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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무덤의 수수께끼 “민통선 이북, 어느 무덤에서 호리꾼(도굴꾼)이 무덤 하나를 하나를 파헤쳤는데요….” 1989년 어느 날, 국립중앙박물관에 흥미로운 제보 하나가 접수됐다. 어느 도굴꾼이 민간인 통제선 이북의 무덤을 파헤쳤는데, 그 무덤의 벽면과 천정에 그럴싸한 그림이 그려져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정양모 박물관 학예실장의 귀가 번쩍 띄였다. 무덤의 벽가 천정에 그림이라? 그것은 바로 벽화라는 것이 아닌가. 사실이라면 대단한 뉴스였다. 특히 한반도 남부에 벽화묘는 극히 드문 것이어서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민통선 이북 파주 서곡리의 도굴된 무덤에서 확인된 고려말 벽화그림. 무덤의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민통선 고분벽화의 비밀 알다시피 고분벽화의 전통은 삼국시대, 특히 고구려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
팟 캐스트(8회)조선시대 ‘솔로대첩’은 국가가 나섰다 “복사나무의 어여쁨이여! 활짝 핀 그 꽃이로다.(桃之夭夭 灼灼其華)”() 연산군이 인용한 의 한 구절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워낙 황음무도한 연산군이다 보니 채홍사가 간택한 여인을 희롱하는 싯구라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연산군은 선남선녀들이 복사꽃처럼 화려할 때 시집·장가를 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 싯구를 인용했습니다. 희대의 폭군이라는 연산군이 그랬는데 다른 임금들은 오죽했겠습니까. 옛 임금들은 노처녀·노총각의 결혼을 국가정책으로 삼았습니다. 혹자는 “혼인을 제 때 하는 것이 왕정의 급선무”라고까지 말했답니다. 시쳇말로 한다면 국가가 나서서 ‘솔로대첩’을 마련했다는 얘기입니다. 심지어 가난한 남녀가 혼인을 치르지 못할 때는 일가친척이 나서 혼숫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국법으로 정하..
거세된 남성 환관…그들을 위한 변명 “천하의 권세를 가진 첫번째는 태감 위충현이고, 둘째는 객씨이고, 셋째가 황상(황제)이다.’라고…” 1624년(인조 2년) 명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온 홍익한의 사행일기()는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명나라 백성들이 환관 위충현과 그의 내연녀(객씨)의 위세가 황제(명 희종)을 능가했음을 수근거렸다는 것이다. 과연 그랬다. 위충현(?~1627)은 희종의 유모였던 객(客)씨와 사통한 뒤 명나라 국정을 쥐락펴락했단다. 청나라 시대 환관의 사진. 어릴 적부터 거세한 환관은 음석이 여자다워지고 모습 또한 여성스러워졌다고 한다. ■구천구백세! 어떻게 환관이 남성을 회복했느냐고? 위충현은 어린 아이의 뇌(腦)를 생으로 씹어먹고는 양도(陽道)를 회복했다고 한다. 위충현은 안팎의 대전을 손아귀에 넣고 자신을 호위..
‘♡(♥)’의 역사-심장이 하나인 까닭은 “심장은 9개의 문이 달린 연꽃이다.” 고대 인도의 성전(聖典) 가운데 하나인 가 표현한 심장이다. 심장을 세우면 연꽃 봉우리처럼 생겼고, 모두 9개의 구멍(혈관)이 있음을 안 것이다. “목 아래 배꼽 위에 자리한 심장은 아래를 향한 연꽃같다. 심장은 신의 거처임을 깨달으라. 심장 끝에는 섬세한 신경이 있다. 여기서 만물의 존재가 성립한다. 중심에는 위대한 불이 있어 사방으로 퍼져가며 여기저기서 타오른다. 이 불길 가운데 지고의 존재가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을 미라로 만들 때 심장 만은 방부처리하여 미라 속에 넣었다. 반면 뇌는 “쓸모없다”면서 버렸다. 다른 장기들은 단지에 담아 미라의 옆에 놓았다. 심판의 날에 죽은 자를 위해 증언해 줄 심장을 고이 보존하려는 뜻이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심장..
팟 캐스트 7회-세종은 앉아있는 종합병원이었다 세종대왕은 ‘만고의 성군’이자 ‘해동의 요순’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세종을 수식할 수 있는 단어들이 있다. 일벌레에, 공부벌레였다는 것이다. 그런 세종이 생전에 내내 온갖 병마와 싸웠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필자는 그런 세종에게 ‘앉아있는 종합병원’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다. 극심한 당뇨병에 두통, 이질에, 풍질에, 요로결석에, 다리부종에, 수전증에…. 화려한 병력이 아닐 수 없다. 하기에 세종 뿐이 아니었다. 지존으로서 종묘와 사직을 보존하고, 백성을 위해 일해야 하는 군주들은 다양한 질병에 시달렸다. 등창 때문에 승하한 임금, 족질로 고생한 임금, 그리고 뜻밖의 의료사고로 급서한 임금 등…. 또 어느 임금은 양기보충을 위해 풀벌레와 뱀을 먹기도 했고, 또 어느 임금은 병치료를 ..
'내 탓이오'를 외친 임금들-지도자들의 '재난' 대처법 6번째 팟 캐스트 내용을 요약정리합니다 1403년(태종 3년) 선원 등 1000여 명과 쌀 1만석이 수장된 대형참사가 발생했습니다. 거센 풍랑 중에 배를 띄운 관리들이 부른 인재였다. 하지만 태종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면서 ‘내탓이오’를 외쳤습니다. 중국 역사에서 대표적인 성군으로 꼽히는 당나라 태종은 628년 메뚜기 떼가 창궐하자 들판에 나가 메뚜기 두 마리를 생으로 삼켰습니다. “차라리 내 심장을 갉아먹으라”면서…. 중국 상나라 창업주 탕왕은 7년간이나 가뭄이 계속되자 머리카락을 자르고, 손톱을 깎은뒤 뽕나무밭에 들어가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다”면서 ‘6가지 자책’을 하늘에 고했습니다. 역사는 이것을 ‘상림육책(桑林六責)’이라 했다. 송나라 태종은 메꾸기 떼가 ..
'어떻게 살아갈까'…비참한 해방공간의 삶 “못살겠다 못살겠다 하면서도 죽지못해 사는 것이 살림이요.~내일 일이 어찌될지 모르면서 살아가지요.” 경향신문은 1947년 11월 27일자부터 ‘어떻게 살아갈까?’를 주제로 원고지 4~5장 분량의 시리즈를 시작했다. 주제에서 알 수 있듯 해방은 됐지만, 아직 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미군정 시절의 암울한 분위기가 묻어나온다. 각 직업별로 한 사람씩 등장시켜 해방공간의 비참한 삶을 생중계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1947년 11월 27일자부터 '어떻게 살어갈까'랄 주제로 미군정체제 하의 비참한 생활상을 시리즈로 전했다. ■‘어떻게 살아갈까’ 11월27일 첫번째로 나선 사람은 ‘차부편(車夫篇)’의 길삼룡씨(37)였다. 차부는 소나 말이 끄는 수레를 부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당시엔 ‘구르마꾼’이라도 했다. 이날 길씨..
사형장 풍경…인간백정의 역사 “옛날 요임금은 천하를 다스릴 때 한 사람 죽이고 두 사람에게만 형벌을 내렸는 데도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서(書)’) “순임금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삼가야한다. 삼가야한다. 형벌을 행할 때는 가엾게 여겨야 한다.(欽哉欽哉 惟刑之恤哉)’”( ‘오제본기’) 백성들이 고복격양가를 불렀다는 요순시대의 이야기다. 한마디로 형벌을 가볍게 해야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후대의 군주들도 요순을 따르려 무진 애를 썼다. 예컨대 한나라 효문제는 사람의 몸을 훼손하는 이른바 육형(肉刑)을 없애면서(기원전 168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김윤보의 에 묘사된 조선시대 참형 모습.참형은 사지를 찢어죽이는 능지처참에 이어 두번째로 혹독한 형벌이었다. “육형이 있어도 간악함이 멈추지 않으니 그 잘못은 어디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