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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자 思來者

"미륵사지 탑 복원, 절차가 잘못됐다고? 옛 모습대로 복원하고 싶었을 뿐"

‘20년 이상 진행된 문화유산의 해체·복원이었던만큼 일반적인 공사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가 부적정했다는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대해 문화재청은 21일 “1998년부터 장기프로젝트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복원방법이 자주 바뀌는 등 일관성이 없었고 설계를 바꾸는 등의 절차에도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20년만에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서탑). 6층인지 9층인지 그 원형을 알 수 없고, 해체된 부재만 3000개에 달해 복원에 난항을 겪었다. 지난 2017년 공사가 마무리됐고, 최근에는 가설덧집까지 완전히 해체됐다. 오는 23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문화재청 제공

그러나 문화재청은 “제대로 해체·복원하기가 까다로워 20년 장기 계획을 세운 미륵사지 석탑의 경우 달리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될 수 있으면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기 위해 도중에 복원의 방법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 지적사항은 두가지다. 그 중 하나는 탑의 몸체를 구성하는 적심(積心·탑을 지탱하기 위해 탑 구조물 내부에 쌓아놓은 돌)을 쌓는 방식을 변경할 때 구조계산(안전성 계산)없이 기존부재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적심을 쌓을 때 처음에는 새로운 돌(새로운 석재)을 사용하도록 설계해놓고, 안전성 계산 없이 기존의 돌(기존의 탑 석재)을 쓰도록 변경했다는 것이다. 공사를 담당해온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옛 부재를 되도록 많이 활용하는 문화재 복원의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수리전의 미륵사지 석탑. 석탑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채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일제가 1915년 당시로서는 최첨단 공법인 ‘콘크리트’ 로 싸발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탑의 석재를 훼손시키는 악영향을 끼쳤다. |문화재청 제공

당초 설계대로 시공하다보니 새로운 석재가 너무 많다는 판단이 들어 3층부터는 원래 탑의 적심에 들어있던 옛 석재를 재활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저층인 1층이나 2층 보다 3층 정도부터는 옛 석재를 써도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마무리 복원 공사를 끝낸 ‘완성된 석탑’의 신·구 부재 비율은 38%(신 부재)와 62%(구 부재)이다. 그러나 해체된 석탑에서 수습된 옛 부재 가운데 80% 정도가 재활용됐다.

또하나의 지적사항은 탑 석재 사이의 틈을 메워주는 충전재를 정확한 검토없이 변경했다는 것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무왕(재위 600~641)때 창건된 국내 최고(最古), 최대의 석탑이다. 

즉 탑의 조성양식이 목탑에서 석탑으로 바뀌어가는 단계에서 조성된 탑이다. 그러다보니 석탑이지만 목탑의 조성양식이 섞여있다. 특히 석판을 마치 목판을 쌓듯 얇게 켜켜이 쌓아놓았다. 엄청난 돌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따라서 켜켜이 쌓은 석판의 틈 사이를 메워주는 충전재가 필요하다. 예전에는 충전재로 흙을 사용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흙이 빠져나가 석탑의 붕괴를 촉진시키는 요인이 됐다. 

충전재로는 석회(강회다짐)가 고려되었지만 백화(하얀 결정체) 현상의 우려가 있어 처음부터 검토대상에서 제외됐다.

23일부터 일반에 공개된 서탑(왼쪽) . 동탑(오른쪽)은 1993년 이미 복원된 바 있다. 미륵사는 ‘3금당 3탑’ 형식으로 조성됐다. 이번에 복원 공개되는 서탑과 중앙탑(가운데),  동탑이 나란히 있었으며, 각 탑 뒤에 금당이 한 동씩 조성됐다. |문화재청 제공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후 천연광물과 모래, 그리고 실리카퓸(실리콘 합금 등을 만들 때 생기는 폐가스 중의 실리카를 집진기로 모은 초미립자 산업부산물)을 배합한 무기질 재료를 미륵사지 석탑의 충전재로 결정했다. 

강도가 좋아서 석판 사이를 아주 강력하게 메워줄 충전재로 판단됐다. 그러나 이 ‘실리카퓸 충전재’의 흠은 색깔이 회색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실리카퓸은 기본적으로 산업부산물이어서 문화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파악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실리카퓸’ 보다 강도는 낮지만 천연재료라 할 수 있는 ‘황토’를 배합한 충전재로 바꿔 시공했다. 감사원이 지적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이 역시 구조역학을 바탕으로 구조물의 안전성을 계산하는 절차없이 연구소 임의대로 충전재를 변경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감사원이 설계업체에 맡기지 않고 진행시킨 점을 지적한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복원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일부 변경사항을 직접 설계해서 진행했다는 점을 감안해달라”고 밝혔다.

한편 2017년까지 원래 남아있던 6층까지 수리를 마친 미륵사지 석탑은 최근 가설시설물과 주변정비가 마무리 되어 23일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문화재청은 오는 4월30일 미륵사지 석탑 완공식을 열 계획이다.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