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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겨운 간디, 굶어죽었으면 좋겠다" “간디씨를 보니 놀랍고, 역겹다. 탁발승 모습으로 총독 관저의 계단 위를 반나체로 올라가는 꼴이라니….” 윈스턴 처칠은 1930년대 초 비폭력 자치·독립 운동을 펼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를 입버릇처럼 ‘반나체의 거렁뱅이’로 표현하며 증오했다. 그는 ‘불멸의 대영제국’을 외쳤던 제국주의자로서 ‘영국의 나치’로까지 일컬어지던 극우파였다. 이 때문에 영국이 유럽보다도 큰 대륙의 3억 인구를 통치해온 그 엄청난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처칠은 당시 영국 내의 ‘인도 자치’ 움직임에 분노했고, 비폭력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던 간디에게 극도의 분노감을 표한 것이다. 심지어 단식투쟁을 펼치던 간디를 향해 “굶어죽었으면 좋겠다”는 악담을 퍼부었단다. 처칠에게 간디는 ‘악의 축’이었던 것이다. 당시 인도 총독이..
'탕탕평평 평평탕탕' ‘홍재(弘齋)’ ‘탕탕평평평평탕탕(蕩蕩平平平平蕩蕩)’ ‘만기(萬機)’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조선의 중흥군주라는 정조가 자신의 저작물에 찍은 장서인(인장) 71종을 분석한 논문을 보라.(김영진·박철상·백승호의 ‘정조의 장서인’, 45집,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백성을 대하는 임금의 자세가 절절이 묻어난다. 정조가 즐겨 사용한 장서인 가운데 '만기' 인장이 눈에 띈다. 정조의 만기친람은 유명했다. 심지어 "'깨알지시'를 내리지 말아달라" "건강 좀 챙기라"는 대신들의 부르짖음에 정조는 "보고서 보는게 취미인데 어떡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김영진 외의 '정조의 장서인', 45집에서 ■침실 이름이 '탕탕평평실' 우선 ‘홍재’는 “뜻을 크게(弘) 가져라”는 증자의 가르침을 새긴 것이다. "증자..
고려·조선을 강타한 사교육 열풍 이번 주 ‘흔적의 역사’ 팟 캐스트의 주제는 ‘고려·조선을 뒤흔든 사교육 열풍’입니다. 지난 주 살펴봤듯 이 나라 사람들의 교육열은 지독합니다. 이미 1200년 전에 남의 나라(당나라) 땅에서 신라와 발해인들이 내가 잘났니, 네가 잘났니 하는 등 서로의 우열을 다투는 볼썽 사나운 작태까지 연출하지 않았습니까. 역사에 길이 남을 문장가라는 최치원까지 가세했다니 말입니다. 고려 조선에 들어와서도 더했으면 했지, 덜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고려시대 때는 12개 명문사학들이 과거시험에 자기 학생들을 합격시키느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답니다. 최충의 문헌공도 등은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유명한 사찰을 빌려 학생들을 50일 간이나 합숙시켰답니다. 그래놓고는 졸업생 가운데 뛰어난 선배들을 특별 강사로 초청해서 이른바 족집..
'공자왈' 판결의 두 얼굴 ‘공호이단 사해야이’(攻乎異端 斯害也已)’ 얼마 전 서울고법 형사 6부 김상환 부장판사가 국정원의 대선개입의혹 사건 항소심에서 매우 흥미로운 판결문을 썼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유명한 ‘자왈(子曰·공자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즉 ‘위정’에 나오는 ‘공호이단 사해야이’, 즉 ‘나와 다른 쪽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배척한다면 자신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꼬집은 것이다. 김 판사는 이어 “이단(異端)에 대한 공격과 강요가 결국 심각한 갈등과 분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라고 했다. 세상을 등진채 밭을 갈고 있는 은자에게 길을 묻는 공자와 제자들을 그린 그림. 공자는 끊임없이 세상에서 쓰임받기를 원했다. 도가는 그런 공자에게 세상의 미련을 끊으리고 했다..
최치원, 발해를 향해 쌍욕을 퍼부은 까닭 팟캐스트 19회는 ‘최치원이 발해를 향해 쌍욕을 퍼부은 까닭’입니다. 9세기 말 만고의 명문장가라는 최치원이 막말을 퍼붓습니다. 발해를 겨냥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갈과 모래같은 무식한 놈들’, ‘추한 오랑캐’, ‘떼강도’, ‘군더더기 같은 부락민’…. 그뿐 아니라 멸망한 고구려를 두고도 ‘고구려의 미친바람’이라고 합니다. 최치원은 과연 왜 발해를 향해 쌍욕을 해댔을까요. 새삼 북한이 남측 정부와 인사, 미국정부와 인사들에게 퍼붓는 막말이 떠오릅니다. 이명박 전대통령이 회고록을 내자 ‘정치 무능아’, ‘못난이 하는 짓마다 사달’, ‘돌부처도 낯을 붉힐 노릇’, ‘역사의 시궁창에 처박힌 산송장’이라 표현했지요.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시집못간 노처녀의 술주정’ ‘유신군사깡패의 더러운 핏줄’, ‘살인마 악..
진시황의 분서와 IS의 문명파괴 기원전 213년, 진시황제가 6국을 통일한 뒤 주연을 베풀었다. 이 때 제나라 출신 박사인 순우월이 나서 간언했다. “이제 폐하께서 천하를 소유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제분들은 평민으로 사십니다. 만약 세력을 키운 신하들이 나타나면 폐하를 보필하기 어렵습니다. 은나라, 주나라 처럼 폐하의 자제들을 제후로 분봉해서 폐하를 보위하셔야 합니다.” 이슬람국가(IS)가 파괴한 기독교 유적지 ‘요나의 무덤’ 잔해를 주민들이 옮기고 있다. ■진시황의 분서사건 무슨 말이냐. 은나라나 주나라 처럼 황제의 아들이나 친척, 혹은 공신들을 제후로 보내 다스리는 이른바 봉건제를 채택해야지, 중앙집권제로는 천하를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시황제는 순우월의 주청을 공론에 붙였다. 그러나 시황제를 도와 통일 진나라를 세우는데 결정적..
국보 보물 사적 1호의 불편한 진실 “포차 왕래에도 지장이 있는 문이다. 그런 낡아빠진 문은 파괴해버려야 한다.” “한성부(서울시)에 예산이 없어 이전은 너무도 곤란한 것이었다. 그래서 포병대의 도움으로 대포의 탄환으로 문을 포격해서 파괴하는 것도 생각했는데….” 남대문(승례문) 이야기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했을 즈음, 남대문의 운명도 풍전등화 격이었다. 일본인 연구자인 오타 히데하루는 2002년 제출한 서울대 석사논문() 에서 그 사연을 풀어놓는다. 즉 을사늑약의 결과로 통감부가 개설되자 서울 거주 일본인들의 모임인 일본거류민회는 대대적인 ‘도시개조’를 계획했다. 핵심은 용산을 포함한 지역에 40~50만명을 수용할 신시가지를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1934년 8월27일자 총독부 관보에 오른 보물 목록. 보..
'국보 1호', 정녕 어찌하오리까. 팟 캐스트 18회는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겠습니다. 국보 1호 논쟁입니다. 국보 뿐 아니라 보물 1호, 사적 1호도 논쟁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논쟁은 10년마다 재연되어 왔습니다. 1995·2005년 광복 50·60주년을 맞아 10년 주기로 불거졌지요.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도 재연될 것 같습니다. 문화재청이 2월 말까지 문화재에 부여되는 관리번호지정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한다니 말입니다. 여기에 광복 후 고희(古稀)를 맞는 해니만큼 ‘국보 1호(숭례문)’의 지위를 둘러싼 가열찬 논쟁이 재연되겠네요. 1934년 8월27일 조선총독부 관보에 나온 사상 첫 지정문화재 목록. 경성 남대문(숭례문)과 경성 동대문(흥인지문)을 보물 1호와 2호로 등재했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