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용어 중에 ‘블링크(blink)’가 있다.
‘2초 안에 일어나는 순간판단’을 일컫는데, 직관이나 통찰의 능력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순간판단이 틀릴 때가 있다. 편견과 차별이 눈 앞을 가릴 때이다.
이것을 ‘워런 하딩의 오류’라 한다. 미국 제29대 대통령인 하딩(1865~1923)은 미국 역사상 최고의 미남 대통령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1899년 미정가의 막후 실력자인 해리 도허티는 오하이오주의 지역신문 ‘더 매리언 스타’의 편집장이던 하딩을 처음 보자마자 홀딱 빠졌다.
‘미국 역사를 바꿀 인물’로 여겼다. 능력과 자질 때문이 아니었다. 신의 은총을 받은 듯한 신체와 남자다운 인상, 경쾌한 걸음걸이와 꼿꼿한 자세, 그리고 다른 손님에게 자리를 양보할 때의 정중함까지….
조각미남이라는 뜻의 ‘로마인’ 별명이 붙었다. 어떤 정치적인 기반도 없었다.
등 떠밀려 1920년 공화당 전당대회 출마한 하딩은 6명 중 꼴찌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선두 후보 2명의 치열한 경합으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결국 공화당 계파 보스들은 제3의 선택을 하게 된다.
“아. 하딩이 대통령 후보처럼 생겼잖아.”
때마침 1920년 대통령 선거는 여성참정권이 허용된 첫번째 선거였다.
하딩은 60%의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도허티의 표현대로 하딩이야말로 ‘위대해보이는 대통령’였던 것이다. 이것은 착각이 낳은 미국의 불행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무능과 무관심의 극치, 그야말로 대통령의 깜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시민들은 출중한 하딩의 ‘대통령다운 외모’에 홀려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하딩 스스로 ‘대통령 후보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토로했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지금 시중에 ‘청와대 f4’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조국 민정수석, 임종석 비서실장은 물론 대통령을 지키는 경호원까지 ‘꽃미남 4명’을 일컫는 말이다.
청와대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증세없는 안구복지’니 ‘얼굴 패권주의’니 하는 말까지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못생긴 사람들을 뜻하는 ‘오징어’들은 중용될 수 없는 게 아니냐는 농도 나온다.
물론 웃자고 하는 세간의 말말말에 굳이 정색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와 하딩을 단순 비교할 수도 없다. 한국의 유권자들이 무슨 후보의 얼굴을 보고 표를 찍지는 않았으니까.
다만 ‘청와대 f4’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가지 곁들일 수는 있겠다. 모쪼록 출중한 외모만큼이나 출중한 정치를 펼쳐보이기를 바란다. ‘미남이시네요’라는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올 수 있도록….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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