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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자 思來者

올 11월까지 비무장지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공동등재한다

문화재청은 올해 말까지 북한과 함께 비무장지대 일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의 공동등재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인 추진일정을 밝혔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지난 11일 2020년 문화재청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남북간 협의를 거쳐 오는 12월까지 유네스코에 잠정목록의 공동등재를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2년 1개월 여의 지루한 휴전회담 끝에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공산 양측이 군사분계선(휴전선)의 말뚝을 박고 있다.

정 청장은 “비무장지대 일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기준인 ‘탁월한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에 부합하는 논리를 도출하고, 오는 11월 잠정목록 신청서 작성을 마무리하는 것이 올해 목표”라고 밝혔다. 남북간 협의가 제대로 진행되어 올해 잠정목록 공동등재가 성사되더라도 ‘보존관리계획’ 수립과 유네스코 실사 및 심사 등을 거쳐 최종등재까지는 최소 4~5년이 걸린다.

문화재청은 이를 위해 오는 4월부터 국방부·통일부·유엔사의 협조를 얻어 남측 지역 비무장지대 내 실태조사를 벌이는 한편 북측 지역은 남북협의를 통해 공동조사를 추진할 예정이다. 조사 지역은 판문점과 파주 대성동마을, GP(감시초소·Guard Post), 남방한계선 철책, 화살머리고지 등 전적지, 도보다리 등 분단과정과 분단 이후 형성된 시설 및 경관 등이다.

1951~52년 사이 중국군은 전 전선에서 지하갱도를 팠다. 갱도의 규모는 248~287킬로미터였으며, 총연장은 4000킬로미터에 이르렀다고 한다. 중국은 이 갱도를 지하만리장성이라 일컬었다.|눈빛 출판사 제공

그러나 남북관계가 정체된 지금 이와같은 계획은 자칫 ‘혼자만의 몽상’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이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으로 나올 경우 세계유산 등재계획은 무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과정을 더는 늦출 수 없는 만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 문화재청 입장이다. 정재숙 청장은 “활용가능한 다양한 채널을 동원해서 남북실무협의를 추진하는 한편 세계유산 등재과정에서 유네스코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하는 등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성 문화재청 국제협력과장은 “2018년 11월 남북한의 ‘씨름’ 인류무형유산 공동등재 당시에도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특사가 북한을 방문하는 등 유네스코의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종규 문화재청 국제협력과 사무관은 “오는 7월 중국 푸저우(福州)에서 열리는 세계유산회의 때 비무장지대 관련 전시와 학술회의 등을 열어 국제사회의 지지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의 능선. 처절한 전투로 능선이 피바다를 이뤘다는 의미로 ‘피의 능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문화재청은 그동안 비무장지대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기 위해 전문가 그룹을 구성, 정책포럼을 운영하고 협업체계를 구축해왔다. 범정부 차원의 TF(Task Force)도 만들었다.

비무장지대는 1953년 7월27일 채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임진강 하구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동서 248㎞ 군사분계선 기준 남북 각각 2㎞의 한계선을 설정한 구역을 일컫는다. 면적은 907㎢ 정도로 서울시 면적의 1.5배에 이른다. 비무장지대 일원은 자연유산 뿐이 아니라 세계사적인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 자격도 차고 넘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우선 자연유산 측면을 살펴보면 강원 평강의 오리산(해발 453m) 일대에서 10차례 이상 분출된 용암이 빚어낸 임진강·한탄강 유역 주상절리가 절경을 이룬다. 게다가 사향노루와 수달, 검독수리, 담비, 가시오갈피나무, 가는동자꽃 등 멸종위기ⅠⅡ 급 생물 등 야생생물이 6000종 가까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뿐이 아니다.

비무장지대 일원은 해방 이후 분단과 1950년 한국전쟁 및 냉전 상황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한국전쟁은 전쟁 전기인 3년1개월2일(1127일) 가운데 3분의 2에 달하는 764일을 이곳 비무장지대 일대에서 싸운 교착전 양상으로 벌어졌다.

 특히 이 전쟁에서는 전쟁 당사자인 남북한을 포함해서 17개국 젊은이들이 동서 진영의 자존심을 건 이데올로기 희생물로 피를 흘렸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비무장지대 일대는 비무장이 아닌 중무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라는 오명을 안았다. 따라서 비무장지대 일대는 명실상부한 전쟁유산이자 하나의 거대한 전쟁유적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비무장지대의 북측 지역에는 중국군이 1951년 8월부터 52년 12월까지 한반도 동서를 잇는 250~287㎞, 폭 20~30㎞, 총연장 4000㎞에 걸쳐 파낸 지하갱도가 존재하고 있다.

군사분계선을 딱 반으로 가르고 서있는 궁예의 태봉국도성. 분단과 전쟁, 냉전으로 오히려 이 태봉국도성터는 훼손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중국은 이것을 ‘지하만리장성’이라 명명했다. 이렇듯 비무장지대 일대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요새이자 전쟁박물관이다. 국적을 달리한 19개국 젊은이들의 피와 넋이 묻힌 곳이며 전쟁 후에도 동서냉전의 상징으로 평화를 희구하는 인류에게 다시는 이런 전쟁을 치러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안겨주는 대표적인 ‘부(負)의 유산’이다. 그럼에도 남북 평화 무드와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훼손될 우려가 있는 유산이다. 모든 조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기준에 정확하게 부합된다.

한편 문화재청이 발표한 2020년 업무계획에서는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지정문화재까지 보호할 수 있도록 역사문화자원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즉 훼손 및 멸실 우려가 있는 역사문화자원(비지정문화재)을 올해부터 5년간 전수조사해 포괄적 문화재 보호체계의 기초를 마련할 방침이다.

또 국내 세계유산을 거점으로 내외국인 관광을 확대하는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같은 지역문화유산을 활용한 프로그램도 육성할 계획이다. 이밖에 디지털 콘텐츠 개발, 무장애공간 확충 등을 통해 문화유산 향유 기회를 넓힐 작정이다.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