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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2점 접바둑'이 알파고와 인간의 실력차

지난해 말 홀연히 나타나 세계바둑계를 평정하고 있는 바둑고수가 둘 있다.

둘은 ‘마스터’와 ‘매지스터’의 아이디를 쓰고 온라인 공간에서 60연승을 질주하고 있다.

 

새해들어 인터넷 바둑 사이트인 ‘한큐바둑’이 주최한 온라인 대국에서도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한(박정환 9단·2집반패), 중(커제 9단·불계패), 일(이야마 유타 9단·불계패) 등 3국의 1인자가 ‘마스터’에게 연패했다.

알파고의 바둑대결을 커버스토리로 다룬 과학전문지 <네이처>지.

세계대회 우승경력을 지닌 다른 17명도 일패도지했다.

 

바둑계는 ‘마스터’와 ‘매지스터’가 동일인이며, 그의 정체는 알파고일 것으로 믿고 있다.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을 놀리듯 압도한 지 불과 10개월 지났을 뿐인데 이제는 넘사벽이 되었다.

지난 2일 ‘추정’ 알파고에게 불계패한 박영훈 9단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이제 인간이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토로했다. 중앙의 두터움까지 집으로 계산하는 알파고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실력차가 어떤지 물었더니 ‘선(先) 이상의 차이’라는 말이 나왔다.

바둑에서는 먼저 두는 사람(흑)이 유리하기 때문에 덤(6.5~7.5집)을 상대방(백)에게 지불하고 둔다.

 

그런데 박영훈 9단의 말은 ‘이제 덤없이 선으로 먼저 두어야 그나마 알파고와 비슷한 실력이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커제나 박정환, 박영훈 9단 등이 2점을 깔고 둬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다.

 

아무리 어려운 국면인데도 단 7초만에 두는 실력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문제는 알파고가 하나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알파고가 등장하자 중국은 “바둑 종주국이 서양에 뒤질 수 없다”면서 부랴부랴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중국이 개발한 ‘줴이(절예·絶藝)’와,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인 ‘싱톈(형천·刑天)’도 80~90%의 승률을 기록중이다. 커제(2승5패)·박정환(1승4패) 등도 쩔쩔매고 있다.

 

하영훈 한큐바둑 이사와 손근기 5단 등은 “알파고 등은 정수와 악수, 포석과 같은 인간의 고정 관념대로 두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엉뚱한데 나중에 보면 그것이 신의 한수가 된다는 것이다.

 

3000년 이상 인간이 축적해온 바둑의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있다.

벌써 선~2점 접바둑의 차이가 됐다면 ‘인간의 바둑’은 앞으로 어찌되는가. 모골이 송연해진다. 때마침 인공지능 때문에 2025년이 되면 1600만명이 넘는 이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바둑계부터 시작인가. 남의 일 같지 않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