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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야

설탕, 그 달콤한 맛 속에 녹아있는 인간의 살

며칠 전에 탄산음료·과일 주스 등 설탕이 든 음료를 주 3회 이상 마시는 남성은 주 2회 이하 마시는 남성보다 10년간 심혈관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는데요.

손정식 고려대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교수팀이 20142016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성인 남성(3064) 3705명을 대상으로 분석해서 나온 결과라는데요. 이번 주는 설탕의 역사와 설탕 때문에 병을 얻은 사람들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1=지나치게 설탕을 섭취하면 좋지 않다는 것은 다 아는 얘기죠?

 

=제가 본격적으로 말씀 드리기에 앞서 몇 분을 거론할 텐데 이 분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종대왕과,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전설적인 프로야구 스타 재키 로빈슨? 노인과 바다의 어니스트 허밍웨이,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역사 문명평론가인 아놀드 토인비,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2=모두 설탕과 관련된 병 걸린 분들인가요?

=그렇습니다. 이분들 모두 당뇨환자였다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세종대왕이 당뇨병을 앓았다는 이야기는 실록에 너무도 생생하게 나옵니다. 몸도 너무 뚱뚱해서 아버지인 태종이 주상은 제발 운동 좀 하세요라 신신당부했죠. 세종은 매일 물 한 동이 이상을 마셨고, 왼쪽 눈이 아파 안막을 가렸으며, 오른쪽 눈은 한 걸음 사이의 사람도 분간할 수 없다고 토로했거든요.

 

3=이런 증상이 당뇨합병증인가요?

 

=그렇습니다. 당뇨 합병증 때문에 시력을 거의 잃었음을 고백한 건데요. 세종대왕 하면 지독한 워커홀릭인데다가 책벌레였잫습니까. 하루 20시간 이상 국정을 돌보고, 책 한권 잡으면 100200, 심지어는 1000번 이상 읽었고요. 운동도 안하고, 업무 스트레스 받고, 아마도 고기 좋아하고 단 거 좋아하니까 당뇨병 걸린거겠죠.

 

4=아니 엘비스 프레슬리도 당뇨환자였어요?

 

=그랬답니다. 엘비스 프레슬 리가 누굽니까. 당대의 섹시가이라 했죠. 카리스마 대단했다는데요. 그런데 문제는 그런데 프레슬리의 식탐이 대단했대요. 특히 정크 푸드를 엄청 먹어댔는데요. 예를 들면 땅콩버터와 꿀, 바나나, 베이컨을 얹은 샌드위치를 한 번에 4개씩이나 먹었답니다.

 

5=한번에 4개씩이나요? 완전히 중독 수준이네요?

 

=그렇습니다. 한 번은 이 샌드위치를 먹기 위해 19명의 친구와 전용 비행기로 테네시주에서 콜로라도주까지 날아가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이 땅콩크림버터바나나샌드위치는 엘비스 샌드위치란 이름이 붙었대요. 그것 뿐이 아니고 공연이 끝나면 도넛을 한 번에 12개씩 먹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도 있답니다.

 

6=공연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었나봐요?

 

=그런 것 같아요. 돼지고기 요리를 하루 1.2킬로그램(두 근) 먹고, 달걀 6개로 만든 오믈렛, 베이컨 1파운드, 고구마 파이, 버터밀크 비스킷, 마시멜로에 초콜릿을 끼운 문파이 등을 모두 오직 한 끼 식사로 먹었답니다.

사탕, 아이스크림, 햄버거, 감자칩 등 아이들이 즐기는 음식을 무척 좋아했대요. 과하게 기름지고, 지나치게 달고, 엄청난 칼로리를 가진 정크푸드, 뭐 이런 것들이 엘비스가 폭식했던 음식들이었답니다.

탄수화물 중독에 빠졌던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결국 42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7=그 때문에 안타깝게 요절한 건가요?

 

=결국 100kg 이상이 넘는 뚱보로 변했고, 생전 고혈압과 당뇨 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렸답니다. 결국 42세에 화장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는데요. 부검 결과 엘비스의 위 속에서 아이스크림 네 국자와 초콜릿 범벅인 비스킷 여섯 개가 나왔고, 진통제와 수면제가 가득찼답니다.

 

8=세종대왕이나 엘비스 프레슬리 말고도 다른 유명인사들도 있다고 했잖아요?

 

=흑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야구스타 재키 로빈슨은 심장마비 때문에 1972년 세상을 뜰 때 당뇨병 때문에 거의 앞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쿠바의 다이키리 칵테일을 사랑했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 등도 당뇨환자였다죠.

 

9=당뇨라는 병 이름은 소변에서 당이 나온다는 의미에서 당뇨란 이름이 붙었겠죠?

 

=제가 실은 당뇨 환자여서 치료받고 있거든요. 의사는 아니지만 제가 아는 한 당뇨병은 혈액 속의 혈당(포도당)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상태의 병입니다.

 

10=원래 포도당은 우리 몸의 에너지원이잖아?

 

=그렇죠. 포도당이 세포 하나하나에 들어가서 에너지원이 돼야 하는데 이런 포도당이 우리 몸의 각 세포에서 흡수되려면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필요하답니다. 그런데 인슐린 분비가 원천적으로 작동이 안되거나, 혹은 당분이 많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아니면 과체중 등으로 인슐린에 과부하가 걸리면 작동에 문제가 생긴답니다. 그렇게 되니까 당이 흡수되지 않고 혈액 속에 남아 빠져나가는 거죠. 그래서 피 속에 당이 과다하게 섞여서 소변으로 나오는 거구요.

 

11=설탕 섞인 오줌이라 당뇨라는 병명을 얻은 거군요?

 

=그래서 기원전 6~5세기 인도의 외과의사 수슈르타가 펴낸 의서 <아유르 베다>는 당뇨병을 꿀오줌이라 했답니다. 그 의서를 보면 그 오줌이 달아서 개미와 곤충이 모여든다고 부연설명했답니다.

 

12=모든 원흉은 당인거 같은데, 정제 당인 설탕이 특히 문제가 되는 거죠?

 

=예전에는 벌꿀이나 야생에서 추출할 수 있는 단 것을 먹었겠죠. 그러다가 6~7세기 인도 동부 벵골인들이 사탕수수를 쪄서 채취한 당즙을 조려내어 결정체를 만들었는데요. 이것이 정제 설탕인데, 삽시간에 유럽을 거쳐 세계로 퍼지게 된 겁니다.

 

13=단맛에 길들여지면 중독되는 것은 당연하겠죠?

 

=12세기 비잔틴 제국황실에서 해열제로 설탕에 절인 장미꽃을 처방했대요. 결핵치료제로 필수적인 약품이었답니다.

이탈리아 의학교재를 보면 설탕은 열병과 기침, 가슴병, 까칠까칠한 입술, 위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적혀있답니다. 심지어 페스트에도 설탕이 효과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대요.

 

14=진짜 만병통치약 대접을 받았네요?

 

=11세기 아라비아 의학자인 이븐시나가 설탕과자야 말로 만병통치약이라 했습니다. 16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나타낼 때 설탕이 떨어진 약방 같다는 표현을 썼대요. 설탕이 세계 식품으로 발돋움 한데는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역할이 컸답니다.

 

15=토마스 아퀴나스요? 신학대전 썼던 인물이죠?

 

=그렇습니다. 13세기 때인데 당시 크리스트교에서 정한 단식기간에 설탕을 먹는 것은 율법 위반인가 아닌가 논쟁이 벌어졌대요. 그때 토마스 아퀴나스가 설탕은 식품이 아니라 소화촉진용 약품입니다하고 규정했답니다.

그때부터 설탕이 여엇한 식품으로 대량 공급됐는데요. , 커피, 초콜릿, 담배 등은 한때 먹으면 안되는 죄악으로 여겨지기도 했어요. 워낙 중독성이 강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설탕은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저명한 신학자의 보증까지 받았으니까 타락이니 죄악이니 이런 비판에서 벗어났던 거죠.

설탕 1온스(28g)은 인간의 살 2온스와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16=설탕이 아무런 통제없이 팔렸다는 얘기네요?

 

=. 값비싸고 맛좋은 건강식품으로 자리매김했대요. 왕후장상의 신분과시용 상품이 됐다는군요.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얼마나 설탕을 좋아했는지 치아가 모두 썩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영국은 설탕간식 부문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대요. 특히 17세기 이탈리아에서 아이스크림이 들어왔을 때 영국인들이 열광했답니다.

 

17=이제 여름이라 아이스크림 소비가 많아지겠네요? 아이스크림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나요?

 

=원래 중국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눈이나 얼음에 과일이나 꿀 등을 첨가해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292년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얼린 우유의 배합법을 이탈리아에 도입했고, 16세기 초 얼음을 혼합하여 냉각, 냉동시키는 기술이 생기면서 아이스크림이 전성기를 맞게 되었구요. 그리고 1533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명가인 메디치가의 딸 까뜨리느가 프랑스의 왕 앙리 2세와 결혼하게 되면서 아이스크림 제조법이 프랑스를 거쳐 유럽 전체로 전파됐답니다.

 

18=나중에는 차와 커피에 설탕을 타먹었죠?

 

=영국인들이 유행시킨거죠. 떫은 차와 쓴 커피에 설탕 타서 먹는 것, 그것도 멋이라 봤답니다. 나중엔 커피 하우스도 생겨서 점잖게 설탕 넣은 커피 먹고 고담준론을 논하는 일도 유행했는데요. 그것이 커피숍의 원조죠. 나중엔 가장 고된 노동 하는 세탁부들에게 설탕 넣은 달콤한 차 한 잔이 지친 몸과 마음 달래주는 기호품이 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달콤한 설탕 속에는 어두운 인류의 역사가 녹아있다고 합니다.

 

19=건강문제 말입니까?

 

=당연히 건강도 문제가 되지만 아주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실 사탕수수의 재배와 가공, 제당 등의 공정은 일사분란해야 합니다. 따라서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게 돼죠. 엄청난 용광로에서 설탕을 끓여야 하고, 그리기 위해서는 땔감이 필요하고요. 신대륙이 개척 후에 사탕수수재배지로 낙착된 곳이 바로 서인도 제도, 카리브해 국가들이죠. 그곳 원주민들을 노동자로 활용한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거의 멸족을 합니다. 유럽인들이 옮겨온 병이 천연두 때문인데요. 게다가 가혹한 노동을 시키는 바람에 사람들이 떼죽음 당했답니다. 그래서 대안을 찾은 것이 바로 아프리카계 흑인들이었죠.

 

20=아메리카 대륙의 흑인 역사가 바로 설탕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나요?

 

=맞아요. 어떻게 보면 설탕에 열광한 유럽인들의 입맛을 충족시키려고 대대적인 아프리카 노예사냥이 벌어졌다고 할 수 있죠. 16~19세기 사이, 카리브해와 브라질, 미국 남부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끌려간 흑인노예는 자그만치 1300만명에 달했다니까요. 생각해보세요. 한창 일할 나이 젊은이들이 다 빠져나갔으니 어떻게 됐겠어요.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성장의 동력을 잃었다고 봐도 무방하죠.

 

21=아프리카가 지금까지 가난을 대물림 하게 된 원인도 설탕 때문이라 할 수 있나요?

 

=그렇게 볼 수 있답니다. 당시에도 배를 타고 자메이카나 바베이도스까지 가는 길이 혹독했데요. 더 많은 노예 태우려고 빽빽하게 밀어 넣었고 물도 주지 않고 탈수증으로 죽어나갔데요. 그래서 아프리카 대륙이 시야에서 벗어나는 순간 바다에 뛰어드는 흑인들도 많았대요. 신대륙에 오면 경매에 붙여져 여러 농장주들에게 팔려가고 하루 18시간 중노동에 풍토병까지 걸려 죽어가고...

 

22=이게 보통이 아니네요?

 

=그래서 1791년 영국의 윌리엄 폭스는 설탕 1온스(28그램)는 인간의 살 2온스와 같다고 하면서 카리브 산 설탕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어요. 운동 시작하고는 카리브산 설탕 소비량이 반짝하고 3분의 1로 줍니다. 그 카리브해산 설탕 불매 운동은 1807년 노예 무역 폐지에도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 운동은 실패로 끝나게 되죠.

 

23=설탕에 중독된 사람들이 어떻게 끊을 수 있나요? 그럼 설탕은 우리나라엔 언제 들어왔죠?

 

=18~19세기 실학자인 이규경은 이런 글을 남겨요. “요사이 국내외에서 사탕을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유독 나만 없다. 굉장히 비싼 음식인데하면서 입맛을 다십니다.

당시 일본 나가사키나 오키나와를 오가는 네덜란드 배가 조선에 표류하는 일이 생겼느데, 배를 수색해보면 정제되지 않은 흑당이 나왔답니다. 이규경은 그 맛을 본 것 같은데요. 얼마나 맛있었는지 점입가경의 맛이었다고 하면서 더 먹고 싶다고 입맛을 다신거죠..

 

24=이규경도 설탕 맛에 중독된 거네요?

 

=그렇죠, 어렸을 때 주전자에 설탕물 가득 담아 마신 기억이 나요. 주전자 커피에 설탕 타서 먹기도 했고요. 저희도 어렸을 때부터 중독된거죠. 1960년대 삼립 빵, 크림빵, 5원짜리 아이스케키도 잊을 수 없어. 카스텔라는 그렇구요. 지금도 먹고 싶지만 저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죠.

 

25=비만과 당뇨 질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으니까 만성질환의 주범인 설탕은 줄여야겠네요?

 

=당뇨병 혹은 당뇨 고위험군에 속한 이가 무려 1000만에 이르고 전세계적으로는 4억명이 훨씬 넘는데요. 혹시 감탄고토, 구밀복검, 감언이설 뭐 이런 사자성어 아시나요?

 

26=그리 좋은 사자성어는 아닌 것 같은데요?

 

=영어에서는 달콤하다는 스윗트잖아요. 이런 사자성어를 보더라도 동양에서는 단맛의 함정을 일찌감치 간파했고, 너무 빠지지마라는 경고를 사자성어를 통해 하고 있는 거죠. 물론 당인 탄수화물은 단백질, 지방과 함께 몸에 꼭 필요한 3대 영양소지만 과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