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는 늘 성경이 등장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링컨 대통령의 성경과 트럼프 어머니가 준 성경 등 두 권의 성경을 올려놓고 헌법에 규정된 취임선서를 했다.
그런 뒤 뒤 “주여, 날 도와주소서!(so help me God)”라는 기도문으로 끝냈다.
역시 ‘기독교의 나라답다’고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취임선서 때 성경을 올려놓으라는 법도, 기도문을 외우라는 법도 없다.
취임선서문에는 “미국 헌법을 지지하고 수호할 것을…맹세한다”는 내용 뿐이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이후 굳어진 관행일 뿐이다.
사실 미국은 1802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언급에서 드러났듯 전통적인 정교분리의 나라이다.
“국교를 수립하거나 종교의 자유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교회와 국가 사이엔 분리장벽(a wall of separation)이 세워져 있다.” ‘분리의 장벽’ 발언은 미국 정교분리의 대원칙을 설명하는 용어가 되었다.
1954년 민주당의 린든 존슨 상원의원은 또하나 흥미로운 수정법안을 발의한다.
세금면제혜택을 받는 비영리 종교 및 자선단체가 직·간접적으로 특정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이나 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든 법안이었다.
사실 ‘존슨 수정헌법’의 의도는 순수하지 않았다.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존슨은 비영리단체의 후원을 받는 공화당 경쟁후보진영에서 자신을 ‘공산주의자’라 비방하자 수정법안을 발의했다.
정적의 싹을 자르겠다는 존슨의 앙심에서 비롯됐지만 무사통과됐다.
이때 아무 관계도 없는 교회까지 끼워 넣었다. 그럼에도 공화당 소속인 아이젠하워 대통령까지 이 법안을 무사통과시켰다.
세금면제혜택을 받는 비영리단체가 특정정파에 휘둘릴 우려를 막겠다는데 딱히 반대할 명분도 없었다.
하지만 미국사회가 보수화의 물결을 타는 1980년대 이후 정교분리와 존슨수정헌법은 논쟁의 대상이 된다.
피터 오너프 같은 학자는 “제퍼슨은 분리의 장벽을 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궁극적으로 통합된 지상천국으로서의 공화국을 꿈꿨다”고 거꾸로 해석했다.
제퍼슨이 종교 집회의 방해와 ‘안식일’ 노동행위를 처벌하는 법안들을 발의한 분명한 이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갓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존슨 수정헌법’까지 파기할 것이라 밝혔다.
자신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보수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을 의식한 게 분명하다.
트럼프는 “침해된 종교의 자유를 되살리겠다”고 역설하면서 200년 이상 지켜온 미국의 ‘정교분리’ 원칙까지 허물고 있다. 무엇보다 트펌프가 주장하는 종교의 자유란 무엇인가.
이슬람을 악으로 낙인찍는 종교 국수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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