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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1500년전 인골 DNA 분석했더니 출산 중 숨진 산모와 태아였다

먼저 대략 1500년 전 어린이·청소년·성인 남녀의 얼굴 좀 보시고 이야기를 나누죠.
근자에 영남지역에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는 연구과제가 있습니다. 경북 경산 임당유적(임당동·조영동·부적리)에서 나온 인골 및 동물뼈 연구입니다. 2019년부터 10년 장기 계획으로 연구·활용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며칠전 ‘임당유적 출토 인골의 최신 연구성과와 과제’라는 제목의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그중 2019년부터 순차적으로 진행해온 얼굴 복원 프로젝트의 성과물이 눈에 띄더군요. 

귀족 여성(2019)-여성 순장자 및 귀족 남성(이상 2020)에 이어 순장 청소년(2021)과 순장 어린이(2022)까지 복원했습니다. 머리뼈 분석과 얼굴 근육층과 형태소 형성, 피부층 완성 등의 기법으로 되살려놓고 있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것 같네요. 유의미한 인골자료가 얼마나 되기에 1500년 전의 사람을 신분별·나이별·성별로 복원할 수 있느냐고요. 가능해졌답니다. 임당유적에서 무려 500여구의 인골이 수습됐고, 그중 영남대박물관이 259구를 소장하고 있었고요. 동물뼈는 무려 2만5000여 점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골 및 동물뼈 보관 및 연구·복원에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사연이 담겨있답니다.

■도굴로 드러난 옛 압독국의 실체
1982년 1월14일이었는데요. 부산세관이 해외에 밀반출하려던 순금·은제 유물 15점을 극적으로 적발합니다.
수사결과 경북 경산 임당동의 구릉에 조성된 과수원(복숭아밭)에서 훔친 도굴품이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경산 임당동은 심상치않은 지역이었습니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압독국(기원후 102년 신라에 투항)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이 일대(임당동·조영동·부적리) 등에는 상당수 고분이 산재되어 있었는데요. 
그러나 지방의 소국이었고, 신라의 변방이었던 이곳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답니다. 
그렇게 방치되다가 과수원 구릉 9기에서 도굴된 금·은제품이 해외 밀반출 직전에 회수된 겁니다.

뒤늦게 호떡집에 불 났습니다. 서둘러 그 일대가 사적으로 지정했고요. 
영남대박물관의 정식발굴이 진행됐습니다. 과연 도굴분이었는데도 3000여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도굴되지 않은 3기의 무덤(5·6·7호분) 중 7호분에서는 더욱 깜짝 놀랄만한 유물이 보였는데요. 
완형의 금동관을 비롯해 금동관모, 귀걸이, 목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신발 등 신라산 귀금속 일체가 출토됐습니다.
무덤 주인공이 당시 신라의 지배를 받고있던 옛 압독국 지도자의 후손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후 대규모 택지개발사업 부지로 확정된 이 지역에서 두차례 더(1988~90) 대대적인 후속발굴 작업이 벌어졌는데요.
기원전 4~기원후 7세기 사이 ‘1000년의 삶’을 복원할 수 있는 유구와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무덤만 해도 총 1700여 기가 확인되었죠. 그 중 이 임당 유적 만의 ‘시그니처 유물’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인골과 동물뼈였습니다.

■물체질로 걸러낸 선견지명 
당시 영남대박물관 조사팀은 흙 속에 묻혀있던 인골 및 동물 뼈조각까지 물체질로 일일이 걸러내 수집했는데요. 
이게 선견지명이었습니다. 왜냐면 그때까지만 해도(1980년대) 인골은 환영받지못한 유물이었습니다.
발굴작업 중 인골이나 미라가 출토되면 곧바로 화장 혹은 이장하는 것이 죽은 자를 위한 예의라고 판단했거든요.
그렇다면 영남대 박물관은 왜 그렇게 정성스럽게 인골·동물뼈를 수습했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발굴을 지휘한 정영화 영남대교수(현 명예교수)가 고인골을 연구하는 구석기 전공자였기든요. 

그것이 이제와서 ‘신의 한수’가 되었죠. 요즘 몇 년 전까지도 미제로 남은 강력사건이 DNA 분석으로 해결되곤 하잖아요.
고고학도 마찬가집니다. 뼈에 담겨있는 DNA로 옛 사람의 혈연관계와 건강 및 질병상태 등을 분석하는 학문이 생겼죠. 
그것이 고고유전학입니다. 고인골에서 사람마다 다른 DNA 염기서열을 분석해서 개인과 집단의 유전적 특징을 찾아내는데요. 영남대박물관도 30년 넘게 보관되던 고인골 및 동물뼈 자료를 차례차례 분석해나갔는데요.

특히 2018년 임당 유적의 고인골 가운데 46개 시료를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역사과학연구소에 보냈는데요.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는군요. 그런데 뜻밖의 낭보가 들렸습니다. 시료에서 뼛가루를 내어 DNA를 추출했더니 46점의 시료 중 35점에서 사람의 DNA가 존재한다는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이후 박물관에 보관된 인골 및 동물뼈들을 대상으로 학제간 다각적인 융합 연구 및 분석, 복원작업에 들어갔답니다. 
그 결과 대략 1500년 전 이 지역에 살았던 이른바 ‘경산인’들의 삶을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었는데요.

■신분에 따라 달랐던 1500년전 식단
며칠전 학술대회 때 발표된 내용 중 새롭게 정리된 것만 추려볼까요. 
우선 1500년전 이른바 경산인들의 식단이 눈길을 끄네요. 임당 유적 중 조영동 고분에서 수습된 인골 48개체와 동물뼈 14개체의 탄소 및 질소 안정동위원소를 분석한 자료인데요.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뼈의 화학적 성분을 연구·분석함으로써 생전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기법이랍니다.
그런 방법으로 분석했더니 1500년 전 경산인들은 현대인들의 식단과 비슷한 쌀·보리·콩 같은 작물을 주로 먹었고요. 
꿩·기러기·오리 같은 야생조류와 말·소·돼지 같은 육상동물, 그리고 상어·방어·복어·패류 같은 해상동물 등을 고루 섭취했답니다. 요즘의 식단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유의미한 분석자료가 있는데요. 

성별이나 연령, 무덤의 종류에 따라 식단이 달라지지는 않았고요. 
다만 높은 신분의 무덤 주인공과 낮은 신분의 순장자간 섭취한 음식에 차이를 보였다는 결과가 눈길을 끈다는군요.
즉 신분이 높은 무덤 주인공은 꿩과 기러기 같은 야생조류와 상어, 방어, 복어 등 어패류를 주로 섭취했습니다.
반면 낮은 신분의 순장자는 식물을 주식으로 삼았고, 맷돼지와 토끼같은 육상초식동물 위주로 섭취했다는 군요. 
경산은 바다와 떨어진 내륙지방이죠. 따라서 바닷가에서 어패류를 조달해야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겠죠. 낮은 신분의 순장자에게까지 어패류 같은 해양동물이 돌아갈 수 없었을 겁니다. ‘어패류 섭취 여부’는 ‘신분의 바로미터’였습니다. 

■3~5세 어린이와 같이 묻힌 15세 순장자는?
신분의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예가 임당 유적 조영동 고분군의 한 무덤에서 확인됩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3~5세 정도인 어린아이인데요. 이 아이의 두개골 일부만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금동제 굵은고리귀고리와 굽은옥 장신구를 달고 있습니다. 머리맡에는 ‘굽다리 접시’와 ‘적갈색 부드러운 바리’, ‘목긴 항아리’ 등 제의용 도기들이 놓여있었습니다. 이 목긴 항이리 속에는 흙과 돌로 만든 여러가지 장난감이 놓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의 바로 위에 15세 정도의 순장자가 주인공인 어린이와 반대방향으로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그 위에는 금동관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김대욱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이 흥미로운 해석을 하더군요.

즉 이 무덤의 주인공인 어린이가 사고나 질병으로 죽었다, 그러자 이 아이를 생전에 돌보고 있었던 몸종을 순장했다, 아이의 신분을 상징하는 화려한 장신구를 달아준채 매장했고, 생전에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을 각종 제사용품과 함께 묻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의 아버지는 자신이 쓰고 있던 금동관을 넣고 무덤을 덮었다, 뭐 이렇게요.
아버지는 장차 이 아이가 성장했을 때 물려줄 예정이었던 금동관을 묻으면서 흐느꼈을 겁니다.
저는 물론 비통에 빠진 그 아버지의 심정을 십분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사망과 함께 속절없이 따라죽어야 했을 15세 순장자의 가련한 신세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픕니다.

■일가족 순장의 비극까지
사실 임당 유적에서 이와같은 순장의 흔적은 한 두 예가 아닙니다. 심지어는 무덤의 주인공 한 사람을 위해 일가족이 순장된 예도 있습니다. 예컨대 5세기 초반 축조된 무덤의 ‘딸린 덧널(부곽)’에 순장된 성인 남성(36~50세)과 10세 전후의 여자아이는 아빠와 딸 관계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5세기 중후반에 조성된 다른 무덤에서는 ‘으뜸덧널(주곽)’에 안장된 주인공(성인 남성·31~40세)의 곁에, 여자아이(4~8세)가 누워 있었는데요. 그런데 그의 발치에 축조된 ‘딸린 덧널’ 안에는 성인 남성(41~60세)과 성인 여성(36~50세)이 순장되어 있었습니다. DNA 분석결과 ‘딸린 덧널’에 순장된 성인 남녀는 부부이고요. 이 부부의 딸이 무덤 주인공 곁에 순장된 여아(4~8세)임을 밝혀졌습니다. 

또 5세기 후반 무덤의 주곽에 순장된 어린아이와, 20여 년 뒤 축조된 또다른 무덤의 순장자(혹은 주인공)는 남매 관계로 추정됐습니다. 이렇게 순장된 이들은 생전에 주인공을 지근거리에서 모신 시동이나 시녀일 가능성이 짙습니다. 
무덤 주인공이 어린아이일 경우 같은 또래의 어린 순장자와 함께 성인 여성(21~35세)이 묻히기도 했습니다. 어린 주인공을 모시던 유모나 보모가 순장된 것도 서러운데, ‘죽은 뒤에 같이 놀아줄 또래 아이’까지 희생시킨 겁니다.
무엇보다 순장제도가 국법으로 금지된 것이 502년(신라 지증왕 3)입니다. 그렇다면 5세기 중반이나 후반에 순장된 이들이야말로 ‘불운의 아이콘’이었다 할 수 있을까요.

■출산 도중 사망한 산모와 태아 유골 
이번 학술대회에서 또하나 눈길을 끄는 발표가 이른바 ‘경산인의 사망률 분포’입니다.
259개체 중 성별과 사망연령 등을 파악할 수 있는 112개체를 분석한 결과 21~35세 사이의 여성이 많았는데요.
즉 ‘여성’(추정 포함)인 개체의 21~35세 사망건수(28개체)가 ‘남성’(추정 포함·16개체)을 훨씬 능가합니다.
반면 36세를 넘어가면 남성(추정·31개체)이 여성(21개체)보다 많아집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임신과 출산과정에서 사망한 여성들의 수가 유의미했다는 얘기죠.
출산 중 사망의 극적인 예(임당 유적 조영동 고분군)가 있습니다. 
즉 이 무덤 안에는 비교적 양호한 인골 1구가 머리를 동쪽을 두고 가지런히 묻혀있었는데요. 

정밀분석 결과 이 인골은 21~35세 가량의 여성으로 추정되었는데요. 그런데 발굴 당시에는 몰랐던 결정적인 착안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열 달 남짓 성장한 태아뼈가 존재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젊은 여성 인골은 엄마이고, 태아뼈는 그 엄마의 아이였을 겁니다. 출산 과정에서, 혹은 출산을 전후한 시점에서 산모가 태아와 함께 안타깝게 사망한 것으로 해석됩니다.”(김대욱 학예연구원)
지난 2002년 경기 파주 교하에서 450여년전(1566년) 출산 도중 숨진 ‘산모와 태아’의 모자 미라가 확인된바 있는데요. 
그보다도 1000년전인 5~6세기 발생한 출산 도중 사망한 고고학적인 증거가 임당 유적에서 보인 겁니다. 
산모와 태아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의미있는 성과라 할 수 있죠. 
또하나 이번에 발표된 ‘경산인들의 사망분포도’를 보면 최소 40세 이상으로 추정되는 노년 인골이 112개체 중 11개체에 불과했는데요. 반면 21~35세가 44개체, 36~50세가 41개체였습니다. 그렇다면 1500년전 당시 경산인들의 경우 마흔살을 넘긴 분들이 별로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평균 수명이 낮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DNA로 찾아낸 혈연관계
이번 학술대회에서 또하나 눈길을 끄는 대목은 DNA로 파악한 무덤 피장자들의 혈연관계였는데요.
총 172개체의 시료를 분석한 결과 ‘부모-자녀 혹은 친형제 자매’로 추정할 수 있는 개체가 11쌍 확인됐습니다. 
또 ‘조부·조모와 손자’, ‘삼촌·고모·이모-조카’, ‘이복·이부 형제 자매’ 등으로 추정할 수 있는 개체가 37쌍 분석됐습니다. 
영남대박물관은 DNA와 법의학적인 분석으로 인골의 얼굴은 물론 키까지 복원하고 있는데요. 
인골 31개체의 대퇴골을 토대로 분석해보니 ‘경산인(남성)’의 평균키는 165.36±3.8㎝ 였습니다. 
2020년 복원대상인 남자 주인공과 여성 순장자를 대상으로 인골DNA를 분석했는데요. 기막힌 결과가 나왔습니다.

두 인골의 혈액형이 AO형이고, 젖당 내성을 갖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대단합니다. 
1500년 전 살았던 사람의 혈액형까지 측정했고, 젖당을 포함한 우유를 마셨을 때 배탈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까지 찾아냈으니 말입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여성 순장자는 알코올을 빠르게 분해하지 못해 술에 금방 취하고 숙취가 심했을 것 같다는 분석이 나왔고요. 이 여성은 급성 심장사, 이상지질혈증, 비만 등의 심혈관계 질환을 앓았을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또 남성 주인공의 경우도 급성 심장사나 죽상동맥경화증 등에 취약했을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1500년전 돔베기
소소한 생활사 한편 더 복원해볼까요. 임당유적의 고분에 부장된 토기에는 다양한 음식 잔존물이 확인됐는데요. 
이 중 유난히 돋보이는 것이 상어뼈입니다. 서울사람인 저는 먹어보지 못했는데요. 그런데 경상도 내륙지방에서는 이 상어뼈를 보고 ‘돔배기’를 떠올린다네요. ‘돔배기’는 상어고기를 토막 내어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음식이랍니다. 
포를 뜬 돔배기를 꼬치에 가지런히 꿰어 식용유를 두른 팬에 굽는데요. 포항의 과메기, 안동의 간고등어와 견줄수 있는 경북의 별미랍니다. 이 돔베기의 역사가 2000~1500년이나 되었다니 얼마나 뿌리깊은 역사를 지닌 ‘소울푸드’입니까. 
어떻습니까. DNA 세계가 무궁무진, 신비롭지 않습니까. 1980년대 물체질로 흙 속의 인골과 동물뼈를 걸러냈을 때만 해도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겠죠. 대단한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고, 또 ‘신의 한수’라 해도 넘치지 않는 칭찬입니다.
DNA 분석기술이 더 발전하면 향후 2000년전 1500년전의 세계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대해봅니다.(이 기사를 위해 김대욱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이 도움말과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참고자료>
김대욱·우은진·정충원·이돈녕·정기찬·최경철·이원준·김이석·이우영·윤아영, <임당유적 출토 인골의 최신 연구성과와 과제>(학술대회), 경상북도·경산시 주최 및 영남대박물관 주관, 2023
최경철·김대욱·정상수, ‘조영동고분군 출토 인골과 동물 뼈의 분석을 통한 고대 경산지역의 계층별 식단 복원’, <한국고고학보> 2022권 4호, 한국고고학회, 2022
김대욱, ‘고인골의 최신 연구와 그 성과-임당유적 출토 인골을 중심으로’(제30회 영남고고학회 정기학술발표회), 영남고고학회, 2021
김대욱, ‘경산 임당유적 고총 순장자의 성격’, <민족문화논총>,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 2013
우은진·정충원·김대욱·다니하타 미호(谷畑美帆), <고대인골연구와 압독국 사람들>(압독국 문화유산 연구·활용 프로젝트 학술세미나), 영남대박물관,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