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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자 思來者

'세종 코스프레'가 하고팠던 고종은···110년 만의 계조당 복원 이야기

“1443년(세종 25년) 5월12일 왕세자(문종)가 신하들의 조회를 받을 집을 건춘문 안에 짓고, 이름을 계조당(繼照堂)’이라 했다.”(<세종실록>)

세종대왕 치세(재위 1418~1450)의 말년(1455~1450)에 왕세자(문종·재위 1450~1452년)가 임금 대신 정사를 맡았다. 이름하여 ‘대리청정’이다. ‘앉아있는 종합병원’이라 일컬을 정도로 각종 병마와 싸우면서 훈민정음 창제(1443년) 및 반포(1446년)에 몰두하기 위한 세종의 깊은 뜻이었다. 신하들이 지속적으로 세종의 대리청정 계획에 “아니되옵니다”라 반대했지만 그 뜻을 꺾지 못했다. 

복원될 계조당. 계조당은 세종 연간에 왕세자(문종)의 대리청정 때 신하들을 조회하고 정사를 펼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다. 그후 고종도 왕세자인 순종을 염두에 두고 ‘세종과 문종’을 본보기로 삼겠다면서 계조당을 재·개건축했다.|궁능유적본부 제공  

그 때(1443년) 왕세자 문종이 문무대신들의 조회를 받기 위한 장소로 건립한 전각이 바로 계조당이다. 계조당은 한마디로 대리청정 중인 왕세자가 나라의 정치를 신하들과 의논하고 집행하는 ‘정당(正堂·일종의 집무실)’이었다. 조선왕조의 권위와 후계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기능했다. 그랬던 계조당은 승하한 문종의 뒤를 이어 등극한 단종(재위 1452~1455)이 헐어버리고 만다. 대리청정 당사자였던 문종이 ‘내가 죽으면 계조당 등을 헐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문종은 아마도 대리청정의 당사자인 자신이 죽고나면 ‘대리청정의 공간’으로 건립된 계조당은 당연히 용도폐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910년 무렵 동십자각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복궁.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복원될 계획이다.|궁능유적본부 제공

그러나 그로부터 410여년 뒤인 1868년(고종 5년) 경복궁 중건 때 재건되었고, 23년 뒤인 1891년(고종 28년) 다시 고쳐 완성했다. 이 계조당을 재·개건하면서 ‘세종과 왕세자(문종)의 예’를 전거로 삼았다.

고종은 “세종 계해년(1443년) 문종이 동궁에 있을 때 계조당을 세웠고, 을축년(1445년) 문종이 대리청정했다”면서 “이러한 세종 시대에 제도를 마련하고 규정을 정하는 일을 모두 갖추었고, 모든 제도와 문물, 법식이 이때에 가장 융성했다”고 꼽았다(<고종실록>). 고종은 이어 “내가 세종의 업적을 계승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동궁(순종)이 훗날 나(고종)의 가르침을 준수해주기를 바란다”면서 계조당 개건의 의미를 밝혔다. 고종은 “몇 해 전에 동궁(순종·재위 1907~1910)이 조종조의 예절을 익히고 매번 고사를 우러러 따르려고 하니, 이런 마음을 참으로 가상히 여긴다”고 덧붙였다. 이에 영의정 심순택(1824~1906)은 “세자(순종)의 총명이 뛰어나니 앙축하나이다”라고 맞장구 쳐주었다. 고종은 계조당을 다시 짓고 고쳐 건립하면서 당시 17세가 된 세자(순종)를 위해 ‘나도 세종처럼 문종에게 대리청정 시키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고종이 ‘세종 코스프레’ 하려 했다면 지나친 표현인가. 

계조당 복원에 쓰일 자료들. ‘임진진찬의궤 중 근정정도’(1892년) 일부와 ’북궐도형‘(1907년) 등. |궁능유적본부 제공 

계조당은 이렇듯 세종과 문종을 본보기로 삼겠다는 거창한 뜻에 따라 재·개축됐지만 국권침탈 직후 일제에 의해 무참하게 훼철된다. 일제가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라는 박람회를 연다는 이유로 조선왕실의 권위를 지우고 식민통치 정당성을 선전하는 행사 공간으로 철저히 파괴한 것이다. 그 때문에 지금은 1999년 복원한 자선당(왕세자와 왕세자빈의 거처)과 비현각(왕세자의 집무실)만이 남아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이렇게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경복궁 계조당에 대한 복원공사를 110여 년 만에 착수한다고 4일 밝혔다. 김태영 궁능유적본부 사무관은 “왕세자의 공간이며 외전과 내전을 갖춘 궁궐속 작은 궁궐인 동궁권역을 본래대로 복원하겠다는 뜻”이라면서 “이중 동궁의 정당이라 할 수 있는 계조당이 복원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계조당 복원에는 2022년까지 3년간 총 82억원을 투입된다. 복원에는 수제한식기와, 철물, 소나무 등 전통재료와 ‘손으로 하는 가공’(인력가공) 등 전통방식이 동원된다.

정현정 주무관은 “오는 5월부터는 사전 신청을 받아 공사현장 내부를 무료 공개하는 등 국민과 함께하는 문화재 복원의 대표적 모범사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앞으로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변형·훼손된 경복궁을 체계적으로 복원·정비해 조선의 법궁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고 정체성과 진정성을 되찾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