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 졸업생인 석환(류승완 분)과 성빈(박성빈 분)은 당구장에서 마주친 예고생들이 "공돌이'라 비웃자 '욱'한다. 패싸움이 벌어졌고, 그 와중에 예고생 한 명이 살해된다.
류승완 영화감독의 데뷔작 <죽거나 나쁘거나>(2000년)는 ‘공돌이!’ 소리에 벌인 철없던 시절의 패싸움 때문에 엇갈린 두 친구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소설가 박완서의 작품에도 ‘공돌이’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흥, 제까짓게 유명해봤자 공돌이야.”(<오만과 상상>) 사용례가 웅변하듯 ‘공돌이’는 고약한 비속어다. 이 신조어는 탄생의 배경부터 불순했다.
‘공돌이·공순이의 숨결로 공단 주변의 여관 여인숙이 초만원’이라는 선정적인 주간지 기사가 소개되고, “노동자들을 존경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하필 부를 명칭이 없어 공돌이·공순이로 부르느냐”는 눈물겨운 항변이 보도됐다.(1974년 2월 11일 동아일보)
‘근대화의 기수’니 ‘산업역군’이니 하는 좋은 말로 포장했지만 모두 입발린 소리였다.
가만보면 어릴 적 성적이 좀 떨어졌다 싶으면 어김없이 들었던 핀잔이 있었다.
“기술이나 배워라!”
기술도 아니고, 기술이‘나’라는 표현에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뿌리깊은 관념을 느낄 수 있다.
지금도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공돌이’를 검색하면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와, 공고나 공대를 다니는 남자 학생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반면 문과생의 낮춤말일 법한 ‘문돌이’는 사전에 등장하지 않는다. 없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뉴라이트 사관 등을 두고 “상식 수준의 역사관을 갖고 있지 않지만, 일반적인 공대출신으로서 건국절 문제를 깊이 파악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변호했다.
‘공대 출신에게는 상식 수준의 역사관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히니 과학기술계의 반발은 불보듯 뻔하다.
이 중 “청와대가 이공대 출신을 세상에 관심없는 ‘띨띨한 공돌이’로 만들었다”는 어느 유전학자의 항변이 특히 가슴에 와닿는다.
아무런 철학도, 역사관도 없는 기능인이니 그저 부려먹기만 하면 된다는 것인가. 그래서 그렇지않아도 비하의 뜻인 ‘공돌이’에 ‘띨띨한’이란 수식어까지 붙인 것이다.
게다가 박 후보자가 진화론 등 과학의 본질을 부정하는 창조과학회의 활동이력이 있다는 점도 중대한 결격사유로 꼽힌다. 청와대는 지금 ‘공돌이니까 아무나 괜찮다’고 과학기술계를 싸잡아 하대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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