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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청와대 대통령과 광화문 대통령

청와대터의 풍수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다.

주산인 북악산은 해발 342m에 불과한 보잘 것 없는 산이다.

그러나 막상 청와대에 서서 북악산을 치켜보면 사뭇 달라 보인다.

배를 쑥 내민채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운 독불장군처럼 오만하기 이를데 없다. 청와대 주인만 되면 ‘나홀로 우뚝 고집을 피우는 듯 서 있는’ 북악산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북악산 모습. 북악산 오른쪽 면을 보면 두 눈과 코가 있는 얼굴형상이다. 그런데 이 얼굴은 청와대를 외면하고 있는 상이다. 게다가 북악산은 엄지손가락을 세우듯 곧추서있는 모습이다. 독불장군의 형세라 한다.

게다가 산의 오른쪽 면은 사람의 얼굴상이다. 그래서 ‘면악(面岳)’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얼굴을 뜯어보면 청와대를 외면한 형상이다.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일제가 용의 목에 해당되는 곳에 총독관저(청와대)를, 용의 입인 경복궁 근정전 앞에 총독집무실(중앙청)을 세움으로써 숨통을 조였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주인들의 말로가 한결같이 불행하자 갖가지 비보책이 등장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서향인 청와대 현관을 남향으로 바꿨다. 기(氣)가 죽음의 방향인 서쪽으로 빠져나간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1년 집무실과 관저를 따로 분리시켰다. 구 청와대가 너무 좁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불길한 풍수를 근본적으로 바꿔보려는 속셈이 컸다.

하지만 현관의 방향을 바꾼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백담사로 유배당했고, 결국 사법처리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무엇보다 관저와 집무실, 그리고 비서동을 200~600m씩 뚝뚝 떨어뜨려 놓은 결과는 끔찍했다. 20여 년 뒤 불통의 청와대가 탄생한 것이다.

따지고보면 청와대터는 고려의 3경 중 하나인 남경의 터전이었을만큼 길지로 꼽힌 곳이다.

그러나 조선초 지금의 청와대터는 임금을 향한 공신들의 충성서약식이 벌어졌던 회맹단으로 바뀌었다.

심지어는 공신의 적장자까지 이곳에 모여 대를 이어 충성할 것을 맹세했다. 주인에 따라 터가 길지에서 흉지로 변한 것이 아닐까.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일성으로 ‘광화문 대통령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대통령이 ‘은둔과 비밀의 정원’ 같은 청와대를 나와 광화문 광장, 즉 민심의 바다로 뛰어든다는 것이다. 기대된다.

‘군주는 배(舟)이고, 백성은 물(水)이라서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순자의 ‘주수군민(舟水君民)’ 고사를 가슴깊이 새겨두길 바란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