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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12살 사진으로 그린 50살의 몽타주

몽타주(montage)는 ‘조합한다’는 뜻의 프랑스어(montor)에서 유래됐다.

건축용어였지만 구 소련의 영화감독인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1898~1948)이 무성영화 ‘전함 포템킨’(1925년)에서 영화 편집의 기법으로 정립했다. 즉 따로 촬영한 화면을 떼어 붙여서 새 장면이나 내용으로 만드는 연출방법이다.

예이젠시테인은 1905년 제정러시아 수병들의 반란을 다룬 ‘전함 포템킨’의 ‘오데사 계단 민간인 학살장면’에서 몽타주 기법을 썼다.

예컨대 계단 아래로 구르기 시작한 아기 태운 유모차와, 계단 밑 잔혹한 병사들의 행진을 병치시킴으로써 참혹한 정치상황을 표현했다. 이후 많은 영화감독들이 예이젠시테인의 혁신적인 시도를 오마주했다.  
그러나 대중에게 익숙한 ‘몽타주’는 영화 연출 기법이 아니다. 범죄수사 때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범인의 눈, 코, 입 등 얼굴 각부분을 합성한 범인의 얼굴 사진이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등장하는 범인 몽타주가 오죽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가.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손으로 그리는 몽타주는 어사무사할 수밖에 없다.

1995년 미연방수사국(FBI)이 개발한 컴퓨터 몽타주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역시 한계가 있었다. 예컨대 1999년 9명을 살해하고 ‘내 몸에 악마가 들어있다’고 떠들었던 연쇄살인범 정두영의 몽타주가 그랬다. 목격자 진술로 몽타주를 작성했지만 비슷하지 않았다.

서양인 자료가 입력된 시스템에서 한국인의 얼굴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두영은 결국 국내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작성된 몽타주 덕분에 검거됐다.

요즘들어 30억쌍에 달하는 인간의 DNA 염기서열을 바탕으로 몽타주를 만든다는 외신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그러나 아직 범인의 인종과 머리색, 안색, 가계, 혈통 등만 재현할 뿐이다. 아직 초보단계라는 소리다.
최근엔 한국과학기술원(KIST)이 개발한 3D 몽타주 시스템으로 12살에 실종된 사람을 38년 만에 찾는 성과를 얻었다. 12살 때의 사진을 토대로 주름, 피부색, 얼굴형 등 나이가 들면 바뀌는 변화를 수치화해서 50살의 몽타주로 작성했다는 것이다.(사진)

그 뿐 아니라 900명 분의 ‘무섭다’ ‘인자하다’ 는 등 인상 변화 프로그램도 기계학습 방법에 의해 수치 모델로 만들었다. 달리 말하면 “나이 변화와 표정 변화 프로그램’이라는 두 개의 인공지능(AI)을 개발한 셈이다. 세계 최초라 한다.

무엇보다 얼굴 표정까지 표현하는 인공지능을 만들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컴퓨터 몽타주 역시 ‘터럭 하나 털끝 한 올(一毫一髮)도 다르면 안된다’는 옛 사람들의 초상화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그 초상화 정신이 죽기 전에 잃어버린 아들을 찾고 싶다는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