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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만에 출현한 경주 금동신발의 정체…"왕족 혹은 귀족의 가족 무덤" 경주에서 43년 만에 출토된 금동신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혈연관계인 일가족의 아들묘인가. 일제가 붙인 일련번호(120호)로만 알려져있을 뿐 고분의 존재조차 파악할 수 없게 훼손된 경주 고분은 금동신발 등을 부장한 신라 왕족 혹은 최상위 귀족의 가족무덤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금동신발이 노출된 경주 황남동 120-2호 고분. 120-2호는 120호의 일부를 깎아 후대에 조성된 무덤이다. 120호 주인공과 혈연관계인 일가족의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금동관의 흔적도경주 황남동의 120호 고분을 발굴중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120호 고분과 연접해서 소규모로 조성된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120-2호)에서 금동신발과 허리띠 장식용 은판, 각종 말갖춤 장식 등 최상위급 유물이 출토됐다”..
'문화재 독립운동가' 간송…문화재 상속세 한푼도 낼 필요없는 이유 (이 기사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292회 대본입니다.)최근 문화유산 분야에서 핫뉴스가 터졌는데요. 간송미술관이 자기들이 소장 중인 보물 불상 2건을 경매에 내놨다는 소식입니다. 국보 보물을 그렇게 시장에 내놔도 되는 건지도 궁금하고, 한 미술관이 소장한 유물을 내다 파는 것이 그렇게 뉴스가 되는 것지도 궁금합니다. 오늘은 보물을 매물로 내놓은 간송미술관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봅니다.일제 강점기에 전 재산을 털어 문화재를 수집한 간송 전형필 선생 답=당연히 있습니다. 매매할 수 없게 만들면 누가 국보·보물을 소유하며, 또 누가 지정하려고 애쓰겠습니까. 지금까지 매매된 지정문화재를 보면 보물인 월인석보와 경국대전 등 보물 문화재들이 개인에서 개인, 개인에서 국립박물관 등으로 팔렸습니다. ..
연산군 앞에서 술잔 엎은 예조판서의 운명…"가문의 씨를 말려라!" “지난날의 성현들은 모두 사라지고 술 잘 하던 사람만이 이름을 남겼네…그대와 함께 마시면서 만고의 시름을 녹여 버리리라.”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의 ‘장진주(將進酒)’ 중 한 대목이다. ‘인생이란 뜻을 얻었을 때 즐겨야 하므로…마셨다 하면 300잔은 마셔야 한다’면서 풍류남아의 호방한 기백을 토해냈다. 그러나 한자 ‘술잔 치(치)’는 ‘위태로울 위(危)’와 비슷하고, ‘취할 취(醉)’에는 ‘술 유(酉)’ 변에 ‘죽을 졸(卒)’자가 붙어있다. 술잔에 위태로움이 있고, 술에 죽음이 따른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임금과 신하들의 술자리라면 어떨까. 심심찮게 죽음의 향연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술자리에서 ‘역린’을 건드려 군주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분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변해서 평소에..
가요속 '사랑' 단어, 90년간 4만3000번이나 사용됐다…국립한글박물관 특별전 집계 노랫말에서 사용된 단어중 최고는 역시 ‘사랑’이었다. 그 다음을 ‘말’과 ‘사람’, ‘눈물’, ‘때’가 이었다.국립한글박물관은 15일부터 10월18일까지 기획특별전()을 열면서 1920년부터 2010년까지 발표된 노래 2만6000여곡을 대상으로 노랫말에 등장하는 단어들의 빈도를 조사한 결과 ‘사랑’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목포의 눈물’ 가사지. 가사 중 ‘삼백연 원안풍’의 원래 가사는 ‘삼백년 원한 품은’이었다. 300년전 무렵이면 임진왜란(1592~1598년)이 연상된다.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가사를 바꿨다.|국립한글박물관 제공박물관측이 대중가요 노랫말의 발자취와 노랫말에 담긴 우리말과 글의 묘미를 소개하는 특별전을 기획하면서 한성우 인하대교수에게 조사를 의뢰해 1920~2010년..
'문체반정' 신호탄 쏜 정조의 책가도가 민간에 유행한 사연…호림박물관 특별전 “경들은 보이는가”(정조), “예, 보입니다”(신료들). 1791년(정조 15년) 조선의 중흥군주 정조(재위 1776~1800)는 군왕의 상징그림인 ‘일월오봉도’를 내리고 ‘책가도(冊架圖·책거리)’ 병풍을 내건 뒤 신료들에게 “이 그림이 보이느냐”고 물었다. 정조는 신료들이 “보인다”고 하자 ‘놀리듯’ “경들은 진짜 책이라 여길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그림”이라고 하며 ‘일월오봉도’를 내리고 ‘책가도’ 병풍을 내건 이유를 밝힌다.‘책가도’. ‘책가도’는 서가(書架)와 같은 가구를 중심으로 책은 물론 각종 고동기물(古銅器物)이나 문방구, 화훼 등을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조선의 중흥군주 정조는 군주의 상징인 ‘일월오봉도’ 병풍을 내리고 오로지 책만 잔뜩 쌓아놓은 ‘책가도’ 병풍을 내걸었다. 문체반정의 신호탄으..
"오장을 칼로 쪼개는 아픔"…전염병의 참상에 맞선 조선의 분투 “아, 슬프다. 너는 지금 나를 버려두고 돌아갔는가. 오장(五臟)을 칼로 쪼개는 것만 같구나…”. 1625년(인조 3년) 3월 조선의 예학자 정경세(1563~1633)가 두창(천연두)으로 죽은 맏아들 정심(1597~1625)을 기리며 쓴 제문의 첫머리다. 정심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정경세의 기대를 한몸에 모은 아들이었다. 26살인 1623년 가을부터 1년간 향시와 소과, 대과 등 모두 10차례 시험에서 연속으로 급제한 인재였다. 1774년(영조 50년) 현직관리를 대상으로 실시한 특별시험(등준시·登俊試)의 무과 합격자 18인을 기념하여 제작한 초상화첩(). 이중 김상옥 등 세 사람의 초상화에서 두창(천연두) 흉터가 확인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대과급제후 1년도 안된 1625년(인조 3년) 사람됨이 단아하..
원본은 아니지만 짝퉁도 아닌 '이항복 공신 증명서'…후손들이 모신 까닭 ‘공신교서는 틀림없는데…’. 지난해 11월 경주이씨 백사공파 종가가 기증한 백사 이항복 관련 유물을 검토하던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자들은 ‘이항복 호성공신 교서’에 특히 시선이 머물렀다.‘이항복 호성공신상 후모본’. 백사 이항복이 호성공신 작위를 받은다음 하사받은 초상화다. 후대에 옮겨그린 것이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호성공신 교서가 무엇인가. 선조(재위 1567~1608)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4년(선조 37년) 호성공신 86명, 선무공신 18명, 정난공신 5명에게 작위를 내렸다. ‘호성공신교서’는 임진왜란 중 임금(聖)을 의주까지 호종(扈)하는데 공을 세운 86명에게 작위를 내리면서 발부한 증명서다. 이항복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도승지(대통령 비서실장)로서 선조를 의주까지 모..
고려 금속활자, 구텐베르크에 뒤처진 5가지 이유…발명 했지만 혁명 없었다 ‘구텐베르크보다 빠르다고 하지만…’. 필자는 얼마전 (1377년 간행)보다 138년 빠른(1239년) 금속활자본(보물 제758-2호 공인박물관 소장 )이 국내에 존재하고 있다는 연구성과를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고려가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구텐베르크가 이룬 것 같은 혁명은 없었다’는 독자반응이 만만치 않았다. ‘발명은 있었지만 혁명은 없었다’는 뼈아픈 지적이 아닌가. 그렇다면 고려·조선은 왜 애써 금속활자를 만들어놓고 서양처럼 역사를 뒤바꾼 혁신을 이루지 못했을까. ‘갑인자’를 개발한지(1434년) 2년만에 간행한 . 구텐베르크는 그보다도 18년 늦은 1454년 구텐베르크 성서 180부를 발행했다. ■억지로 우겨 설립한 주자소굳이 이나 까지 들춰볼 필요도 없다. 구텐베르크(1400년 전후~146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