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 성주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성주사(사적 제307호)는 1400년이 넘은 유서깊은 절이다.
백제 법왕(재위 599~600)때 창건되어 오합사로 일컬어지다가 847년(문성왕 9년) 신라 낭혜화상(무염·801~888)이 중창했다. 조선후기 폐사되어 건축물 대부분이 사라진 성주사에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 탑이 많다는 것이다. 경내 북서쪽에 낭혜화상탑비가 버티고 있고, 남쪽부터 오층석탑과 삼층석탑 3기 등이 늘어서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보물에서 누락되었던 충남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이번에 보물 제2021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제공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다. 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와 오층석탑(보물 제19호)·중앙 삼층석탑(보물 제20호)·서 삼층석탑(보물 제47호) 등이 모두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유독 동 삼층석탑만이 빠졌다가 1973년이 되어서야 겨우 충남유형문화재가 됐다는 것이다.
동 삼층석탑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져서 그랬던 것일까.
하지만 문화재청이 최근 이 동 삼층석탑을 보물로 지정예고하는 절차에 앞서 이 탑의 가치를 새삼스레 재평가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다른 중앙탑과 서탑 등 다른 2기의 삼층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말기에 같은 장인이 조성한 것이 확실했다. 총 높이 4.1m로서 2층 기단위에 3개의 층으로 구성됐고, 기단 상부에 괴임대 형식의 별석받침(별도의 돌로 만든 받침석)을, 1층 탑신 전·후면에 문고리와 자물쇠가 표현된 문비(문짝 모양)가 조각된 점 등으로 보아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 석탑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이미 보물로 지정된 2기(중앙 및 서탑)의 탑 못지않게 균형 잡힌 비례와 체감, 우수한 조형성을 지니고 있다. 결국 ‘보물로서의 자격’이 차고 넘치는데 ‘나홀로’ 탈락한 것이다.
보령 성주사지의 전경. 맨 앞에 있는 오층석탑은 일제강점기에 보물 제19호로 지정됐다. 지금은 국보 제8호이다.|문화재청 제공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번에 전문가 재평가에서 그 연유를 파고 들어가보았지만 아쉽게도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일제강점기인 1917년 이 성주사 경내에 있는 탑과 탑비 등을 조사하고 훗날 문화재(보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일련의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즉 1917년 3월 고적조사위원회가 성주사지의 탑비와 탑 등을 조사한 결과를 서술한 원고를 보면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낭혜화상백월보광탑’, ‘오층석탑’, ‘오층석탑’ 등으로 되어있다. 이상하게도 ‘오층석탑’이 2건 기록된 것이다. 당시 고적위원회는 아마도 사찰에는 탑이 1기 또는 2기 만이 건립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탑이 유독 많았던 성주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
고적위는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는 그대로 유지하고, ‘낭혜화상백월보광탑’은 ‘오층석탑’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오층석탑’ ‘오층석탑’으로 2건 기록됐던 것을 ‘중앙 삼층석탑’과 ‘서 삼층석탑’으로 바꿨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드시 존재했을 동 삼층석탑 이야기는 없었다.
보령 성주사지에 자리한 3기의 탑. 이중 맨 왼쪽의 서 삼층석탑은 보물 제47호, 가운데 중앙 삼층석탑은 보물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문화재청 제공
고적위가 성주사지를 조사했던 처음부터 빠뜨렸거나, 혹은 조사보고서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누락시켰거나 아니면, 1934년 보물 지정 때 동탑의 문화재 가치가 떨어진다는 판단 때문에 탈락시켰는지 알 수 없다.
결국 일제가 조선의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처음 지정한 1934년 8월27일 4건의 문화재는 보물이 됐다. 즉 낭혜화상탑비는 제30호, 오층석탑과 중앙 삼층석탑은 제31호와 제32호, 서 삼층석탑은 제62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동 삼층석탑은 빠졌다. 해방이후 문화재보호법이 공포된 1963년 문화재 재지정 때에도 역시 동 삼층석탑의 지위는 되살아나지 않았다. 부정확한 정보를 수정할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어떤 과정인지는 몰라도 보물지정과정에서 누락된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의 지위를 85년만에 신원시켜주었다. 동 삼층석탑을 보물 제2021호로 지정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밖에도 조선시대 중창한 전남유형문화재 제50호 ‘천은사 극락보전’을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혜암선사가 1774년 세운 천은사 극락보전은 중생의 왕생극락을 인도하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건축물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미 보물로 지정된 해남 미황사 대웅전, 영광 불갑사 대웅전, 나주 불회사 대웅전과 비슷한 특색을 지녔다는 점에서 보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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