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주로 원샷 3잔’, ‘무반주 댄스’, ‘신청곡 부르기’, ‘개인기 발사’….
경주 안압지는 신라시대에 조성된 인공연못이다. <삼국사기> ‘본기·문무왕’조는 “674년 궁궐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기록했다. 이곳은 외국사절이나 신하들을 위한 궁중연회장이었다.
지난 1974년. 안압지 준설공사를 벌이던 조사단은 바닥 뻘층에서 유물 하나를 건져낸다. 6개의 사각형과 8개의 육각형으로 된 ‘14면체 주사위’였다. 그런데 각 면에 4~5자의 글씨가 어렴풋 보였다.
■벌주 석 잔을 ‘원샷!’으로…
새겨진 글을 읽어가던 조사단은 무릎을 쳤다. 주흥(酒興)이 고조될 무렵, 주사위를 던져 14면에 새겨진 글 대로 벌칙을 받았던 놀이기구(주령구·酒令具)가 분명했다. 통일신라시대판 ‘복불복’ 게임이었다고나 할까.
먼저 ‘삼잔일거(三盞一去)’. 문자 그대로 술 석 잔을 ‘원샷’하는 벌칙이었다. 이 ‘벌주 삼배’의 전통은 왕희지(王羲之·307~365) 때 시작됐다. 354년 3월, 왕희지 등 당대의 명사 42명이 모였다.
이들은 흐르는 곡수(曲水)에 띄운 술잔이 돌아올 때까지 시(詩)를 짓는 풍류를 즐겼다. 당시 왕희지의 시 한 수.
“~술 한 잔에 시 한편 읊으니 그윽한 감정을 족히 펼칠 수 있다.(一觴一詠 亦足以暢敍幽情)”(<난정기(蘭亭記)>)
그러나 잔이 돌아올 때까지 시를 짓지 못한다면? 당대의 관습대로 ‘벌주삼거굉(罰酒三巨굉)’, 즉 큰 잔으로 벌주 석잔을 마셔야 했다. 이날 42명 가운데 16명이 시를 짓지 못해 벌주 석잔을 마셨다고 한다.(<난정고>
8세기대 신라인들도 그랬을까? 주사위를 굴려(던져) ‘삼잔일거’가 나오면 박수치며 ‘삼잔’ ‘삼잔’를 외치면서 ‘원샷’을 강요했을 지 모른다. 혹시 지금도 유행하는 벌칙인 ‘후래자삼배’의 전통도 예서 나왔을까.
■통일신라판 ‘몸개그’, 야자타임?
이 뿐이 아니다. 14면체 주사위에는 자창자음(自唱自飮·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과 음진대소(飮盡大笑·술잔 비우고 크게 웃기) 등의 벌칙도 있다.
요즘 리얼버라이어티나 토크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다양한 몸개그 벌칙’과 ‘개인기 자랑’도 14면체 주사위에 새겨져 있다. 금성작무(禁聲作舞·노래없이 춤 추기)는 무반주 댄스였다. 반주없는 춤이라. 얼마나 어색했을까.
‘유범공과(有犯空過)’는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참고 가만 있기’다. 그런데 가만…. 이 벌칙은 요즘의 ‘야자타임’은 아니었을까. 반말하며 바득바득 달려들어도 꼼짝 못하는….
또 ‘임의청가(任意請歌)’, 즉 ‘마음대로 노래 청하기’도 수상하다. 이 벌칙은 혹시 ‘신청곡’을 받아 노래를 부르는 벌칙은 아니었을까. 요즘 ‘노래방 풍경’이 연상된다. 아니 ‘도전 1000곡’은 아니었을까.
‘자창괴래만(自唱怪來晩)’, 즉 ‘스스로 괴래만을 부르기’라는 벌칙도 있었다. ‘괴래만’은 술 먹고 노래부르며 밤늦게 휘청거리면서 들어오는 모양이 아닌가. 말하자면 취권 형태의 술버릇을 재현하라는 벌칙이었을까. 양잔즉방(兩盞則放)은 술 두잔을 한꺼번에 비우는 벌칙이었다.
다만 술자리였지만 공영시과(空詠詩過·시 한수 읊기)는 나름 고상한 벌칙이었을 것이다. 아니 흥취의 분위기에 찬물을 쫙 끼얹는 벌칙이었을 지도 모른다.
현대 수학자들이 목제주령구 만드는 법을 재현하고 있다. 이 그림들은 이강섭 교수의 논문 '복제주령구 제작기법 및 수 학교육적 의미'('한국수학사학회지 제19권 제3호', 2006년 8월)에서 인용했다.
별의별 벌칙도 다 있었다. 중인타비(衆人打鼻·여러 사람으로부터 코맞기), 농면공과(弄面孔過·얼굴 간지러움을 태워도 참기) 등…. 이밖에도 주사위에는 당대 신라 생활상을 몰라 해석이 알쏭달쏭한 벌칙도 있다. 월경일곡(月鏡一曲·월경 노래 한 곡 부르기), 추물막방(醜物莫放·더러운 물건이나 벌레를 붙여도 떼지 않기). 곡비즉진(曲臂則盡·팔을 구부려 다 마시기) 등이다.
어쨌든 1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노는 모양이 그렇게 비슷한 지…. 어떨까. 이번 송년회에서 이 ‘복고풍’의 놀이를 한번 즐겨보면…. 지금 내놔도 손색이 없는 ‘리얼버라이어티 복불복 쇼’일 터….
■잿더미가 된 주령구
참, 어처구니 없는 일 하나. 지금 경주박물관에 소장된 14면체 주령구는 ‘정품’이 아닌 ‘복제품’이다. 왜 일까. 사연은 기막히다. 연못 바닥 진흙 속에서 출토된 나무에 강력한 빛을 쬐어 건조하면 뒤틀리고 만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전기오븐 건조였다. 그 때가 1975년 6월19일이었다.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 전신)은 주령구를 자동온도조절장치가 가동되는 특수전기오븐에 넣고 말리고 있었다. 과열되면 전원이 끊어졌다가 낮아지면 다시 연결되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오븐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오븐을 연 보존처리요원은 절망의 끝을 보았다. 주령구가 재로 변한 것이다. 하룻밤 동안 자동전기조절장치가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망연자실…. 1300년 간이나 차디찬 물 속을 굿굿이 견뎌냈던 통일신라시대 놀이도구. 인간의 아차 실수로 그렇게 한 줌의 재로 변한 것이다. 그러고보면 ‘발굴’은 곧 ‘파괴’일 수밖에 없다.
■확률은 모두 1/14
그래도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일이 있다. 14면체 주령구에 담긴 신라인들의 지혜이다.
사실 보통의 14면체 주사위는 정육면체의 8개 꼭지부분을 잘라내 만든다. 각 꼭지점을 이루는 변 세개의 중앙점까지 잘라낸다. 그러면 꼭지를 잘라낸 자리에는 8개의 정삼각형이 생긴다. 원래의 6개 면에는 정사각형이 된다. 하지만 삼각형인 면이 나올 확률이 사각형인 면이 나올 확률보다 상당히 낮다.
삼각형의 면적이 사각형의 면적보다 작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사위로서 좋은 모양은 아니다. 통상 6면 주사위의 확률은 1/6이지만, 준정다면체(14면체와 같은)의 확률은 다르다. 그리고 보통의 14면체 확률은 면적에 비례한다. 사각형면이 나올 확률은 64~65%, 삼각형면은 36~35% 정도가 된다. 주사위로서는 적당치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신라인들이 만든 14면체 주령구는 다르다. 삼각형 면을 더 넓히면서 육각형 면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신라인들은 이렇게 변형시킨 육각형의 면적(6.265㎠)을 기존의 사각형 면적(6.25㎠)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니 14면 각각의 면이 나올 확률이 1/14로 같아졌다. 육각형면이 나올 확률은 육각형 개수(8개)만큼인 8/14, 정사각형이 나올 확률도 정사각형 개수만큼인 6/14가 된다는 것이다.
■케플러보다 1000년이나 앞섰다.
역사상 정다면체를 발견한 이는 플라톤이다. 또 14면 주령구처럼 정다면체를 변형시킨 준정다면체를 발견한 이는 아르키메데스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르키메데스의 원 저서가 소실되면서 아르케메디스의 입체는 구체적인 모양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1619년이 돼서야 케플러에 의해 완전히 복구됐다.
그렇다면 신라는 케플러보다 무려 1000년 전인 7세기대에 정교한 모양의 준정다면체를 만들어 놀이도구로 활용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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