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경산수화는 실재하는 경치, 즉 자연경관과 명승지를 소재로 그린 산수화를 폭넓게 칭하는 일반적인 표현. 고려시대 이녕의 <예성강도>와, 작자미상의 <금강산도>, <송도팔경> 등이 있다. 조선중기 한강가 독서당에서 열린 계회장면을 그린 <독서당계회도>(보물 제 867호)와 곡운 김수증(1624~1701)이 강원도 화천의 승경지를 선정해서 사인화가(士人畵家) 조세걸(1636~?)에게 그리게 한 <곡운구곡도>(1682년) 등이 있다. 실경산수화는 주로 실용적 목적에 따라 제작됐다. 

겸재 정선의 <단발령 망 금강산도>. 1711년 금강산을 처음 여행하고 제작한 화첩의 한 장면이다. 단발령에서 멀리 금강산을 바라보는 여행자들의 모습을 그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실경산수화에 사상적인 표현을 가미한 것을 이른바 진경산수화라 한다. 한국의 산천을 화제로 삼았다기 보다는 이런 실경을 다루면서 독자적이고 한국적인 예술형식을 창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진경산수화의 개창자는 겸재 정선(1676~1759)이라 한다. 정선의 <금강산도>의 화제에는 실경을 넘어선 진경의 의미가 잘 나타나 있다.

“일만 이천 봉 드러난 뼈를 뉘라서 뜻을 써서 참모습을 그려 내리…설령 내가 발로 직접 밟아 보자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 할 터 그 어찌 머리맡에 기대어 실컷 봄만 같으리오!”

국립중앙박물관은 23일부터 9월22일까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특별전을 개최한다. 특별전에는 정선의 <신묘년풍악도첩>(1711년)과 김홍도(1745~?)의 <병진년화첩>(1796년) 등 고려말~조선말까지 국내외에 소장된 360여점이 전시된다. 이번 특별전에는 재일교포 사업가인 고 윤익성(1922~1996) 레이크사이드 컨트리클럽 창업주의 유족이 낸 기부금으로 일본 교토(京都)에서 사들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16세기 실경산수화인 <경포대도>와 <총석정도> 등 2점도 선보인다.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 1788년(정조 12년) 정조 임금의 명으로 금강산과 관동지역을 유람하고 그린 김홍도의 초본. 능숙한 필법으로 그렸다. 현장감이 느껴진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두 작품을 실견한 안휘준 서울대명예교수는 “실경산수화의 전통이 정선 이전부터 확립되어 있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라고 평가했다. 오다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 전기의 작품 중에는 계회도(풍류를 즐기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조직된 문인들의 모임을 그린 작품) 등을 제외하면 거의 남아있지 않다”면서 “이 작품은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1788~89년 사이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린 김응환(1742~1789)의 <해악전도첩> 중 ‘백운대’와, 한양 석파정을 중심으로 그 일대를 8폭 병풍에 파노라마식으로 펼친 이한철(1808~?)의 <석파정도> 병풍(미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이 최초로 공개된다. 

4부로 구성된 특별전은 화가가 경험한 실제 경치를 어떻게 그림으로 옮겼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화가들의 창작과정을 따라가며 화가의 시선과 해석을 이해하는 컨셉트로 구성했다.  

최초로 공개되는 김응환(1742~1789)의 <해악전도첩> 중 ‘백운대’. 정조의 명으로 김홍도와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린 화첩. 화원 김응환만의 거침없는 필치와 감각적인 채색이 돋보인다. |개인소장

‘실재하는 산수를 그리다’ 편에서는 고려와 조선 전·중기 실경산수화의 전통과 제작배경을 살펴본다. 실경산수화의 전통은 고려시대로 올라가지만, 그 제작이 활발했던 것은 조선시대였다. 조선의 실경산수화는 관료들의 모임을 그린 계회도나 별서도, 회화식지도 등 다양하고 독특한 회화적 전통과 풍수개념, 그리고 유교문화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화가, 그 곳에서 스케치하다’편에서는 여행을 떠난 화가들이 현장에서 자연을 마주하고 그린 초본(草本)이 펼쳐진다. 1788년(정조 12년) 정조의 명을 따라 관동지역과 금강산을 사생한 김홍도(1745~?)의 <해동명산도첩>을 비롯, 친구와 함께 유람을 하며 남한강의 풍경을 스케치한 정수영(1743~1831)의 작품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밑그림인 초본은 화가가 본 경치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의 결과이다. 따라서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진다. 

국내에 최초로 공개되는 이한철(1808~?)의 <석파정도> 병풍. 한양의 석파정을 중심으로 그 일대를 8폭병품에 파노라마식으로 펼친 작품이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소장 

‘실경을 재단하다’ 편에서는 화가가 작업실로 돌아와 초본과 기억 등을 바탕으로 산과 계곡, 바다, 나무와 바위, 정자 등의 경물을 재구성하며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그림 속 화가의 위치를 상상하며 화가의 시점과 구도의 관계를 짚어보고, 화첩, 두루마리, 선면 등 다양한 매체에 따른 구성과 여정의 편집을 살펴본다. 

‘실경을 뛰어넘다’편은 경치를 재해석한 화가들의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작품에 주목했다. 화가들은 실경을 뛰어넘어 형태를 의도적으로 변형하거나 과감하게 채색하고 붓 대신 손가락, 손톱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또한 원근과 공간의 깊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화가들이 고민했던 흔적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러한 화가의 치열한 구상과 예술적 실험 끝에 완성된 실경산수화는 이 땅을 향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 

김하종(1793~?)의 <해산도첩> 중 ‘해금강’. 김하종이 1816년(순조 16년) 내외금강산과 관동지역을 유람하고 그린 화첩이다. 다양한 구도와 선원근법이 구사된 세련된 화풍을 자랑한다

예컨대 진경산수화로 잘 알려진 정선·김홍도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노영과 조선의 한시각(1621~?), 김윤겸(1711~1775), 김하종(1793~?), 윤제홍(1764~?) 등은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 강산을 바라보고 각자의 방식으로 실경을 표현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화가가 여행길에 느꼈던 설렘과 대자연 앞에서의 감동, 그리고 창작과정의 고뇌와 재미, 또한 완성작에 대한 환희 등 화가적 시점에서 이번 특별전을 감상해보시라”고 바랐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