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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 금관' '기생 금관'…서봉총 금관 “마-블러스!(경이롭구나!)” 1926년 10월 10일 경주 노서동의 고분 발굴장에서 이국(異國)의 감탄사가 터졌다. 스웨덴의 아돌프 구스타프 황태자(재위 1950~73)였다. 일제는 당시 일본을 방문 중이던 황태자 부부를 위해 이벤트를 펼치고 있었다. 마침 경주에서 봉황이 장식된 금관이 발견된 것에 착안했다. 일제는 유물 일체를 노출시켜 놓고 황태자 부부에게 발굴의 피날레를 장식하도록 한 것이다. 구스타프 황태자는 북유럽·그리스·로마의 고분을 발굴한 경험이 있던 고고학자였다. 경주를 방문한 황태자는 일제가 반쯤 노출해놓은 금제 허리띠와 금제 장식 등을 조심스레 수습했다. 발굴단의 마지막 한마디가 황태자를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이 금관을 전하께서 수습해주시옵소서.” 황태자가 금관을 들어올리자 환성과 박..
대장금, 장덕, 애종…조선의 여의사 열전 팟캐스트 15회 주제는 ‘대장금’입니다. 대장금으로 대표되는 조선 시대 최고의 커리어 우먼들의 이야기, 즉 입니다. 조선에서 여자의사가 탄생한 배경이 재미있습니다. 태종·세종 때의 일인데, “남자 의사가 (진맥을 한다면서) 여인들의 살을 주무르게 되니 망측스럽다”는 상소가 올라왔습니다. 남자의사의 손길이 무서워 병을 감추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아녀자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전국 8도의 10~15살 관기들 가운데 영리한 여자아이들을 뽑아 서울로 유학시켰습니다. 이들은 3년간 혹독한 의학공부를 한 끝에 의녀가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의녀 가운데 대장금은 군계일학이었습니다. 사극 에도 묘사됐듯이 사실상 중종 임금의 주치의 노릇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종 임금은 남자의사들을 내치고 대장금을 비롯한 의녀..
한국축구에 꽃을 던지는 이유 축구대표팀이 아시안컵 준우승을 차지한 지난 1월31일 밤부터 포탈사이트에는 흥미로운 검색어가 떴다. ‘차두리 고마워’였다. 네티즌들이 호주와의 결승전을 끝으로 은퇴하는 차두리 선수에게 “고마움의 메시지를 전하자”면서 자발적인 검색어 운동을 벌인 것이다. 경기 하루 뒤인 2월 1일 ‘차두리 고마워’ 검색어에는 200만 이상의 클릭이 기록됐다. 연장전에서 실수한 김진수 선수에게도 ‘괜찮다’는 위로의 메시지도 나왔다. ‘모든 선수들에게 꽃을 던지자’는 상찬의 릴레이도 끊이지 않고 있다. 분명 기현상이라 할 수 있다. 아시안컵에서 55년만의 우승을 노렸기에 준우승의 ‘결과’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들은 대표팀이 보여준 ‘좋은 과정’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축구는 20..
'바보 임금'이라도 좋다-정도전의 재상론 “군주의 권한은 단 두가지 뿐이다. 하나는 재상(宰相)을 선택·임명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 한 사람의 재상과 정사를 논하는 것이다.”() 삼봉 정도전(1342~1398)의 ‘재상론’은 혁명적이다. 재상을 잘 뽑아서 그와 모든 국정을 논하는 게 바로 군주의 권한이라는 것이다. 정도전은 더 나아가 “군주는 국가적인 대사만 ‘협의’할 뿐 다른 정사는 모두 재상에게 맡겨야 한다”고까지 했다. 누가 봐도 군주를 ‘핫바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정도전은 ‘왕권’을 외쳤던 이방원(태종)의 칼에 죽고 말았다. 당시 왕조시대였기에 받아들일 수 없었던, 너무도 혁명적이었던 주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정도전이 재상정치를 ‘꿈꿨던’ 이유를 곱씹어보면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군주는 현명할 때도 있지만..
세종대왕은 성군이 아니었다 팟 캐스트 14회는 세종대왕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만고의 성군’이나 ‘해동의 요순’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감히 ‘세종은 성군이 아니었다’는 주제로 이야기할까 합니다. 물론 세종대왕의 업적은 필설로 다할 수 없습니다. 백성을 긍휼히 생각하는 세종의 마음씨 역시 실록에 나와있는 그대로입니다. 죄인들의 귀휴제도를 만들었고, 관노비들의 출산휴가를 늘렸으며, 심지어는 그 남편들에게도 출산휴가를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상상이나 하십니까. 세종시대에 관노비의 남편에게 30일 간의 출산·육아휴가를 주었다는 사실을…. 더욱이 형을 살고 있는 죄인들의 목욕관리까지 신경을 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치세에 가려진 반전의 역사도 있습니다. 그 시대에 있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른 것도 아닌, ‘실록’을 ..
'황희 스캔들'에 얽힌 내막 “사람들이 우러러 ‘어진 재상(賢宰相)’이라 했다. 관후하고 침중했으며, 집을 다스림에도 검소하고….” “성품이 지나치게 관대해서 제가(齊家)에 단점이 있었다. 청렴결백한 지조가 모자랐다. 정권(政權)을 오랫동안 잡고 있어서 자못 청렴하지 못하다(頗有보궤之초)는 비난을 받았다.” 둘 다 1452년(문종 2년) 2월 8일 에 등장하는 황희 정승의 졸기(卒記·부음기사)이다. 완전히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보통의 부음기사(obituary)를 보면 그 사람의 생애를 잔뜩 상찬해놓고는 말미에 ‘그러나’라는 토를 달아 아쉬운 행적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졸기와는 경우가 다르다. 황희 정승의 초상화. 황희는 어진 재상이라는 찬사와 함께 몇가지 흠결을 함께 지적당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황희는 태종..
당신은 폭군입니다…지록위마 다시 읽기 오리무중(五里霧中), 이합집산(離合集散), 우왕좌왕(右往左往)…. 교수신문이 2001~2003년까지 내놓은 사자성어를 보라. 이렇게 알아듣기 쉬웠다. 대통령 탄핵과 수도 이전 등의 대형 이슈가 터진 2004년의 ‘당동벌이(黨同伐異·같은 패끼리 모이고 다른 패를 공격한다)’는 그래도 촌철살인이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였다. 교수신문은 2006년부터 새해 벽두부터 그 해의 ‘희망의 사자성어’도 선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갈수록 선정된 사자성어가 어려워졌다. 전국을 순행중이던 진시황이 급서하자 중거부령과 부새령을 겸했던 환관 조고가 바삐 움직였다. 황제의 유서를 조작해서 진시황의 막내아들 호해를 후계자로 옹립한 뒤 국정을 농단햇다. 그는 특히 궁궐의 출입을 관리 통제하는 낭중령에 올라 황제와 신하들의 소통을 끊고..
조선판 4대강 공사의 허와 실 팟 캐스트 12회는 ‘고려·조선판 4대강 공사가 남긴 교훈’입니다. 고려·조선에 무슨 4대강 공사냐구요. 물론 4대강 공사를 벌인 것은 아니고, 4대강 공사의 과정을 쏙 빼닮은,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다른 국책사업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운하공사입니다. 고려·조선 때 국가재정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바로 세곡(세금으로 받은 곡식)을 서울(개경 혹은 한양)으로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던 육로로는 어려운 일이었기에 주로 해로, 즉 조운선을 이용해서 옮겼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려·조선 때 안흥량으로 일컬어졌던 지역, 즉 지금의 충청도 태안 앞바다가 가장 큰 고비였습니다. 안흥량 해역은 물살이 험하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조운선들이 번번이 침몰하고 선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