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보 가운데 유독 다가가기 어려운 문화유산이 몇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천상열차분야지도’입니다.
이 문화유산이 ‘천상행 열차 노선을 그린 지도’였다면 얼마나 쉬울까요. 그렇지 않으니까 문제죠.
국립고궁박물관이 27일부터 새롭게 단장한 ‘과학문화’ 상설 전시장의 문을 열었는데요.
전시장에는 조선 왕실 과학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산 45건을 전시해놓았네요. 이 가운데 압권은 역시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국보)와 <복각 천상열차분야지도>(보물), <천상열차분야지도 목판본> 등 3점입니다.
여기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풀어봅시다. 한마디로 말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석각(돌에 새긴) 천문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품 중 국보 ‘각석(刻石)’은 1395년(태조 3)에 돌에 새긴 천문도이고, 보물 ‘복각’은 그 천문도를 숙종 연간(17세기 말)에 다시 돌에 새긴 겁니다. ‘목판본’은 1571년(선조 4) 태조 때의 ‘각석’을 새긴 목판에 120점 찍어 2품 이상 고위관리에게 하사한 종이본 가운데 1점입니다. 그럼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이름은 어떤 뜻을 품고 있을까요.·
■하늘의 모습을 차례로 배열한 천문도
한마디로 ‘하늘의 모습(천상·天象)’을 ‘차(次)’와 ‘분야(分野)’로 벌려놓은(열·列) 천문도(그림)인데요.
‘차’는 지구에서 볼 때 태양이 움직이는 길(황도)을 따라 관측되는 동양의 별자리를 12개 영역으로 나눈 것을 가리킵니다.
‘분야’는 하늘의 별자리 영역 12차를 그대로 지상의 12개 왕조와 대응시킨 겁니다.
지상의 해당 왕조는 중국 춘추 시대 12개국인 주·초·정·송·연·오·제·위·노·조·진(晉)·진(秦)나라를 가리키는데요.
이처럼 중국의 왕조를 대응시킨 것이 조선의 현실에 맞지 않다고 해서 조선의 땅을 적용시킨 천문도도 남아있답니다.
이러한 우주관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하늘과 땅이 다를바 없다, 하늘의 섭리가 땅에서도 통하고, 땅의 원리가 하늘까지 닿는다’는 이른바 천인감응(天人感應·하늘과 사람, 땅이 연결되어 있다는 유교사상)의 관념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1467개의 별자리가 빼곡히
구체적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들춰볼까요.
모두 290개의 별자리를 1467개의 별을 크고작은 4개의 원 안에 그려놓고 별자리 이름까지 빠짐없이 적었는데요.
가장 바깥의 원 주위에는 28수(달의 공전주기인 27.32일에 따라 북극성을 중심으로 28개 구획으로 나눈 별자리)의 이름을 차례로 기록했구요. 앞서 밝혔듯이 28개 구획의 별자리를 12차로 나눠 지상의 왕조 12개국에 대응시키구요. 바깥 원과 가장 작은 중심원 사이의 공간을 이 28수로 나눈 모든 별자리의 도수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한 가운데 중심원(주극원)에는 1년 내내 관측되는 별들을 표시했습니다. 자미원·태미원·천시원이 모여있죠.
그 다음에는 두 개의 원이 겹쳐있는 형태인데요. 하나는 지구의 적도를 연장한 선입니다. 또 하나의 선은 지구에서 바라봤을 때 태양이 움직이는 길인 황도(黃道)를 나타냈습니다.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돌기 때문에 황도와 적도는 교차되어 움직이죠. 이 두 선을 중심으로 별자리를 관측하면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즉 겨울철에는 황도가 적도 아래로 내려가고, 여름에는 위로 올라오겠죠.
태양이 적도보다 가장 낮게 내려가면 지구에서 가장 추운 겨울의 동짓날이 되고요. 가장 높이 올라가면 가장 더운 하짓날이 되겠죠. 따라서 황도와 적도가 교차하는 두 곳 중 앞의 것은 춘분점, 뒤의 것은 추분점이 됩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죠. 겨울철에는 태양이 낮게, 여름에는 높게 움직이지 않습니까.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아래위에는 천문도와 관련된 다양한 설명문과 그림이 들어있습니다. 천문도 제작 내력과 의미, 제작에 참여한 관원들의 이력, 제작연월일까지 기록되어 있구요.
■미세 조정까지 거친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돌판에 새겨진 것은 조선 개국 직후인 1395년(태조 4)입니다.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새겨진 설명문과 권근(1352~1409)의 <양촌집> 등에 기록된 ‘천문도설’을 중심으로 살펴볼까요.
권근은 “천문도 석각본은 옛날 평양성에 있었는데, 병란 때문에 강물에 빠졌다”고 전제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가 천문도 인쇄본을 한 권 올렸고, 이를 전하(태조·1392~1398)가 보배로 귀중하게 여겨 돌에 새기게 했다”는 겁니다.
이때(1395) 제작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 남송의 ‘순우천문도’(1247)보다는 148년 늦게 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마전까지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각석 천문도로 알려졌는데요. 그러나 후속 연구 결과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물론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의 천문관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따라쟁이’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우선 “천문도를 새기라”는 명을 받은 서운관(천문관)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 그림은 세월이 오래되어, 별의 위치가 달라졌다”면서 “다시 측정해서 고쳐 새겨야 한다”고 건의한거죠.
무슨 말일까요. 지구의 북극점은 고정불변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약 2만6000년이라는 긴 주기를 두고 조금씩 이동한답니다. 이걸 세차운동이라 하죠. 그래서 세월이 지나면서 별들의 위치가 달라지는 겁니다.
서운관은 바로 이런 문제점을 제기했습니다. 오차조정을 위해 나선 이가 천문학자인 류방택(1320~1402)이었습니다.
류방택은 당시 북극에 맞춰 중성(28수 가운데 해가 질 때와 돋을 때 하늘의 정남쪽에 보이는 별)을 면밀하게 계산해서 오차를 조정했습니다. 천문도의 글은 권근이 지었구요. 글씨는 설경수(생몰년 미상)가 썼습니다. 모두 12명이 참여했구요.
■고구려와 조선의 합작품?
류방택이 조정한 옛 별자리는 어느 시대 것이었을까요.
‘평양성의 천문도 돌판이 병란 때문에 잃었다’는 구절이 눈에 밟히죠.
‘평양성의 병란=고구려 멸망시기’를 의미한다는 것이 통설인데요. 연구결과 천문도의 한가운데 보이는 북극성 중심의 자미원 별들은 14세기, 그 밖의 별들은 1세기 무렵의 위치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것이 류방택 등이 조정한 오차입니다.
따라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세기 무렵의 별자리를 새긴, 가장 오래된 석각(돌에 새긴) 천문도라 할 수 있습니다.
멀게는 1400년, 가깝게는 700년의 시공을 초월한 ‘고구려와 조선 천문관’의 합작품이라는 특징도 있구요.
이밖에 중국의 순우천문도와는 다른 요소들이 또 있습니다. 즉 모양이 완전히 다른 별자리가 있는데요. 천주, 상서오, 외주, 팔곡, 팔괴 등의 별자리가 그렇구요. 또 별의 개수와 연결선, 이름이 서로 다른 별자리도 있습니다.
이중 서로의 천문도에는 보이지 않는 별자리(한국 5개, 중국 3개)가 보입니다. 그 중 중국 천문도에는 없는 ‘종대부’ 같은 별자리는 확연히 눈에 띕니다.
무엇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독자성을 짐작할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요소가 있습니다. 별을 새길 때 실제 밝기에 따라 구멍의 크기를 다르게 했다는 겁니다. 즉 밝은 별은 크게, 희미한 별은 작게 그렸는데요. 대표적인 예로 노인성입니다.
-0.7등급인 노인성(커노푸스)는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두번째로 밝은 별입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는 이 별을 엄청 크게 그렸습니다. 분석결과 1467개의 별을 밝기에 맞춰 일일이 그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답니다.
양홍진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장은 “이런 표현은 한반도 청동기 시대 고인돌과 고구려 벽화고분의 별자리 새김 방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중국 천문도에는 없는 표현 방식입니다.
■700년 만에 찾은 천문도의 가치
태조가 조선을 개국하자마자 천문도(‘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에 눈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대 왕조의 군주들은 다른 분야에 비해 유달리 천문학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하늘의 성변을 제대로 관측하는 것은 하늘과 백성의 마음을 제대로 읽는 통치권자의 능력이었으니까요. 민심은 곧 천심이며, 하늘의 조화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곧 백성의 마음을 제대로 읽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개국 후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민심은 전 왕조인 고려를 떠나지 않았고, 왕씨(공양왕) 복위 운동까지 일어났습니다. 여기에 ‘두문동 72현’이 상징하듯 고려의 충신들은 끝내 절의를 꺾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어떤 이가 홀연히 나타나 700여년전 평양성에서 잃어버린 천문도 판본을 바쳤으니 ‘옳다구나’ 싶었겠죠.
유명한 고사가 있죠. 중국 하나라 시조 우임금은 9개국 제후가 바친 청동을 모아 ‘아홉개의 솥(구정·九鼎)’을 만들었는데요.
이 청동솥은 후대 왕조에서 ‘태평성대’와 ‘왕권’의 상징이 되었죠. 성군이 나라를 세우면 그 군주에게 옮겨갔구요.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자취를 감췄답니다. 그런데 춘추전국시대를 지나면서 청동솥 9개 중 8개가 사라졌구요.
단 하나 남은 것조차 사수(泗水·산둥성에 있는 강이름)에 빠졌는데요. 훗날 6국을 통일한 진시황(기원전 247~기원전 210)이 장정 1000명을 동원하여 강바닥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했답니다.
조선 개국 후 ‘천문도’ 역시 그런 ‘왕권’의 상징으로 여겨졌죠. 개국초 민심을 얻는데 어려움에 빠진 태조 이성계로서는 자신이 천명, 즉 하늘의 명을 받은 인물임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때 어떤 이가 나타나 천문도를 바쳤으니 어찌 반색하지 않았겠습니까.
■행방이 묘연해진 국보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숙종 연간인 17세기 말에 다시 새겼습니다. 태조 때 만들어진 돌판이 마모되어 알아보기 어렵게 되자 다시 판각한 겁니다. <연려실기술> ‘천문전고·의상’편은 “1770년(영조 46) 관상감 안에 흠경각을 마련해서 태조 때 제작된 석각본(국보)과 숙종 때 다시 새긴 복각본(보물)을 나란히 옮겨 두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신·구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나란히 보관해두었다는 얘기입니다. 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처음 연구·소개한 이는 평양 숭실학교 교사를 지낸 천문학자 윌 칼 루퍼스(1876~1946)였는데요.
루퍼스는 “동양의 천문관이 집약된 섬세하고도 정확한 천문도”(<한국천문학>(1936년)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실물은 ‘오리무중’이었답니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사라진다는 청동솥, 즉 ‘구정(九鼎)의 고사’가 있죠.
‘천상열차분야지도’도 조선 왕조가 어지러워지고, 급기야 멸망하면서 역시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하지만 실은 등잔불이 어두웠습니다. 사연을 들어볼까요. 일제가 조선-대한제국을 침탈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궁궐을 훼철·유린하는 것이었죠. 창경궁을 박물관과 동·식물원으로 격하했죠. 그때 ‘천상열차분야지도’ 같은 과학문화재들을 창경원으로 격하된 창경궁 명정전(정전)의 툇간 노천에 내놓았던 겁니다.
■창경궁 추녀 밑에 방치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요. 일제강점기 이후 1950년대 말까지 ‘천상열차분야지도’ 등 과학문화재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1960년 무렵 창경궁 명정전 뒤쪽 추녀 밑에 방치된 ‘천사열차분야지도’를 찾은 과학사가 전상운 교수(성신여대·1928~2018)의 회고를 들어봅시다.
“명정전 뒤 추녀 밑은 나들이나 소풍 온 학생과 가족들이 비와 햇볕을 피하기 좋은 곳이었다. 거기에 놓인 두 장의 석판 등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도시락을 펴놓고 앉기에 좋은 장소였다.”
어떻습니까. ‘천상행 열차 노선도’ 같은 이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이렇게 심오한 뜻이 있고, 이렇게 파란만장한 사연을 담고 있는지 아셨죠. 조선 중 후기 문인·학자인 계곡 장유(1588~1633)가 ‘천상열차분야지도’ 인쇄본을 보고 지은 시가 심금을 울립니다.
“한 조각 천문도 기막히게 다 보이네(圖成一片妙堪看)…종이 한 장에 삼라만상 모두 담겨 있는걸(法象都輸片幅看)…사계절 원기 잘 맞추면 태평성대 이루리니(玉燭調元期聖代)….”(이 기사는 양홍진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장의 친절한 설명과 감수를 거쳐 작성되었습니다.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한국과학기술사 과장도 기사를 감수해주었습니다. 김충배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장은 소중한 자료를 보내주었습니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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