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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오바마의 일중독, 박근혜의 일중독

진시황(재위 기원전 246~210)은 ‘일중독의 전설’이다. 하루에 결재할 서류를 저울로 달아 정량(120석)이 될 때까지 쉼없이 일을 탐했다.


예로부터 황제가 하루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만가지라 해서 ‘일일만기(一日萬機)’라 했다. 그랬으니 진시황이 만기를 친람했던(萬機親覽) 것이다.

일중독하면 조선조 중흥군주인 정조(1776~1800)를 빼놓을 수 없다. 재해가 일어나면 자신의 침전에 상황판을 걸어두고 백성구휼대책이 제대로 처리되는지 일일이 체크했다. 각 도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를 읽느라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새벽까지 연설문을 작성하느라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오바마 대통령. |김용민 화백

신하들이 “제발 건강 좀 챙기시라”고 통사정하면 “보고서 읽는 것이 취미인데 어쩌겠냐”고 대꾸했다. 정조는 “백성과 조정이 염려되어 침상을 맴도느라 지쳐간다”고 토로하면서도 “문서를 읽으면 아픈 것도 낫는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청나라 옹정제(1722~1735)의 ‘일사랑’도 인구에 회자된다. “밤이면 오히려 정신이 집중되어 수천자가 넘는 상소문을 50~60통씩 읽고 답장을 쓰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고 했다.

그러나 진시황과 정조·옹정제의 만기친람은 완전히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진시황의 경우 남을 믿지못해 정사를 혼자 처리해야 직성이 풀렸던 스타일이었다. 반면 정조·옹정제는 “백성이 배고프면 과인이 배고프고”(정조) “백성들을 다스림은 천명을 받은 황제의 책임”(옹정제)이기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세계 대통령이라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역시 목하 ‘만기친람’ 중이다. 스스로 ‘나이트 가이’(night guy)라 일컫고, 새벽 1시가 넘도록 보고서를 읽고, 연설문을 쓰느라 밤잠을 이루지 못하기 일쑤다.

게다가 의문점이 생기면 참모들에게 ‘아직 안자냐’는 이메일을 보낸다. 백악관 참모들이야말로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달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법하다. 백악관 참모들이 선별한 10통의 시민편지를 읽는 것도 이 때다.

얼마전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회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주무시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100% 일하고 계신다”면서 “그 분의 마음속엔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 외에는 없는 걸로 안다”고 덧붙였다.

지도자의 일중독이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힌 진시황의 일중독인지, 백성(시민)을 위한 정조의 일중독인지 옥석을 가려볼 수 있다. 정조의 한마디가 귓전을 때린다.

“따뜻한 겨울 때문에 얼음이 얼지 않는구나. 과인이 모두 부덕한 탓이다. 죽고 싶은 심정이다.”
지도자가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최소한 이 정도는 돼야 한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