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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성문화는 '여성상위'였다. “신라의 경우 같은 성씨는 물론 형제의 자식이나 고종·이종 자매까지 아내로 삼았다.” 를 쓴 김부식은 “중국의 예속을 따진다면 도리에 크게 어긋난다”면서 신라의 풍습을 평했다. 신라의 자유분방한 성풍속을 웅변하는 고고학·역사학 자료는 많다. 예컨대 보량이라는 여인은 제22대 풍월주(화랑도의 수장·재임 637~640)인 양도공을 사랑했다. 그러나 둘은 어버지는 다르지만 어머니(양명공주)가 같은 남매사이였다. 양도공이 남매간의 혼인을 ‘오랑캐의 풍습’이라며 꺼렸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들을 껴앉고 말했다. “신국(神國·신라)에는 ‘신국의 도(道)’가 있다. 어찌 중국의 예로 하겠느냐.”() 경주 미추 왕릉 지구 계림로 30호분에서 출토된 토우장식 장경호. 다양한 성풍속이 보인다. 신라의 자유로운 성풍습을 ‘신..
'만약' 이성계의 장남이 2대 국왕이었다면 흔적의 역사 24회는 ‘가정법’입니다. 제목은 ‘만약 이성계의 장남이 살아있었다면…’입니다. 오늘은 ‘만약’이라는 가정법을 해보려 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가정법을 써보지 않습니까. 만약 한국전쟁이 나지 않았다면…. 중국군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조선이 임진왜란 때 완전히 쫄딱 망했었더라면…. 세종대왕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김구 선생이 안두희의 총에 서거하지 않았다면…. 뭐 이런 가정법 말입니다. 물론 역사를 읽는데 무슨 가정법이냐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끔씩은 가정법을 던져놓고 상상해보는 편도 흥미로울 것 같지 않습니까. 오늘은 이런 가정법입니다. ‘만약 태조 이성계의 장남인 이방우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개국 조선의 2대왕이 되었다면 어찌 됐을까’하는…. 또 아버지의 뜻에 반해 은거의 길을 택한..
'임금 아닌 임금'-덕종 스토리 최근 오랜만에 낭보가 들렸다. 문화재청이 미국 시애틀박물관이 소장중이던 ‘덕종어보’를 기증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덕종어보는 종묘 영녕전 덕종실에 있다가 1943년 이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해외로 유출됐다. 그러다 1962년 문화재 애호가인 토마스 스팀슨이 구매해서 시애틀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그런 덕종어보가 53년 만에 귀향한 셈이다. 이번 기증식에는 고인이 된 토마스 스팀슨의 외손자인 프랭크 베일리가 참석했단다. 그런데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해볼 수 있겠다. 덕종은 과연 누구인가. 추존왕인 덕종과 그의 부인 소혜왕후의 능인 경릉. 덕종은 성종의 친아버지이며, 20살에 요절했다. 성종은 아버지를 추존왕으로 모셨다. ■최초의 추존왕 중고등학교 시절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라면 줄기차게 외었을 ‘태정태세 문단..
서울은 '정도 2000년'이다. 600년이 아니다. 잘 알다시피 백제는 기원전 18~기원후 660년까지 678년을 이어온 고대국가였다. 그런데 우리에게 익숙한 백제는 아무래도 웅진(475~538)~사비 시기(538~660)의 백제일 것이다. 물론 이 185년의 백제 역사도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백제가 또 있다. 기원전 18~기원후 475년 사이에 한성을 도읍으로 삼은 백제이다. 놀라지마라. 이 한성백제는 전체 678년의 백제역사 가운데 4분의 3에 해당되는 492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31명의 백제 임금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21명이 한성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풍납토성 복원도. 온조왕이 처음 쌓을 때는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즉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게,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게' 궁실을 짓는다는 것이..
백성 버린 선조의 피란길, 그 참담한 징비록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23회 주제는 ‘백성 버린 선조의 피란길, 그 참담한 징비록’입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1592년(선조 25년) 4월 30일 선조 임금이 피란길에 오릅니다. 임진왜란 발발로 왜군이 쳐들어오자 ‘무조건 피란’을 결정한 것입니다. , 등을 보면 목불인견입니다. 선조가 벽제~혜음령을 지나자 밭을 갈던 백성이 대성 통곡합니다. “나랏님이 백성을 버리면 누굴 믿고 살라는 것입니까.” 선조 일행이 임진나루에 닿았을 때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임진강변의 승정(丞亭·나루터 관리 청사) 건물을 헐어 불을 피웠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임진나루 건너의 동파역에 도착하자 파주 목사와 장단 부사가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자 임금이고 뭐고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굶었던 호위병들..
'고려 외교 좀 배우라'고 가슴을 친 광해군 이번 주 팟캐스트 22회의 주제는 ‘광해군이 부러워한 고려외교’입니다. 조선의 광해군은 조정의 공론을 한심스러워하면서 “제발 고려의 외교 좀 배우라”고 했답니다. 세상 돌아가는 형세도 모르면서 말로만 ‘숭명배청’이니 ‘재조지은’이니 떠들면서 주야장천 다쓰러져가던 명나라만 섬기려하는 대신들을 ‘한심한 인사들’이라 했다는 겁니다. 그런게 광해군은 왜 ‘고려의 외교를 배우라’고 했던 걸까요. 고려는 비록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피곤한 줄다리기 외교를 펼쳤답니다. 하지만 거란은 물론 세계를 제패했던 몽골(원)의 애간장을 녹일만큼 능수능란한 곡예외교를 펼쳤습니다. 오죽했으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한 거란이 서희의 ‘세치혀’에 말려 280리나 되는 땅(강동 6주)을 떼주었겠습니까. 서희로 대표되는 고려의 외교관들..
여왕이여! 신라여! 망하리라! “이름없는 자가 당대의 정치를 비방하는 글을 지어 조정의 길목에 내걸었다.” 888년(진성여왕 2년) 신라의 도읍지 서라벌에서 당시의 정치를 비난하는 벽보(榜·대자보)가 붙었다. 그것도 조정의 길목, 번화가에 붙은 비방문이었다. 그런데 는 “나라 사람들이 비방문을 길 위에 던졌다(書投路上)”고 했다. 는 “벽보(혹은 대자보)를 붙였다”고 했지만, 는 “전단을 뿌렸다”고 한 것이다. 어찌됐든 글 내용은 알쏭달송했다. 다라니(밀어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비밀로 하려는 주문 같은 것)의 은어로 쓰여 있었다. “나무망국찰니나제(南無亡國刹尼那帝) 판니판니소판니(判尼判尼蘇判尼) 우우삼아간(于于三阿干) 부윤사바아(鳧伊娑婆訶)”( ‘기이편·진성여왕 거타지조’) 진성여왕(재위 887∼897년)은 “당장 비방문을 써서 내..
백두산 화산폭발과 발해멸망의 수수께끼 팟 캐스트 21회는 좀 색다른 주제입니다. ‘백두산 폭발과 발해멸망의 수수께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100년 전 백두산에서는 역사시대, 즉 2000년이라는 시간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화산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기원후 79년 폼페이 최후의 날로 악명높은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폭발보다 무려 50배나 큰 화산폭발이었습니다. 물론 화산폭발이 과연 어제 정확하게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첨단과학의 힘을 빌자면 아마도 930~940년 사이가 아닐까 추정됩니다. 문제는 발해가 926년에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발해의 멸망소식을 전한 요나라(거란) 역사서인 는 “발해는 민심의 이반 때문에 별다른 저항없이 멸망했다”고 전합니다. 이상한 일 아닙니까. 해동성국으로 일컬어졌고, 고구려의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