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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301

"한반도엔 없는 돌"…가락국 허황후 '파사석탑의 정체' ‘한반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돌이라면….’ ‘가야본성’ 특별전이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는 아주 괴이하게 생긴 돌을 6층으로 쌓아놓은 탑이 하나 서있다. 이름하여 파사석탑(경남 문화재자료 제227호)이다. 원래 경남 김해의 허황후릉 한편에 서있었던 것을 전시와 보존처리 등을 위해 이번에 옮겨왔다.‘가야본성 특별전’과 보존·복원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온 파사석탑. 고려대 산학협력단의 비파괴분석결과 한반도에서는 나지 않는 엽랍석 성분의 사암으로 밝혀졌다. ■신비로운 돌탑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이 고려대 산학협력단에 이 탑의 산지와 특성을 분석 의뢰했더니 흥미로운 결과보고서()가 나왔다. 대자율(암석이 지니는 자성)과 X-선 형광, 적외선 분광 등 비파괴분석으로 들여다보니 1~6층의 재질은 상당.. 2019. 12. 20.
둑 쌓고 이익금 분담한 1500년전 신라 토지문서 94자 출현 결(結)과 부(負), 곡(谷)과 답(畓), 제(堤) 등 확인가능한 글자만 무려 94자…. 1500년전 신라인들이 마을에 둑을 쌓고 그 쌓은 둑 덕분에 받은 혜택에 따라 일종의 이익분담금을 냈고 그 이익분담금을 ‘결’과 ‘부’라는 토지단위로 계산했음을 시사해주는 일종의 토지 관련 문서가 경산 소월리에서 확인됐다. 이 자료는 신라의 토지제도인 결부제가 기존 문헌자료보다 100~150년 정도 앞선 시기인 6세기 중엽에 시작되었다는 추정도 가능케 한다. 또한 이 문서에는 신라판 ‘인터넷 축약글자’인 ‘답(畓)’자도 포함돼 있었다. 목간에 쓰여진 글자. ‘감말곡’이라는 마을의 논답 7결과 ‘둑(堤) 위의 1결’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윤선태 교수는 이것을 지역할당이라고 해석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둑(堤) .. 2019. 12. 11.
1500년전 신라인의 인터넷 줄임말?…'수전(水田)' 대신 '답(畓)'자를 쓴 이유 “어 이거 ‘답(畓)’자네.” 지난 6일 경북 경산 소월리에서 사람 얼굴 모양 토기와 함께 출토된 목간을 판독하던 전문가들의 눈이 빛났다. 이 목간은 마을(谷)에 쌓은 제방(둑·堤) 덕분에 혜택을 본 주민들에게 이른바 이익분담금을 할당하면서 토지 단위인 ‘결(結)과 부(負)’를 기준으로 삼은 내용으로 얼개가 읽혔다.통일신라 시대의 공문서인 촌락문서에 보이는 답(畓)자. 촌락문서에는 ‘전답’이라는 표현이 많다.그런데 94자에 달하는 글자를 한자한자 읽으면서 특히 눈에 밟힌 것이 있었으니 바로 논을 뜻하는 ‘답(畓)’자였다. 김재홍 국민대 교수 말마따나 이 ‘답’자는 중국에도 없고, 심지어 인근 백제에서도 쓰이지 않던 신라 고유의 글자이기 때문이다. 답(畓)은 글자 형태가 보여주듯 물 수(水)자와 밭 전(田.. 2019. 12. 11.
고무대야, 양동이에서 삼립빵봉지까지…무자비한 가야고분 도굴 흔적 ‘빨간 고무대야와 고무양동이, 그리고 삼립빵 봉지까지….’ 28일 경남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 내에서 도굴의 화를 입지않은 63호분 덮개돌 개방행사를 현장취재하던 기자의 눈을 찌푸리게 한 장면이 있었다.제비뽑기로 TV 기자들을 위한 공개가 시작돼 신문기자들은 차례를 기다리던 차에 63호분 위에 조성된 39호분 발굴성과를 양숙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으로부터 듣고 있었다. 5세기 후반 무덤으로 보이는 39호분은 교동·송현동 고분 250여기 중 세번째로 규모가 큰 무덤이다.창녕 교동 송현동 고분군 중 39호분애서 눈에 띈 빨간 고무대야와 고무양동이….무자비한 도굴으 흔적이다.창녕|이기환 선임기자 450~500년 사이 가야연맹의 소국 중 하나인 비화가야를 다스린 39호분의 주인공은 약 50년 가량 .. 2019.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