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3년(태종 13년) 병조판서 유정현이 희한한 상소문을 올린다.
“코끼리가 사람을 해쳤습니다. 사람이라면 사형죄에 해당됩니다. 전라도의 해도(海島)로 보내야 합니다.”
사람이 아닌 코끼리를 귀양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코끼리는 일본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모치(源義智)가 바친 동물이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외교선물이고, 게다가 생전 처음보는 신기한 동물이었다.
태종은 이 코끼리를 받아 삼군부(국방부)에서 키우도록 했다.
그러나 코끼리가 문제를 일으켰다. 공조판서를 지낸 이우(李玗)를 밟아죽인 것이다.
이우가 “뭐 저런 추한 몰골이 있냐”며 비웃고 침을 뱉자, 화가 난 코끼리가 사고를 쳤다.
가뜩이나 코끼리는 골치거리였다. 워낙 몸집이 큰 동물이어서 1년에 콩 수백석을 먹어대서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는데, 살인까지 저질렀으니….
코끼리의 유배지는 전라도 장도(獐島)였다.
이것이 <태종실록>에 등장하는 이른바 ‘코끼리 유배사건’이다.
코끼리는 6개월 후 귀양에서 풀려 뭍으로 돌아왔지만 두고두고 골치거리였다.
먹이를 감당할 수 없어 전라·충청·경상도 등 3도의 관찰사가 교대로 키워야 했다. 일본의 쇼군이 조선왕을 골탕먹이려고 일부러 골치아픈 코끼리를 바친 것이 아닐까. 이런 음모론이 제기될 법도 하다.
동남아시아에서는 ‘하얀 코끼리’가 매우 신성한 동물로 추앙받는다. 그런데 옛날 샴(태국)의 국왕은 꼴보기 싫은 신하에게 ‘하얀 코끼리’를 하사했다.
왜 이 신령한 동물을 하필 ‘밉상 신하’에게 주었을까. 이유가 있었다. 하얀코끼리를 하사받은 신하는 그야말로 불면 날아갈세라 만지만 터질세라 지극정성으로 키워야 했다.
어떤 일도 시켜서는 안됐다. 먹이값은 먹이값대로 들지만 경제적인 이득은 하나도 없고, 또 잘 돌보지 못해 코끼리가 죽으면 선물을 준 국왕을 욕보이는 셈이고….
국왕은 결국 미운 신하를 두고두고 골탕먹이고, 결국 파산시키려고 ‘하얀 코끼리’를 슬쩍 하사한 것이다.
‘하얀 코끼리’는 겉은 번드르르하지만 쓸모도 없고, 관리하기도, 처분하기도 어려운 ‘애물단지’를 일컫는 용어가 됐다.
구닐라 린드버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조정위원장은 14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2018년 평창 올림픽 경기장에 ‘하얀 코끼리’가 남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평창 슬라이딩 센터,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아이스하키 경기장의 올림픽 후 활용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콕 찍어 지적한 것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2014년 다른 도시, 혹은 다른 나라와의 분산개최도 고려됐지만, ‘분산개최는 의미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일언지하 반대 때문에 무산된 바 있다.
후회해본들 늦었다. 지금부터라도 머리를 맞대고 활용방안을 찾아야 한다. 시민의 혈세로 키워야 하는 ‘하얀 코끼리’를 보고 싶지 않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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