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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 조유전과 떠나는 한국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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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00년전의 무역항 해남 군곡리 ㆍ해남은 고대 동북아의 ‘물류허브’ 였다 1983년 3월 어느 날. 황도훈이라는 해남의 향토사학자가 있었다. 해남문화원장을 지내면서 고향 땅을 답사하는 것을 여생의 일로 삼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군곡리 마을을 지나던 황씨의 눈길이 멈췄다. 무슨 옹관 같은 유물이 눈에 띈 것이었다. 게다가 불에 탄 흔적도 있었다. ■ 2300년 전 음식물 쓰레기장 ‘이건 야철지 아닌가.’ 독학으로 고고학을 배우던 그의 눈엔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는 행장을 꾸려 서울로 올라가 서울신문사를 찾았다. “회사 논설위원 중에 해남 사람이 있었는데, 황도훈씨와 친구였지. 그 인연으로 우리 신문을 찾아온 거지요.”(황규호 전 서울신문 기자) 황 기자는 즉시 황도훈과 함께 해남으로 내려갔다. 최성락 목포대 교수와도..
(6) 1만년전의 세계 제주 고산리(下) 제주 고산리 | 이기환 선임기자 lkh@ky ㆍ1만년전 땅을 밟고 내려와 온난화의 바다에 갇히다 1만1000~1만년 전 제주로 내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후기 구석기 최말기(세형돌날문화)~신석기 여명기(고토기문화)를 산 경계인들이었다. 출발지는? 고산리 신석기 유적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강창화(제주문화예술재단)는 지금의 아무르 강 유역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식물성 고토기의 모양이 아무르강 유역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 점을 꼽는다. 그들은 어떻게 이 머나먼 제주 땅까지 왔을까. ■ 육지였던 황해 “일단은 1만년 전의 기후나 지형을 한 번 살펴봐야겠지.”(조유전 토지박물관장) “예, 그런 의미에서 당대의 기후와 해수면의 변화를 연구해봤습니다.”(강창화) 박용안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린 최종 빙하기의 해안선과 강..
(5) 1만년전의 세계 제주 고산리(上) 제주 고산리 | 이기환 선임기자 lkh@ky ㆍ구석기와 신석기의 경계를 풍미한 맥가이버들 1987년 5월 어느 날. 제주도 서쪽 끝 마을인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 흙을 갈고 있던 마을주민 좌정인(左禎仁)씨가 돌 두 점을 주웠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뭔고?” 고구마처럼 생긴 돌이었는데, 예사롭지 않았다. 좌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돌 두 점을 집으로 가져갔다. “(윤)덕중아, 이 돌들이 이상하게 생겼는데 한번 봐라.” 마을엔 제주대 사학과에 다니던 윤덕중이란 학생이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 이 심상치 않은 돌을 보여준 것이다. 윤덕중 학생은 이 돌 두 점을 다시 스승인 이청규 제주대 교수(현 영남대)에게 보여주었다. 이 교수는 곧 돌을 수습한 현장에서 지표조사를 벌였다. ■농부가 찾은 1만년 전..
(1) 전남 화순 대곡리 출토 청동예기 화순 대곡리 | 이기환 선임기자 ㆍ엿장수 안목 덕분에 고철 위기 벗어난 ‘국보’ 고고학자 조유전 토지박물관장(67)과 함께 한국사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절대적 사료의 부족에다 난개발까지 겹쳐 이리 찢기고 저리 찢긴 우리 역사의 편린이나마 복원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역사복원을 위해서는 공허한 주장보다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고고학 조사에서 확보된 유물과 유적을 토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최근 조사된 따끈따끈한 발굴 성과를 중심으로 하겠습니다. 또 하나, 경제 개발에 모든 가치를 두고 문화유산을 개발의 걸림돌로만 여기고 있는 요즘 문화유산을 발견하고 지킨, 이름 없고 빛도 없는 백성들의 이야기와 역사복원에 정열을 바친 고고학자들의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여행을 이끌 조유전 관장은 모든 학설·학맥·인맥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