ‘에미 죄’라고 울부짖는 소리라는 것이다. 아기를 시주한 이와 관련해서는 전설마다 조금씩 다르다. 아이를 업고 있던 과부 혹은 종 제작자의 여동생이거나 아이를 업은 노파로 위장한 마녀 등등…. 그런데 ‘에밀레종’ 전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정사에는 일절 보이지 않는다. <대동야승>이나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지역 야담을 모은 <동경잡기>(1669년)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1901년 교육자이자 국어학자였던 호머 헐버트는 ‘종의 영혼’이라는 시를 발표, 앨런이 소개한 한국 종의 전설을 애전한 어조로 읊었다. 헐버트는 "동굴 같은 목구멍에서 나온 것은 종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에미(Emmi), 에미(Emmi), 에미(Emmi), 에밀레(Emmille)’이었다. ‘어머니, 슬픕니다. 오 나의 어머니!’”라 했다.

■‘Ah-mey-la=에미탓’
그렇다면 에밀레종 전설은 언제 생겼다는 건가. 19세기 말 서양인들의 채록에서 처음 보인다. 즉 1895년 구한말 선교사인 호러스 앨런(1858~1932)이 <코리안 리포지터리(Korean Repository)>(4월호)에 기고한 ‘서울의 큰 종(The Big Bell)’에 나온다. 끔찍한 이야기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의 지시로 서울에 큰 종을 제작하려고 전국적으로 구리를 모았다. 그 때 경상도 지방에 구리를 모으러 갔던 관리 앞에 3살 짜리 아기를 업고 있던 노파가 나타났다. 그 노파는 “나에게는 구리가 없고, 이 아이 뿐인데 이 아이라도 데려가라”고 제안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관리는 그냥 그 집을 떠났다. 

‘에밀레종’ 전설을 쓴 선교사 앨런의 글에는 ‘조선의 개국군주 태조 이성계’가 등장한다. 경주 성덕대왕 신종은 에밀레종이 아니라는 얘기다.


서울로 올라온 관리는 이 이상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그 사이 전국에서 금속을 모두 조달한 기술자들은 열심히 종을 제작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금이 생기고 깨졌다. 
보다 못한 태조는 “종을 완성시키면 큰 상급을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어떤 기술자가 ‘아기 업은 여인 이야기’를 꺼내며 ‘그 여인은 마녀가 틀림없으며 그 마녀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종은 계속 깨질 것’이라고 아뢰었다. 태조는 그 아기를 데려오도록 했다. 결국 가련한 아이는 쇳물에 던져졌고, 종은 마침내 완성되었다. 이후 종을 칠 때마다 깊고 풍부한 음색으로 긴 은률을 맞추며 ‘아(Ah)-메이(mey)-라(la)’ 소리를 냈다. 특히 ‘la’ 소리가 길게 울렸다. 이 ‘Ah-mey-la’는 ‘Mother’s fault(어미탓)’라고 하는 소리다. 이것은 쇳물에 던져진 아기의 울음소리다. 

이후 1920년대까지 각종 매체에서 ‘에밀레종 전설’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어떤 글에도 에밀레종 전설이 ‘성덕대왕 신종’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다. 서울 종로 보신각과 평양 종 등에 '에밀레' 전설이 담겨있다.

■에밀레종=서울 보신각종
1901년 선교사이자 교육자인 호머 헐버트(1863~1949)는 <코리안 리뷰(Korean Review)>(1월호)에 매우 인상적인 시 한편을  쓴다.
이름하여 ‘종의 영혼(The Spirit of The Bell)’이다. 이 시에서 헐버트는 ‘종 제작의 어려움과 한 마녀가 아기를 바치는 장면’을 전한다.
“…한 마녀 어미가 아기를 데리고 성문을 통해 들어와 외치네. ‘쇳물에 이 아이를 더하면…종의 깊은 소리를 들은 자는…그 소리를 더 갈망하게 될 것’이라고…아이를 쇳물 속에 던져 넣은 손길은 무자비하구나…그 속에 아이의 생명이 흐르고 있었다…동굴 같은 목구멍에서 나온 것은 종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에미(Emmi), 에미(Emmi), 에미(Emmi), 에밀레(Emmille)’이었다. ‘어머니, 슬픕니다. 오 나의 어머니!’”

대중잡지인 <별건곤>은 1929년 9월27일자에서 ‘오래된 벙어리 종로 인경의 신세타령’이라는 제목으로 “‘종로 보신각 종이 신세를 한탄한다’는 내용을 전했다. 이 잡지는 앨런과 헐버트 등이 전한 에밀레종 전설을 전하면서 “조선조 세조 13년(1467) 보신각종을 제작했을 때의 이야기”라고 못박았다.


헐버트는 특이하게도 ‘에미’ ‘에밀레’ 대목에서 각주를 달았다. 
“종을 쇠가 아닌 나무 막대로 치면 울림 있는 엠(Em) 소리가 난다. 이 소리의 유사성(‘Em과 에미’) 때문에 그 전설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1925년 선교사 엘머 케이블(1874~1949)은 학술지 <왕립 아시아 소사이어티(Royal Asiatic Society)>에 기고한 ‘한국의 옛 종(Old Korean Bells)’에서 앨런(1895)과 헐버트(1901)의 글과 시를 100% 그대로 인용한 ‘에밀레종 전설’을 전했다. 
그런데 앨런과 헐버트, 그리고 두 사람의 글과 시를 인용한 글의 소제목을 ‘경성 보신각종’이라 분명히 기록했다.
그렇다. 앨런과 헐버트가 묘사한 ‘에밀레종’은 ‘경주 성덕대왕 신종’이 아니라 ‘서울 보신각종’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밀레종의 전설에 ‘성덕대왕 신종’이 처음 등장한 것은 매일신보 1934년 10월18일자다. 언론인 류광열이 쓴 '농촌 순례기-경북편'은 조선에 현존하는 최대의 봉덕사종(성덕대왕신종) 전설을 전하면서 "'어밀내' '어밀내' 종소리가 바로 성덕대왕신종을 제작할 때 떠돌았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더듬어 보시라. 기록상 처음으로 ‘에밀레종’ 전설을 쓴 선교사 앨런의 글에는 ‘조선의 개국군주 태조 이성계’가 등장하지 않는가. 
이후 아동문학가(림근수·1907~2003)의 동화 ‘어밀네종’(동아일보 1925년 8월5일)와 ‘평양의 종’(동아일보 1927년 10월10일), ‘보신각종의 인신공양’ 이야기(<별건곤> 1929년 9월27일) 등에서도 ‘에밀레종’ 전설을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글과 기사에서 성덕대왕 신종 이야기는 일절 나오지 않는다. 그 중 월간 대중잡지인 <별건곤> 기사가 특히 인상적이다. 이 기사의 제목은 ‘오래된 벙어리 종로(鍾路) 인경의 신세타령’이다.
즉 ‘종로 보신각 종이 신세를 한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별건곤>은 앨런과 헐버트 등이 전한 에밀레종 전설을 전하면서 “이것은 조선조 세조 13년(1467) 보신각종을 제작했을 때의 이야기”라고 못을 박았다. 1929년까지도 에밀레종 전설은 771년(혜공왕 7) 완성됐다는 성덕대왕 신종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민신보 1941년 2월16일자도 ‘성덕대왕 신종’의 전설을 소개했다. 성덕대왕 신종 제작 기술자의 누이가 자기 아이를 시주했고, 아이의 희생 덕분에 종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완성된 후 종을 치니 ‘어머니! 어머니!’하는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어밀래=성덕대왕 신종
그로부터 5년 뒤인 1934년 10월18일자 매일신보에 의미심장한 기사가 실린다.
언론인 류광열이 쓴 ‘조선에 현존한 최대의 봉덕사종’을 주제로 쓴 이른바 ‘농촌순례기-경북편’을 보라.
“(봉덕사) 종을 만드는데 도무지 완성되지 않아…어떤 여인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지나가는데 ‘무엇이든 이 종을 만드는데 시주하라’ 했다. 그 여인이 ‘나는 이 아이 밖에 없다’ 하고 이 아이를 내놓았다. 그 아이를 종에 넣으니…비로소 크고 아름다운 종이 되었다. 원통하게 죽은 아이는 그 어미를 원망하여 ‘어밀래(엄마 때문에) 어밀래!’ 하고 울다가 그 소리가 그치면 또 원한이 북받쳐 ‘어밀래!’소리를 더 지르며…종소리가 그렇게도 처량하고 또 그치다가는 다시 나는 것이 그 어린아이 원한 때문….”

1930년대 중반 무렵부터 ‘에밀레종=성덕대왕 신종’의 등식이 자리잡았다.그 무렵부터 성덕대왕 신종의 종소리는 해마다 12월31일 제야 행사에서 전국적으로 방송되었다.

류광열의 이 기사는 성덕대왕신종에 에밀레종 전설을 입힌 첫번째 기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또 7년 뒤인 국민신보 1941년 2월16일자는 ‘청년동화’란에 ‘성덕대왕 신종’의 전설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즉 성덕대왕 신종 제작 기술자의 누이가 자기 아이를 시주했고, 아이의 희생 덕분에 종이 완성되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완성된 후 종을 치니 ‘어머니! 어머니!’하는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즉 1930년대 중반 무렵부터 ‘에밀레종=성덕대왕 신종’의 등식이 자리잡힌 것 같다. 그 무렵부터 성덕대왕 신종의 종소리는 12월31일 제야 행사에서 전국적으로 방송되었다.  한성일보 1947년 12월31일자는 “경주 봉덕사 신종은 조선의 완전 자주 독립을 굳게 약속하면서 울렸다. 오늘 이 라디오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귀담아 들어 새해 새로운 맹세를 굳게 다지자”고 촉구했다. 

신라는 502년에 순장 제도를 공식 폐지시켰다. 그런만큼 8세기 중후반 성덕대왕 신종 제작에 아이를 희생시켰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무엇보다 불교에서 종소리는 불음(佛音)이라 한다. ‘부처의 소리’를 내기 위해 사람의 생목숨을 희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부처의 소리에 아기공양?
이 대목에서 한번 검증해야 할 듯 싶다. 혹시 성덕대왕 신종을 제작하면서 인신공양의 행태가 있지 않았을까. 
<삼국유사> ‘탑상조’에 따르면 성덕대왕 신종은 경덕왕(742~765)이 부왕인 성덕왕(702~737)의 명복을 빌려고 황동 12만근을 내려 제작하기 시작한 종이다. 그러나 이 종은 경덕왕의 아들인 혜공왕 7년(771)이 되어서야 완공됐다. 전설처럼 어마어마한 종의 제작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즉 종 제작에 쓰인 12만근의 황동을 녹이려면 최소한 480개 정도의 도가니가 소요된다. 그런데 제대로 종을 만들려면 한꺼번에 끓여 단시간 내에 동시에 부어야 응고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사람 몸에서 배출되는 인 성분이 쇳물 속에 남아있는 산소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기포를 없애주는 탈산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성덕대왕 신종의 명문에는 “여기에 하늘 종을 본떠 만들었네…맑은 종소리는 북방의 산봉우리에까지 울려 퍼지니 듣고 보는 이 모두 신심(信心)을 일으켜 꽃다운 인연을 진실로 심었다”고 새겨져 있다.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아이를 희생시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이의 육신에서 추출될 수 있는 극미량의 인으로 12만근의 황동이 들어간 18.9t짜리 큰 종을 감당할 수 없다. 또 신라는 502년(지증왕3) 순장 제도를 공식 폐지시켰다.
그런만큼 8세기 중후반(771)에 국가 사업(성덕대왕 신종 제작)에 아이를 희생시켰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무엇보다 불교에서 종소리는 불음(佛音)이라 한다. ‘부처의 소리’를 내기 위해 사람의 생목숨을 희생한다는 것은 불교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종에 새겨진 명문(1050자) 중 한 대목을 인용해본다. “여기에 하늘 종을 본떠 만들었네.  사람과 귀신이 힘을 도와  진기(珍器)가 모습을 이루니…맑은 종소리는 북방의 산봉우리에까지 울려 퍼지니 듣고 보는 이 모두 신심(信心)을 일으켜 꽃다운 인연을 진실로 심었구나.”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음반에 등장한 ‘No 29’ 종소리에 담긴 인문학을 전세계 ‘아미’들에게 소개했다. BTS의 노래가 전세계인들에게 꽃다운 인연을 심고 있으니까…. 성덕대왕 신종의 종소리처럼….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참고자료>

김석현,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 <2018 국립경주박물관 학술 심포지엄-성덕대왕신종의 전시 환경>, 국립경주박물관, 2018 

성낙주, <에밀레종의 비밀>, 푸른역사, 2008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 종합조사보고서>, 1999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 타음조사>,  2023

최영성, '신라 성덕대왕신종의 명문 연구-사상성 탐색을 겸하여', <한국철학논집> 제56집, 한국철학사연구회,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