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해동안 우리나라 TV 수상기 보급 증가율은 파천황적이다.”
경향신문 1974년 10월 12일자는 ‘부쩍 는 TV수상기 보급-전국 150만대 돌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TV수상기 증가율을 ‘파천황적(破天荒的)’이라는 표현을 쓰며 놀라워했다.
파천황은 혼돈의 상태(天荒)을 깨뜨리는(破) 천지개벽의 상황을 일컫는다. 기사는 “KBS에 등록된 TV 수상기 대수가 150만대를 돌파했다”면서 “등록되지 않은 음성대수를 포함하면 200만대가 보급됐을 것”이라 전하고 있다. 당시 기사는 “TV 보급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모나코(1위)이며. 미국(2위), 캐나다(3위), 쉬든(스웨덴·4위)이 뒤를 잇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대략 25위로 추산된다”고 추정했다. 기사를 보면 ‘파천황’이 그렇게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970년 33만5000대에 불과하던 TV 수상기 보급대수가 단 4년 만에 5배로 급증했다니까…. 1974년 당시 전국의 가구수가 550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평균 4가구 당 1대꼴이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4년 10월10일 경향신문 기사. 당시 최고 CF스타는 최불암이라는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그 뒤를 신일룡-양정화-전양자-태현실-김옥진-염복순이 따랐다고 전한다. 최불암의 모델료는 단발에 98만원이었다고 한다.
■1974년 최고 인기스타는
이런 분위기는 이미 한 달 전인 74년 9월 18일 기사에서 흘러나왔다. 경향신문은 “TV 세트의 보급이 늘어남에 따라 안방극장 스타 탤런트들의 주가가 날로 높아진다”면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영화스타의 인기를 못따르던 그들이 이제는 완전히 스크린 스타와 치환의 전환점을 이르렀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1974년 무렵에 TV 탤런트의 인기가 영화배우의 그것을 능가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 것이다. 신문은 이어 “TV 탤런트 지망생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면서 ‘좁은 문’을 뚫고 공채로 들어간 3TV(KBS MBC TBC) 탤런트들의 동향과 저간의 사정을 전하고 있다.
기사를 보면 해마다 봄철에 뽑는 MBC의 경우 2500여 명이 응모해서 30명 안팎의 합격자를 추렸다. 합격된 탤런트들은 6개월의 교육을 거쳐 ‘0기생(期生)’이라는 이름의 탤런트 병아리가 된다는 것. 신문은 “병아리 시절의 출연료는 20분물 드라마 1회당 600원인데, 이는 그야말로 교통비 밖에 안된다”고 전했다. 관록이 쌓여 5년이 지나야 비로소 5000원선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탈락자가 생겨 5년이 지나면 4분의 1정도가 중도탈락한다는 것이다.
신문은 1970년 초봄과 가을에 뽑은 2·3 탤런트들 가운데 양정화·박원숙·김민정·문관호(이상 2기), 김영애·염복순·김수미·국정환(이상 3기) 등이 한창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KBS의 경우 딱 한 번 공모를 통해 탤런트를 선발했는데, ‘흑진주’에 출연 중인 김금자가 각광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KBS는 향후 공모절차 없이 매주 일요일에 방송되는 ‘신인탄생’이라는 신인등용문 프로그램에서 기말결선을 거친 탤런트들을 훈련시켜 데뷔시킬 작정이라고 소개했다.
1974년 9월18일자 '경향신문'. TV스타가 영화배우의 인기를 능가하기 시작했음을 알리고 있다. 당시 햇병아리 MBC 탤런트의 개런티는 교통비 정도인 600원이었음을 전하고 있다. 5년이 지나야 6000원의 출연료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최고 CF 스타는 최불암
현재 공모중이라는 TBC의 응모자격은 ‘고졸 이상에 연령제한은 없고, 여고 3학년 재학생도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TBC의 경우 공모 외에도 스카웃 제도를 병행하고 있는데 누구든 직원 눈에 들어 추천되는 신인은 심사위원회 심사를 통해 특채가 결정된다고 했다. 직원 눈에 들면 특채의 길이 열린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선발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스카우트의 방식으로 특채된 탤런트 가운데 ‘어머니’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은 안옥희가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TBC에서 큰 역을 맡고 있는 탤런트 가운데는 오세나와 연운경·김효원 등이 있다”고 했다.
1974년 10월10일 방송프로그램. 지금 봐도 기억나는 레전드 프로그램이 많다. '꽃피는 팔도강산, '딱다구리', '여보 정선달' 등이다.
1974년 당시 광고 모델 중에서 ‘넘버 1’도 탤런트인 최불암이었다. 10월11일자를 보면 최불암은 보험회사 CF에 1번 출연하고 98만원 받았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단발’ 모델료로는 최고액이었다고 전했다. 최불암의 뒤를 잇는 인기모델로는 신일룡-양정화-전양자-태현실-김옥진-염복순의 차례라 했다.
참고로 1974년 10월 10일자에 실린 TV라디어 프로그램을 보면 지금도 기억나는 레전드급 프로그램이 보인다. KBS의 가족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과 TBC의 ‘딱따구리’ 등이다. ‘꽃피는 팔도강산’은 김희갑·황정순 부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을 찾아가는 가족드라마였다. ‘딱따구리’는 ‘에헤헤헤헤~’라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어린이 외화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밖에 그 해 8월15일에 일어난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을 다룬 드라마 ‘조총련’(KBS)과 ‘올 겨울 연탄사정은 어떨까’를 전망하는 ‘경제기상도’(TBC), 백설희의 데뷔시절 에피소드를 곁들여 구성된 ‘스타쇼-백설희 아워’(KBS) 등도 눈에 띈다.
■TV가 라디오를 앞선 그 순간
사실 TV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조짐은 이미 2년 전에 나타났다.
경향신문 1972년 10월과 11월 사이에 실린 방송(TV·라디오) 프로그램을 비교해보면 간파할 수 있다.
즉 10월 31일자 게재된 각 방송국별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라디오와 TV가 같은 비중으로 나란히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11월 1일자를 보면 확 달라진다. 각 사의 TV프로그램이 AFKN과 함께 상단부에 오르고, 라디오 프로그램이 하단부로 깔린 것이다.
라디오의 아성을 뚫고 TV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1972년 11월 1일자 TV프로그램을 보자. TV 방영시간은 ‘오후 5시~밤 11시 이후까지’이며, 아침은 ‘7시~11시까지’다.
먼저 당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TV시대 개막을 재촉한 KBS ‘여로’가 오후 7시30분부터 20분간 방영된다.
다른 KBS 드라마는 ‘이춘풍전’, ‘신부들’ 등이 잇달아 편성됐다. MBC는 ‘임꺽정’, ‘아다다’, ‘선생님’ 등이, TBC는 ‘사모곡’, ‘생명’, ‘여보 정선달’, ‘비밀’ 등이 연속 편성됐다.
가히 드라마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영화로는 ‘보난자’, ‘타이거마스크’, ‘달려라 꾀돌이’ 등이 방영된다.
1972년10월31일 방송프로그램. 라디오와 TV가 같은 비중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래도 라디오였다
라디오 편성을 보면 정겨운 프로그램들이 눈에 띈다.
‘우리의 국군’, ‘젊은이의 행진’(이상 KBS 710㎑), ‘이종환쇼’, ‘전설따라 3천리’, ‘한 밤의 음악편지’, ‘푸른 신호등’(이상 MBC 900㎑), ‘소년극장-손오공’, ‘드라마 일제 36년사’, ‘밤을 잊은 그대에게’, ‘가로수를 누비며’, ‘유쾌한 샐러리맨’(이상 TBC 640㎑), ‘특별수사본부’, ‘밤의 플랫폼’(이상 DBS 790㎑), ‘마음의 문’, ‘꿈과 음악사이’, ‘척척박사’(CBS 840㎑) 등….
‘우랑버리 바나라부릉….’하는 주문과 함께 요술을 부리는 손오공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을 때리고. 숨죽이며 들었던 ‘전설따라 3천리’의 기억도 새롭다.
지금도 눈먼 시어머니에게 지렁이를 먹이던 며느리의 악행을 담은 이야기가 어제의 이야기처럼 생생하다.
또한 달콤한 ‘밤의 플랫폼’,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오프닝 음악이 지금 들리는 듯 하다. 아침에는 ‘푸른 신호등’과 ‘가로수를 누비며’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던 기억도 새롭고….
그러고보니 72년 당시 TV가 없었던 필자로서는 TV가 있는 친구집을 찾아 친구의 텃세를 감수하고 ‘여로’를 숨죽이며 보았던 추억도 떠오른다.
그런 상황이니 여전히 보기 어려웠던 TV보다는 벽돌 모양의 라디오를 노상 틀어놓고 끼고 살았던 기억이 더 생생할 수밖에 없다.
■10월 유신 홍보프로그램
각설하고 다시 방송프로그램을 살펴보니 각 방송국별로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이 집중 편성됐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10월 유신’을 홍보하는 프로그램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KBS의 경우 ‘유신헌법 해설’이 15분간(10시 20분부터) 편성돼있고, 곧이어 ‘통일주체의 형성’을 제목으로 한 보도특집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MBC는 ‘유쾌한 청백전’, 드라마 ‘새엄마’에 이어 ‘새질서의 태동’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이 방영된다.(밤 9시 20분) 10시 30분엔 ‘오늘의 좌표’(새 체제와 한국경제)가 편성됐다.
TBC는 밤 10시 30분부터 ‘유신헌법과 민족의지’를 주제로 특집좌담회를 연다.
10월 유신이란 무엇인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10월 17일 헌법 일부조항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4개항의 비상조치를 포함한 특별선언과 함께 전국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즉 ‘①국회 해산, 정당 및 정치활동의 중지 등 현행 헌법 의 일부 조항의 기능 정지, ②효력이 정지된 일부 헌법조항의 비상국무회의에 의한 수행, ③비상국무회의에 의한 헌법개정안의 마련, ④비상국무회의가 마련한 유신헌법안은 11월 21일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 등이 주요 골자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내건 명분은 이른바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헌정중단을 통한 장기집권을 노린 이른바 유신체제의 출범이었다.
1972년 11월1일자부터 TV가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치고 상단에 자세히 소개된다. TV시대의 개막을 상징하는 것이다. 당시 TV에는 10월유신을 홍보하는 특집프로그램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공전의 흐트를 기록한 '여로'도 방영되고 있다.
■TV프로그램의 민낯
갑작스런 헌정 중단으로 어리둥절한 사람들에게 ‘학습’이 필요했다. 따라서 10월 17일 이후 각 매체를 동원. ‘유신헌법’과 ‘유신체제’를 홍보하는데 혈안이 된다,
지금도 ‘10월 유신체제의 길로 접어들면 번영국가. 다른 길로 들어서면 해골이 우글거리는 낭떠러지’임을 강조하는 홍보 팜플렛이 필자의 뇌리 속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물론 이같은 지속적이고 강압적인 선전홍보전 때문이었을까.. 유신헌법은 국민투표에서 92.9%의 투표율에 91.5%의 찬성률로 통과됐다.
두 달 뒤인 12월 23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놀라운 투표결과가 벌어졌다. 박정희는 이날 총 2359명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전원이 참석, 무효 2표를 제외한 2357명의 찬성표로 제8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기네스북에 나올만한 투표율에, 기네스북에 나올만한 찬성표를 얻어 당선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견고할 것 같았던 유신체제는 9년 만에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으니…. 무리하고 강압적인 체제는 그만큼 사상누각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옛날 신문을 뜯어보고 있노라면 신문이 아주 훌륭한 역사책임을 절감할 수 있다.
어느 순간의 TV프로그램 하나만 곰곰히 들춰봐도 그 시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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