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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경배하라! 남근' 19금 장면…조각난 1600년전 신라토우 붙였더니

‘경배하라 남근’. 첫마디부터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냐고 할 겁니다. 
10월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중인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특별전을 살펴보던 저의 시선을 잡아끈 유물이 셋이나 되었습니다. 모두 1926년 경주 황남동에서 출토된 토우(흙인형) 장식 뚜껑(5세기)이었는데요. 
그중 하나는 지름이 10.5㎝ 정도되는 뚜껑이었는데요. 글쎄 그 위에 남근이 떡하니 서있고, 주변 사람들이 그 남근을 향해 엎드려 절하고 있었습니다. 또 한 점은 적나라하게 사랑을 나누는 남녀를 향해 역시 ‘예(禮)’를 표하는 사람들을 표현한 도기 뚜껑이었습니다. 마치 ‘경배하라! 남근’, ‘경배하라! 사랑’을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두 토우 옆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도드라지게 강조한 뚜껑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사랑을 나누기 직전 모습 같기도 합니다. 물론 처음 보는 유물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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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남성만 강조한 건 아닙니다. 토우 여인상 중에도 가슴과 성기를 과다 노출시킨 예가 많습니다. 출산 장면을 묘사한 토우도 있습니다. 성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토우도 한 두 점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가 경주 계림로 30호분에서 출토된 국보 ‘토우 장식 목긴 항아리’(토우장식장경호)이죠. 
이 항아리 위의 토우는 뱀과 개구리를 중심축으로 남자와 새, 새·물고기·육상동물, 현악기를 연주하는 여자·새·거북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그런데 뜬금없이 남성과 여성의 적나라한 성 장면이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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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열전·김유신’조는 “673년(문무왕 13) 김유신이 죽자 문무왕이 비단과 조를 내려주어 상장례를 치르도록 하고, 악대 연주자 100명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이와같은 전통은 면면히 이어집니다. 
조선조 성종 때인 1472년 1월22일 예조가 “지방의 부유한 자들이 출상 전날에 술과 음식을 후하게 베풀어 문상객들을 모아 풍악을 울리며 주검을 즐겁게 한다”((성종실록>)고 당대의 사치풍조를 개탄했습니다. 지금까지 출토된 신라 토우 중에는 온갖 종류의 현악기·관악기 연주자와 다양한 춤사위를 뽐내는 댄서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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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는 신국(神國)의 도가 있다
또하나 생각해봐야 할 것은 신라인들의 성과 관련된 의식입니다.
신라의 근친혼, 처첩관계, 통정·사통의 기록을 지금의 유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절대 풀 수 없습니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1075~1151)은 신라의 근친혼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신라의 경우 같은 성씨를 아내로 맞이할 뿐 아니라 형제의 자식이나 고종·이종 자매까지를 아내로 삼았다. 비록 외국은 각기 그 습속이 다르다고 하나 중국의 예속을 따진다면 도리에 크게 어긋난다고 하겠다.”(‘내물왕·즉위’조)

지금까지 약 500점 정도 출토되었습니다. 
이번에 정리된 토우를 보다보면 마치 1600년전 신라의 도읍인 경주에 간 듯한 느낌이 듭니다.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고, 춤과 공연을 펼치고, 짐 나르고, 죽음을 슬퍼하는 신라인의 일상 속에 자연스레 몰입하게 됩니다. 특별히 제 눈 앞에 아른 거리는 사람 토우는 황남대총 남쪽 무덤의 봉토에서 확인된 ‘춤추는 여인’인데요.
‘신라의 미소’로 알려진 ‘얼굴무늬 수막새’와 함께 이 ‘춤추는 여인’은 ‘신라의 흥’을 대표하는 토우가 아닐까요. 
황남동과 쪽샘에서 출토된 ‘지팡이 든 남자’도 눈에 띄는 토우입니다. <삼국사기> ‘문무왕’조를 보면 “664년 문무왕이 70세가 되어 은퇴를 청한 김유신에게 안석(등받이)과 지팡이를 하사했다”고 했는데요. 토우 속 주름이 깊게 팬 노인의 얼굴에서 지혜와 권위의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개구리를 삼키는 뱀
토우에 표현된 당대의 동물들에게도 시선이 갔는데요. 
일단 계림로 30호분 출토 국보 ‘토우장식 목긴 항아리’에 뱀과 개구리가 이야기의 중심축처럼 표현되어 있구요.
다른 토우에서도 ‘뱀과 개구리’ 조합은 상당히 빈번하게 발견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개구리는 많은 알을 낳고, 뱀은 번식력이 강하여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뱀은 성장 과정에서 허물을 벗으면서 자라나는 동물이죠. 재생과 영생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그럼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듯한 장면은 어떻게 설명할까요. 이는 뱀을 남자, 개구리를 여자에 비유하여 두 동물의 결합으로 생명의 탄생·번식·생명력 등을 표현하고 있답니다. 
신라 토우에 자주 등장하는 거북과 자라는 어떨까요. 두 동물은 바다와 육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존재죠.
아마 새와 말(천마)처럼 이승과 저승의 세계를 연결하고 영혼을 인도하는 존재로 인식했을 겁니다. 또한 거북은 십장생 중 하나로 장수를 상징하죠. 죽은 이의 사후세계에서의 영생이나 재생 등을 의미한 것일테죠.

최근 귀족무덤인 쪽샘지구(B6호)에서 굽다리 접시 33점에 붙은 54점의 토우가 확인되었다. 이번 특별전에 출품됐다

■개와 강아지 
토우 가운데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강아지가 어미의 꼬리를 물며 장난치는 토우와, 어미개가 강아지의 목덜미를 물어 옮기는 토우가 보이더라구요.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이같은 토우 장식 도기는 신라에 불교가 도입된 6세기에 들어서면 사라지는데요. 
6세기 개막과 함께 왕위의 오른 지증왕(재위 500~514)이 순장을 금하고(502) 왕의 호칭을 사용하며(503) 상복법을 제정하는 등(504) 상장례를 개편하죠. 지증왕의 뒤를 이은 법흥왕(514~540)이 율령을 반포(520)하고 불교를 공인(528)하죠.

토우를 무덤에 묻는 습속은 528년 불교의 공인과 함께 사라진다. 6세기들어 왕위에 오른 지증왕이 순장을 금하고(502) 왕의 호칭을 사용하며(503) 상복법을 제정(504)하고, 또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520)하고 불교를 공인(528)하면서 토우 부장 풍습이 없어진다.

이 무렵부터 무덤조성방식도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에서 돌방무덤(석실분)으로 바뀌구요. 
결국 토우로 대표되는 토속적인 상장례 문화는 급변하는 신라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는 요즘의 급격한 변화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는 토우 뿐 아니라 상형도기(어떤 형상을 본 떠 빚은 흙으로 빚은 그릇)까지 총 332점이 출품되는데요. 토우나 상형도기나 모두 1500년전 인물과 동물, 혹은 사물을 빚은 거죠. 장송의례가 어떻고, 현세와 내세의 삶이 어떻고 하는 어려운 내용보다 그냥 당대 신라인들의 삶의 모습과 생활상을 보고 느끼면 그것으로 100% 만족감을 느낄 것 같아요.(이 기사를 위해 김상태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과 김대환·이현태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자료와 도움말을 주었습니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참고자료>
이진민, ‘가장 많은 토우를 발견한 곳, 경주 황남동 유적’,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특별전 도록), 국립중앙박물관, 2023
김대환, ‘토우장식 토기가 출토된 무덤들:부장의 비정형석과 소유의 배타성’,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특별전 도록), 국립중앙박물관, 2023
이현태, ‘문헌자료로 본 삼국시대 상장례’.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특별전 도록), 국립중앙박물관, 2023
국립중앙박물관,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특별전 도록),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