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샘 44호분=10살 소지왕대의 공주, 금령총=5살 지증왕대의 왕자?’
얼마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경주 쪽샘 44호분의 10년 발굴성과를 정리한 시사회를 열었는데요.
2014년 시작된 발굴은 황남대총 조사(1973~75) 이후 40여년만에 진행된 장기프로젝트였죠.
신라의 독특한 묘제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을 완전해체하고 그 전모를 밝혀보겠다는 야심찬 학술조사였습니다.
한 고분을 10년간 발굴한 것도, 발굴현장을 돔으로 씌워 현장을 보호하고, 일반 공개한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신라 공주의 현현
발굴이 진행되면서 노출유구와 출토유물은 건건이 화제를 뿌렸습니다.
2019년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안악3호분·무용총)을 연상케하는 행렬도가 새겨진 도기가 출토되었습니다.
1년 뒤(2020)에는 더욱 엄청난 유물이 쏟아져 나왔죠.
금동관(1점)·금드리개(1쌍)·금귀고리(1쌍)·가슴걸이(1식)·은허리띠 장식(1점) 등 장신구 세트가 주인공이 착장한 그대로 노출되었습니다. 고분의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돌무지의 규모(16~19m)가 금관총(20~22m)·서봉총(16~20m) 등 왕릉급 고분과 맞먹을 정도거든요. 돌무지의 무게가 5t 트럭 198대분(992.41t)에 이릅니다.
게다가 금동관에 매달린 순금의 드리개 장식은 ‘왕릉이 확실한’ 황남대총 남분에서 보입니다.
쪽샘 44호분의 출토품은 한결같이 ‘아담사이즈’였습니다. 금동관의 높이(23.2㎝)와 지름(15㎝)가 그렇습니다.
황남대총 북분(높이 27.3㎝, 지름 17㎝)·금관총(27.7㎝, 19㎝)·천마총(32.5㎝, 20㎝·이상 금관) 등에 비해 상당히 작은 편이고요. 출토된 허리띠의 좌우 폭(34㎝) 역시도 ‘스몰사이즈’입니다. 여성의 표지유물인 은장도도 출토됐습니다.
그래서 2020년 당시에는 주인공을 ‘150㎝ 안팎의 공주’로 추정했습니다.
공주 추정 인물의 발치 쪽에서 확인된 바둑돌 860여점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매우 특이한 케이스였죠.
저도 각종 문헌 및 고고학 자료를 공부해가며 ‘신라 바둑공주의 존재 가능성’을 기사로 작성한 바가 있습니다. 지난해(2022) 4월에는 발굴 현장에서 ‘천년수담-신라바둑 대국’ 행사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신라 공주의 헤어스타일
이런 ‘발굴 히스토리’가 있었는데요. 요 며칠전 10년의 발굴을 끝내고 성과를 총정리한 시사회가 열린겁니다.
그동안 출토된 유물을 보존처리해서 완벽하게 복원한 결과물이 눈에 띄더군요.
그중 ‘비단벌레 꽃잎장식 직물 말다래’가 돋보이더라고요. 엄청 화려합니다. 그러나 복원품을 보면 175개의 금동달개가 들뜬채(튀어나오게) 매달려 있습니다. 생전에 말을 타면서 밑에 깔아둔 실용품은 아니었다는 얘기죠. 각종 유물에 사용된 직물의 복원품도 화려합니다. 붉은색, 보라색, 노란색 3가지 색상으로 무늬를 만든 삼색경금(三色經錦)이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롭게 밝혀낸 연구 성과 중 으뜸은 역시 ‘주인공’ 이야기라 할 수 있어요.
우선 금동관 주변에서 폭 5㎝ 가량의 머리카락 다발을 확인했습니다. 분석결과 황(S)성분이 검출됐고, 주변에 두개골 조각을 확인했습니다. 헤어스타일도 파악했습니다. 1cm 내외 두께로 모발을 모아 직물로 감거나 장식한 흔적으로 보입니다.
또 2020년에는 주인공(신라 공주)의 키를 150㎝ 정도로 추정한 바 있는데요. 당시에는 장신구의 착장 상태로 얼추 계산한 건데요. 이번에 목관 바닥 등을 정밀조사해서 주인공의 키를 130㎝로 수정했습니다. 출토 유물의 크기 등을 종합한 결과 나이는 ‘10세 전후’로 추정했습니다. 쪽샘 44호분의 주인공은 ‘5세기 말 사망한 10세 가량의 신라공주’로 특정된 겁니다.
■불현듯 소환되는 5살 왕자
‘10세 신라공주’라는 대목에서 불현듯 떠오른 경주 고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금령총입니다.
이 고분의 주인공은 ‘6세기초 사망한 5살 가량의 어린 왕자’로 추정됩니다. 금령총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 발굴됐는데요.
놀라운 유물이 쏟아졌습니다. 금관을 비롯해 귀고리·허리띠·목걸이·팔찌 등 순금제 장신구가 보였습니다. 말탄 인물상(기마인물형 도기)(국보)도 2점 나왔습니다. 또 금관총(1921년 발굴)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금방울(금령)이 출토됐습니다.
그래서 이 고분에 ‘금령총’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렇다면 ‘금령총=5살 어린 왕자’로 특정한 근거가 뭘까요.
우선 신라 고분 주인공의 성별은 주로 ‘귀고리와 칼’의 착장여부로 판단합니다.
일반적으로 ‘가는고리 귀고리-큰 칼=남성’, ‘굵은고리 귀고리-작은 칼(은장도 등)=여성’으로 추정합니다.
금령총 주인공의 머리쪽에는 ‘가는고리 귀고리’가, 허리춤에는 ‘장식달린 둥근고리 큰칼’(환두대도)이 보였답니다.
그래서 남성으로 추정한 겁니다. 금령총 주인공의 나이는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주인공이 누워있던 자리에서 노출된 각종 장신구로 몸집을 추정할 수 있죠. 쪽샘 44호분처럼….
그러고보니 ‘머리(금관의 장식 끝부분)-허리-발(발찌 추정 구슬)’을 잇는 장신구의 간격은 90㎝를 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의 키가 90㎝ 안팎이었다는 겁니다. 금관의 크기도 작았습니다. 주인공이 착장한 금관 지름(15㎝)이 다른 고분의 출토품(천마총 20㎝, 금관총 19㎝, 서봉총 18.4㎝)보다 작았습니다. 머리통이 그만큼 작았다는 겁니다.
금령총의 금허리띠를 봐도 그렇습니다. 허리띠의 ‘꾸밈 쇠붙이’가 23점에, 길이는 74㎝ 정도인데요. 천마총 금허리띠(과판 44점, 길이 125㎝)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편이죠. 천마총은 왕 혹은 왕족인 성인 남성으로 추정되거든요.
그렇다면 천마총과 비슷한 시기(6세기초) 조성된 금령총이 어린 나이에 요절한 왕자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여기에 90㎝ 정도의 키를 토대로 나이를 추론해볼까요. 2001년 경기 양주에서 17세기 중엽 미라 한 구가 발굴됐는데요.
미라 신장은 99.4cm, 치아로 측정된 연령대는 5.5세 전후로 밝혀졌습니다. 물론 시대에 따라 환경은 달라지겠죠.
그러나 금령총 주인공의 키(90cm)라면 5~6살 무렵의 왕자로 추정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순장이 있고(금령총), 없고(금령총)
심현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가 정리한 자료를 토대로 10살 공주(쪽샘 44호)와, 5살 왕자(금령총)의 무덤을 비교해볼까요. 두 고분은 340m 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무덤 조성 시기는 대체로 ‘5세기말(쪽샘 44호)’와 ‘6세기초(금령총)’로 추정됩니다.
출토 토기류와 금관(금동관)의 양식 등으로 가늠해본 연대입니다.
무엇보다 연대를 가르는 극적인 지표가 있는데요. 순장 유무입니다.
<삼국사기>는 “502년(지증왕3) 국법으로 순장을 금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금령총에는 순장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쪽샘 44호분에서는 5~6명이 희생된 것 같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옆자리에 공백이 있었는데요. 거기서 귀고리가 보였습니다. 누군가 순장된 흔적이죠.
생전에 주인공을 키우거나 돌본(모신) 유모(혹은 보모)나 시종(시녀)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머리맡 석단에서도 금귀고리 등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다른 순장자의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쪽샘 44호의 주인공이 조금 더 살아 502년 이후에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5~6명이라는 아까운 인명이 ‘순장’이라는 야만적인 풍습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겠죠. 주인을 위해 속절없이 따라죽어야 했을 가련한 순장자들의 비명이 들리는 듯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소지왕의 딸과 지증왕의 아들
‘10살 공주’와 ‘5살 왕자’가 어느 임금의 자녀였는지 특정할 수 있을까요. 백제 무령왕릉처럼 “내가 무령왕이요”하는 명문 지석이 나왔다면 또 모르죠. 그러니 100% ‘누구의 왕자, 공주’라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쪽샘 44호분이 5세기말 조성되었다면 그 시대를 다스린 임금이 누구냐, 그 분은 소지왕(재위 479~500)입니다.
5세기 후반 21년이나 신라를 다스렸다면, 쪽샘 44호분은 소지왕대의 공주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금령총의 주인공, 즉 ‘5살 왕자’는 누구였을까요. 순장제도를 국법으로 금한 지증왕(500~514)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증왕이 순장제를 없앤 뒤 시범케이스로 단 한사람의 희생자도 없는 무덤(금령총)을 조성했을 수 있습니다.
■사고사한 5살 왕자, 병사한 10살 공주
또하나 의미심장한 착안점이 두 고분에 있다는군요. 즉 금령총 주인공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었을 가능성이 있고요.
반면 쪽샘 44호분의 10살 공주는 그래도 죽음을 준비할 시간 여유를 갖지 않았을까, 즉 병으로 죽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2018년부터 금령총을 재발굴했는데요.
그 결과 경주에서 가장 규모가 커서 왕릉이 분명한 봉황대(고분)와 기존에 조성된 고분 2기 사이에 금령총을 비집고 끼워 넣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상하죠. 지름 30m에 이르는 고분(금령총)을 왜 그 비좁은 틈에 굳이 ‘입주’시켰을까요.
게다가 그 정도 규모의 돌무지덧널무덤이라면 돌무지를 조성할 때 무너지지 않도록 나무 기둥 시설을 박아놓는데요.
그러나 금령총의 경우 그런 기둥시설이 없었습니다. 급히 조성했다는 의미입니다.
혹시 금령총 주인공, 즉 어린 왕자의 예기치 않은 죽음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즉 봉황대의 주인공(소지왕?)이 사랑했던 왕자(정궁의 소생이든 후궁의 소생이든)가 갑작스럽게 죽자 자식사랑을 듬뿍 담아, 최고의 예우를 갖춰 장례를 지내준 것일 수 있답니다. 기존에 조성된 127-1, 127-2호의 앞에 끼워넣을 만큼….
반면 쪽샘 44호분은 주변의 고분과 중복없이 안정적으로 조성되었는데요. 비록 10살 안팎의 어린 공주였지만 죽음을 맞이할 시간이 좀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병사한 것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정해진 엄격한 매뉴얼에 따라 무덤을 조성하고 유물을 차곡차곡 쌓은 흔적이 역력합니다.
■바둑돌과 돌절구
같은 왕자·공주라도 신분은 왕자가 더 높았을까요.
5살 왕자(금령총)는 금관을, 10살 공주(쪽샘 44호)는 금동관을 쓰고 나왔으니까요.
또한 두 고분의 ‘시그니처 유물’도 흥미롭습니다.
쪽샘 44호분의 경우 앞서 밝힌 ‘행렬도 토기’와 ‘바둑돌’, ‘비단벌레 장식 말다래’, ‘1500년전 머리카락’, ‘삼색 직물’ 등을 꼽을 수 있는데요. 이중에는 10세 공주 무덤에서 출토된 다소 의외의 유물인 ‘바둑돌’이 눈에 띕니다.
요즘 세계바둑계를 풍미하고 있는 최정 9단이 연상되는데요. 신라판 ‘최정 9단’이라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하잖아요.
발굴단에서 ‘미는’ 유물이 더 있는데요. 그것이 돌절구와 공이입니다. 돌절구는 황남대총 남분에서도 출토예가 있는데요.
물론 돌절구의 크기와 함몰부의 용량으로 보아 상징적 의미로 부장되었을 가능성이 짙습니다.
그러나 약제를 조제하는데 사용한 약용 절구였다면 어떨까요. 결국 병 때문에 죽은 어린 공주를 위해 생전에 약제를 조제할 때 사용했던 절구와 공이를 묻어준 것이 아닐까요.
■기마인물형 도기의 모델
5살 왕자의 무덤인 금령총은 어떨까요. 첫번째 특징적인 유물이 금령, 즉 금방울입니다.
금방울은 주인공의 허리춤에 매단 것과 금관에 달린 것, 두 종류가 출토되었는데요.
금관의 금방울은 금띠를 두 번 돌린 뒤 가운데를 유리로 마감했습니다. 흙방울도 10점 정도 확인됐습니다.
10점 모두 위 아래를 관통하는 구멍이 있었구요. 그 속에 소리를 내는 용도의 흙 구슬이 들어 있었습니다.
주인공인 5살 어린 왕자가 흔들고 놀았던 금방울, 흙방울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금령총 만의 시그니처 유물은 ‘기마인물형(말탄 인물상) 도기’일 수도 있습니다.
5살 어린 왕자의 머리맡에서 확인된 기마인물형 도기는 두 점입니다. 한 점은 주인상(높이 26.8㎝)이라고 하구요. 다른 한 점은 그 주인을 따르는 하인상(높이 23.4cm)이라고 하죠.
주인은 고깔 형상의 띠와 장식을 두른 삼각모를 쓰고, 다리 위에 갑옷을 늘어뜨렸습니다. 하인은 수건을 동여맨 상투머리에 윗옷을 벗은 맨몸입니다. 등에는 봇짐을 메고 오른손에는 방울 같은 것을 들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이 기마인물형 도기가 마치 누군가를 모델로 만든 인상이 짙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모델은 금령총의 주인공은 5살 어린 왕자일 가능성이 있다는거죠. 저승으로 떠나는 왕자를 하인이 안내하며 따라가는 형국이죠. 국법으로 엄금한 순장제도를 이런 식으로 대체했을 수도 있습니다.
■신라판 자동차 말을 사랑한 왕자?
또하나 금령총에서는 유독 말과 관련된 유물이 많았는데요. 재갈과 안장, 발걸이, 말띠꾸미기 등 최소 3세트의 말갖춤새가 부장되어 있었죠. 이 가운데 말 탄 이의 체구를 알 수 있는 앞가리개(안장)과 발걸이가 소형인 것이 특징인데요.
이 말갖춤새의 주인공이 어린아이였음을 알 수 있는 또하나의 단서죠. 또 남은 높이가 56㎝에 달하는 압도적인 크기의 말모양 도기도 출토되었습니다. 이 말은 ‘메롱’하듯 혀를 쑥 내밀고 있어요. 꼭 어린왕자와 장난을 치는 것 같아요.
요즘도 남자 아이들의 경우 자동차나 중장비를 엄청 좋아하지 않습니까. 이 5살짜리 어린왕자도 말을 엄청 좋아했을 수 있죠. 이 꼬마가 생전에 그렇게 좋아했던 말 관련 용품들을 넣어주었겠죠. 그래서 “어린 왕자가 말을 타다가 떨어져 갑작스레 사망한 게 아니냐”고 추측하는 이도 있습니다. 물론 고고학 유물을 토대로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펴봅니다.
두 무덤은 공간으로는 340m, 시간으로는 30~40년의 간격을 두고 조성됐죠. 그러나 10살 공주, 5살 왕자의 그 짧디짧은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1500년 시공을 초월해서 고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참 10년 발굴이 끝났다는데 발굴현장을 보호하고 일반공개의 장이 되었던 돔구조물은 어찌 되는 건가요. 묻고 싶습니다.
(이 기사를 위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최장미 학예연구관·심현철 특별연구원·정인태 학예연구사, 이현태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이한상 대전대 교수가 도움말과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참고자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쪽샘 44호분>(발굴조사자료집), 2023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경주 쪽샘 44호 적석목곽묘>, 기자간담회 설명 자료집, 2020
김대환, ‘금령총 발굴조사의 의의’, <신라능묘 특별전 4 금령총 학술 콜로키움>, 국립경주박물관, 2022
김재열, ‘금령총의 장신구 그리고 사람들-현재 관점의 장신구 검토 및 장신구 이용자에 대한 접근’, <신라능묘 특별전 4 금령총 학술 콜로키움>, 국립경주박물관, 2022
신광철, ‘재발굴을 통해 본 금령총의 구조와 성격’, <국학연구> 77집,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2021
이현태, ‘마립간 곁에 묻힌 어린 왕족’, <금령, 어린 영혼의 길동무>(신라 능묘 특별전 도록 4), 국립경주박물관,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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