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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고분’ 속 ‘모계 근친혼’ 흔적…1500년 전 영산강은 ‘여인천하’ 1996년 5월 어느 날이었다. 영산강 유역인 전남 나주 다시면 복암리 3호분을 발굴 중이던 전남대 조사단이 심상치않은 징후를 발견했다. 굴삭기로 쌓인 소나무를 정리하면서 흙을 걷어내다가 큰 판석(판자 모양의 큰 돌)들이 노출된 것이었다. 판석과 판석 사이에 주먹 크기의 틈새가 보였다. 고분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흥분된 마음으로 손전등을 비춰보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함척(函尺·측량 자)을 넣어 보았다. 하염없이 들어갔다. 180㎝도 넘는 깊이였다. 영산강의 여성파워 영산강 유역인 나주 복암리와 영동리, 정촌 고분 등에서 ‘여성파워’, 즉 모계사회의 흔적을 잇달아 나타나고 있다. 40대 여성 지도자와 모계가 같은 남매끼리의 근친혼을 짐작할 수 있는 무덤과, 여성들만 보이는 여성전용 무덤의 흔적..
며느리를 ‘개××’라 욕한 임금…‘독 전복구이’ 올가미로 죽였다 ‘구추(狗雛)’라는 말이 있다. ‘개 구(狗)’에 ‘병아리 추(雛)’자인데, ‘개새끼’라는 쌍욕으로 번역된다. 888책 4770만자에 이른다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이 ‘구추’라는 욕이 딱 한 번 나온다. 그렇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절대 지존이라는 임금이, 그것도 남도 아닌 며느리에게 내뱉었다. 1646년(인조24) 2월8·9일이었다. 사간원 헌납 심로(1590~1664) 등이 인조에게 신신당부한다. “강빈이…소현세자의 부인이었으니 전하의 자식이 아닙니까. 그러니 선처를 베푸시어….” 그러자 인조가 “개새끼를 억지로 임금의 자식이라고 칭하다니, 나에게 모욕이 아니고 무엇이냐.(狗雛强稱以君上之子 此非侮辱而何)”고 앙앙불락했다. 인조가 언급한 ‘개새끼’는 다름아닌 자신의 맏며느리인 소현세자빈 강씨(1611..
'일본인의 피가 흐른다'…3·1운동 급소환한 '금동관 고분' “전라도 남부와 제주도는 왜인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조선인에게는 일본인의 피가 섞여있다…”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1880~1959)라는 인물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평양의 고구려·낙랑 고분과 부여 능산리 고분은 물론이고 전남 나주 반남 고분을 파헤친 역사·고고학자이다. 그런 그가 1920년 (1월·151호)에 기고한 글(‘상고시대 일·한 관계의 일부·上世に 於ける 日韓關係の 一斑’)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1500년전 금동관 1917년 전남 나주 반남면 신촌리 9호분에서 확인된 금동관(국보). 국내에서 출토된 금(동)관 가운데 가장 먼저 출토된 완형이다. 꽃봉오리와 구슬, 덩굴풀 무늬 등을 장식한 풀꽃형 금동관이다.|사진 국립나주박물관·그림 이한상 대전대 교수 제공 “조선의 남부에는 왜인 고분이 있..
‘7일의 왕비’, 233년만의 '복위'에 538명중 537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7일의 왕후’ 단경왕후 신씨가 폐위된 지 233년만인 1739년 복위되면서 ‘단경’이라는 시호를 받고 종묘에 신주가 안장되는 과정을 그린 반차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516년 3월28일 (‘세가·명종’)를 읽던 상(중종)이 깊은 한숨을 쉬며…‘멍’하니 있었다.”() 조선조 중종이 를 읽다가 시쳇말로 ‘멍 때렸다’는 기사입니다. 문제의 구절은 ‘고려 무신정권의 핵심인 최충수(?~1197)가 태자(희종·1204~1211)의 조강지처(태자비)를 내쫓고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삼으려 했던 대목’입니다. 최충수 때문에 쫓겨난 태자비가 흐느껴 울자 궁궐이 눈물바다를 이뤘다는 겁니다. 중종은 서슬퍼런 신하의 겁박에 조강지처를 내쳐야 했던 고려 희종에게서 동병상련을 느낀 겁니다. 의 사관도 중종의 심정을 대변합니..
벽화 속 ‘빨간 립스틱의 화장남과 화장녀’…“고구려인은 패션피플” “지금 그대의 냄새를 맡으니 향기가 범상치 않고 그대의 손을 만져보니 솜처럼 부드럽습니다.” ‘열전 온달’의 한 귀절이다. “온달과 결혼 할래!”를 외치다가 쫓겨난 평강공주가 누추한 온달 집을 찾았다. 온달은 부재중이었다. 시각장애인인 온달의 노모는 공주가 들어서자 몸에서 나는 향을 느꼈다. 노모는 솜처럼 부드러운 공주의 손을 잡고 “그대처럼 천하의 귀한 분이 올 곳이 못된다”고 했다. 고구려벽화분에서 보이는 짙은 화장의 흔적. 연술연지(립스틱)은 물론 볼에도 백분이나 홍분을 발랐고, 곤지까지 찍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전호태 교수 설명 ■평강공주의 몸에서 향기가 났다 하기야 공주로 태어나 ‘불면 날아갈세라, 만지면 터질세라’ 궁궐에서 고이 자란 분이 아니던가. 그런 분이 누추한 온달의 집을 방문했다..
"뼈가 가루가 되도록 싸웠다’…사료 만으로 따져본 양규의 7전승 신화 “나는 왕명을 받고 왔지, 강조의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我受王命而來 非受兆命)”(양규)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KBS 사극 ‘고려거란전쟁’을 계기로 새삼 부각되는 역사적인 인물 두 분이 계십니다. 한 분은 ‘고려판 세종대왕’으로 통하는 고려 현종(992~1031, 재위 1009~1031)이죠. 1254년 몽골의 잇단 침략에 시달리던 고종(1231~1259)이 종묘에서 ‘국난 극복’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면서 ‘현종=세종대왕’으로 지칭하죠. “세종대왕(世宗大王·현종)께서 큰 난리를 평정하여 중흥과 반정(反正)의 공을 세웠다”고 표현한 겁니다. 본래 ‘세종’이라는 묘호는 나라를 중흥시켰거나 반석 위에 올려놓은 군주에게 사후에 올리는 건데요. 현종은 비록 ‘세종’의 묘호를 받지는 않았어도 고려시대 내내 ..
'고려도경' 서긍은 간첩단 두목이었다…송나라 사신단의 ‘넘버4맨' 쓴다 쓴다 하면서 미뤄뒀다가 해를 넘긴 아이템이 있습니다. 을 쓴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고려를 방문한 지 900주년 되는 해가 2023년이었는데요. 그러나 그냥 넘길 수 없죠. 음력으로 치면 아직 해가 바뀌지도 않았고요. 고려를 방문하고 귀국한 서긍이 을 써서 송 휘종(1100~1125)에게 바친 것이 1124년(인종2)이었습니다. 따라서 2024년은 편찬 900주년이 되는 해가 됩니다. 그러니 ‘~주년 기념’ 기사는 유효하겠지요. ■비색청자와 세밀가귀 하면 ‘비색청자’가 첫손가락으로 꼽히죠. “도기의 푸른 빛을 고려인은 비색(翡色)이라 하는데, 근래에 더욱 정교해져서 빛깔이 좋아졌다.”( ‘기명3·도준’) 고 했습니다. 나전칠기의 정교함과 세밀함을 일컫는 ‘세밀가귀(細密可貴)’도 빼놓..
580년 만에 ‘갑툭튀’한 장영실의 ‘신상정보’…새빨간 가짜뉴스일까 80년 만에 ‘갑툭튀’한 장영실의 ‘신상정보’…새빨간 가짜뉴스일까 2022년 5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조선의 현판, 궁중현판’ 특별전에 등장한 ‘활자 주조를 감독한 신하 명단을 새긴 현판’. 그 현판에 천재과학자 ‘장영실’의 직위(호군)과 자(실보), 탄생연도(계유·1393), 본관(경주)가 적혀있었다.|국립고궁박물관·강민경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연구사 자료 호군-장영실-실보-계유-경주인’. 2022년 5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조선의 현판, 궁중현판’ 특별전을 둘러보던 강민경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눈이 번쩍 뜨이는 현판 1점을 보았다. ‘활자 주조를 감독한 신하 명단을 새긴 현판’(이하 현판)이었다. 1857년(철종 8) 창경궁 화재로 불탄 주자소를 재건하면서(1858) 내건 현판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