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들끓고 ‘당뇨합병증’ 시달린 세종이 내민 ‘비장의 카드’는?

세자(문종)는 반드시 나같은 임금이 되어야 한다.’ 
세자를 당신 같은 성군으로 키우려 했던 세종대왕의 노심초사가 서려있는 경복궁 전각이 있습니다. 
오는 8월31일 마무리를 목표로 복원공사 중인 ‘계조당’입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계조당 복원’을 기념해서 조선의 왕세자가 국왕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강좌를 개설했는데요. 
그렇다면 ‘계조당’은 왕세자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맞습니다. 
‘계조(繼照)’ 명칭은 ‘사방에 비치는 광명을 계승하여 비춰준다(以繼明照于四方)’는 <주역> ‘이괘·삼전’의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따라서 ‘계조’은 왕위계승을 뜻합니다. ‘계조당’의 복원은 고종 연간에 재건하고(1866), 25년 뒤 보수된(1891) 전각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세종 코스프레한 고종
계조당 보수 뒤 고종이 했다는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1443년 계조당을 세웠고, 세자(문종)가 곧 대리청정했다. 세종 시대에 모든 제도와 문물, 법식을 다 갖췄고 가장 융성했다.”(<고종실록> 1891년 2월8일)
그러면서 고종은 “내가 세종의 업적을 계승한다고 할 수 없지만 동궁(순종)은 훗날 나(고종)의 가르침을 준수해주기를 바란다”고 계조당을 재건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고종은 ‘세종-문종처럼 나(고종)도 세자(순종)에게 대리청정 시키겠다’는 뜻을 언급한 겁니다. 이 대목에서 이런 반응이 터져 나오겠네요. 
‘고종이 감히 세종 코스프레를 한다고? 그럼 고종=세종, 순종=문종이라는 거야, 뭐야.’
그러게요. 턱도 없는 이야기죠. 그러나 성군의 정치를 펼쳐보이고 싶은 마음이야 고종인들 없었겠습니까. 세종-문종을 롤모델로 삼겠다는 것이니 ‘주제파악 좀 하라’고 마냥 비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고종이 계조당을 재건한지 20여 년 만에 국권이 탈취되고 말았죠. 
결국 ‘계조당 재건의 의미’는 물거품이 되었고, 세종-문종은 지하에서 통곡했을 겁니다.

■어느날 갑자기 임금이 된 세종 
계조당이 처음 건립된 것은 1443년(세종 25) 5월12일이었습니다. 
<세종실록>은 “왕세자(문종)가 신하들의 조회를 받을 전각을 건춘문 안에 짓고, 이름을 계조당’이라 했다”고 했습니다.
즉 왕세자(문종)가 국왕(세종)을 대신해서 신하들의 조회를 받고 정사를 펼치는 ‘정당(正堂)’으로 건립된 겁니다.
좀 의아하죠.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하잖습니까. 
게다가 성군의 정치를 펼치고 있던 세종이 왜 굳이 세자에게 그 막중한 국정을 맡겼을까요. 
따져보죠. 우선 왕조시대에 태자 혹은 세자를 두고 ‘국본(國本·나라의 근본)’이라 일컬었습니다. 

보통 3세 때부터 시작되는 후계자의 양성은 나라의 근본, 즉 국본을 튼튼히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어떠했습니까. 맏형(양녕대군·1494~1562)이 세자였고, 더구나 셋째 왕자였죠. 
왕권하고는 거리가 멀었죠. 그러나 맏형이 폐위되고(1418년 6월 3일) 둘째형(효령대군·1496~1586)까지 건너뛰고 ‘졸지에’ 세자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런 다음 8월11일 태종의 선위에 따라 왕위에 올랐습니다. 
불과 두 달 여 만에 대군에서 세자, 세자에서 군왕으로 발탁된 겁니다. 물론 왕자 시절에도 부왕(태종)으로부터 “큰 일에 결단하는 데에는 당세에 (충녕에) 견줄 사람이 없다”는 극찬을 받기는 했죠. 
그러나 왕위가 그리 만만한 자리인가요. 아무리 성군의 자질을 타고 난 세종이지만 지도자 스트레스는 엄청났을 겁니다. 
예부터 군주의 정사를 ‘일일만기(一日萬機)’라 했죠. 그래서 ‘만기친람(萬機親覽)’이라는 성어가 나왔죠. 
“군주가 하루 처리해야 할 일이 1만 가지나 된다”(<상서> ‘고요모’)고 해서 나온 표현입니다. 세종은 졸지에 세자~국왕이 된 당신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했을 겁니다. 준비된 후계자를 키우는 것, 그것이 바로 ‘대리청정’이었습니다.

고종은 계조당을 보수하면서 “1443년 세운 계조당에서 세자(문종)가 대리청정했다. 세종 시대에 모든 제도와 문물을 갖췄고 가장 융성했다”고 언급했다.

■도적이 들끓었던 세종 시대
1437년(세종 19) 세종이 대리청정의 의지를 공식 언급한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요.
“왕위에 오른지 20년이 다가오는데 조금도 다스린 효과가 없구나. 해마다 수재를 만나 기근이 끊이지 않고, 도적떼가 날로 창궐해서…물러나 하늘의 문책에 답하고자 세자에게 정무를 맡기고 싶다….”(3월27일)
<세종실록>은 “임금(세종)이 전 해(1436년) 가을부터 대리청정의 뜻을 밝혔다가 반대에 부딪혀 결심을 접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아니 그런데 “20년간 다스린 효과가 없다”는 세종의 말씀은 지나친 겸손이 아닌가요.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세종의 시대(1418~1450)는 나라의 기틀이 마련되지 않은 건국 초였습니다. 

고종은 계조당을 세우면서 “내가 세종의 업적을 계승한다고 할 수 없지만 동궁(순종)은 나(고종)의 가르침을 준수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인심이 흉흉했고, 범죄가 들끓었습니다. 단적인 예가 있습니다. 1439년(세종 21) 12월15일 세종은 “복역 중인 사형수가 190명에 달하니 감형 좀 하면 어떠겠느냐”고 운을 뗐습니다. 세종은 “근래 기근이 겹쳐 도적이 흥행하고 분쟁이 더욱 성하여 사형수가 예전보다 배가 되니 내가 부끄럽게 여긴다”고 반성했습니다. 이건 약과입니다.
“(왕실재산을 관리하는) 내탕고의 황금술잔과 (제사를 관장하는) 봉상시의 은찬(銀瓚·제기)까지도 털렸고…온 백성이 들끓는 도둑들을 원망하며 그 고기를 씹고자 해도 어쩔 줄 몰랐다”는 기사(<세종실록> 1436년 윤 6월14일)도 등장합니다. 
그랬으니 세종이 “별다른 업적을 이루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대리청정을 모색했던 겁니다. 

■“주상은 몸이 뚱뚱하고 고기만 먹어서…”
건강악화도 세종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세종은 타고난 ‘공부벌레’이자 ‘일벌레’였습니다. 책 한 권을 최소한 100번씩 읽어야 직성이 풀렸죠. 또 날마다 새벽 2~3시에 일어나 하루 평균 20시간씩 격무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니 건강을 챙길 시간이 없었겠죠. 무엇보다 몸이 뚱뚱했습니다. 아버지(태종)의 언급에서 ‘폭로’되었는데요.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이 막 즉위한 세종에게 “주상은 몸이 뚱뚱한데 때때로 나와 놀면서 살 좀 빼야 한다”(<세종실록> 1418년 10월9일)고 권했거든요. 그뿐 아니라 태종은 “주상(세종)이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하는데…”라고 걱정하는 유언까지 남겼답니다.(<세종실록> 1420년 8월28일·1422년 11월1일)

그러나 이때는 “내가 본디 병이 없고 늙지도 어리지도 않았는데, 어찌 뒷날에 병이 날까봐 염려하겠느냐”고 자신만만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젊었을 적의 자신감이었습니다. 공부와 정사에 매달릴수록 심신이 급격히 약해졌습니다.
결국 왕위에 오른지 20년이 가까워지는 1436년말~1437년초 사이에 대리청정을 공식 거론한 겁니다.   
세종은 “나이 40을 넘겼지만 이제 ‘예지(銳志)’가 흐려져 90세 늙은이나 다름없다”면서 “게다가 병까지 생겨서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정사를 보기가 견디기 어렵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세종은 “세자의 나이도 스무살을 넘겼고 경전과 사서도 고루 보았으며, 지기(志氣)가 왕성하여 능력이 있을 만한 때가 아니냐”면서 대리청정을 주장했던 겁니다. 물론 다 넘긴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인사권과 병권, 형벌권, 외교사절 접견 등 국가의 대사는 과인이 맡을 것”(<세종실록> 1437년 3월27일)이라 했습니다. 

세종의 건강이상을 발설한 이는 다름아닌 아버지 태종이었다. 태종은 “주상은 몸이 뚱뚱하다”고 걱정했고, “고기가 아니면 수라를 드시지 못한다”고 걱정하는 유언까지 남겼다.

■“당뇨 때문에 정사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임금이 대리청정을 원한다고 순순히 들어주는 신하들이 어디 있습니까. 바닥에 이마를 짓찧으면서 “아니되옵니다!”를 외쳐야지 머뭇댔다가는 대역죄를 뒤집어 쓸 수 있었습니다.
영의정 황희(1363~1452)를 비롯한 대소신료들이 극력 반대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집요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루에 한동이 이상 물을 마시는 병(당뇨병)이 있고, 또 등 위에 부종(浮腫)을 앓고 있는데… 이제 또 임질(淋疾·성병이 아니라 요로결석으로 추정)이 걸렸다. 그러니….”(<세종실록> 1438년 4월28일)
세종은 “(당뇨 때문에)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눈 앞의 사람마저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호소했습니다. 
이후 ‘대리청정 하겠다’는 세종과 ‘아니되옵니다’라고 버티는 신하들과의 다툼은 1442년까지 지루하게 이어집니다. 
신료들은 ‘세자는 그저 부왕만 잘 섬기면 되는 자리’라고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정사가 한 곳(임금)에서 나와야지 두 곳(임금과 세자)에서 나오면 혼란이 생긴다는 거죠. “지금의 전하(세종)와 세자(문종)라면 좋겠지만 후세에 부자지간에 틈이라도 생기면 어쩔거냐”는 것이죠.

세종의 치세가 20년이 넘어가자 건강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세종은 급기야“하루에 한동이 이상 물을 마시는 병(당뇨병)이 있고, 또 등 위에 부종(浮腫)을 앓고 있는데… 이제 또 임질(요로결석)이 걸렸다. 그러니 대리청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은 고집불통이었다
세종의 장기가 여기서 발휘됩니다. 흔히들 세종을 두고 ‘소통의 지도자’라 평하죠. 그러나 마냥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종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정책을 두고는 결코 당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세종은 1442년(세종 28) 6월16일 “이제 그대들과 토론하자는 게 아니라 그저 내 명을 전하는 것일 뿐”이라면서 “세자궁에 대리청정을 담당할 관청(첨사원)까지 두라”고 지시합니다. 신료들은 “국왕의 명령을 받드는 승정원이 있는데, 세자의 명을 받잡는 첨사원까지 생긴다면 어찌되겠느냐”고 아우성쳤습니다. 명령이 승정원과 첨사원 등 두 군데서 나온다면 큰 혼란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였습니다. 세종의 전략이 먹혔습니다.

세종은 1436년말~1437년초 사이에 대리청정을 공식 거론한다. “나이 40을 넘겼지만 ‘예지(銳志)’가 흐려져 90세 늙은이나 다름없다”면서 “게다가 병까지 생겨서 정사를 보기가 견디기 어렵다”고 대리청정 할 뜻을 표명했다.

신료들 중에 “세자가 정무에 참여하더라도 반드시 승정원에서 그 명을 출납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었습니다. 세종이 ‘첨사원 설치’의 명을 내리자 기존 세자의 대리청정 이야기는 어느새 기정사실로 굳어졌습니다.(8월24일) 
세종은 강수를 더 둡니다. 한때(1439년) 꺼냈다가 포기한 세자의 ‘강무 주재 건’도 기어코 성사시킵니다.(1442년 9월8일)
강무(講武)는 국왕의 친림 아래 실시하는 수렵대회를 겸한 군사훈련입니다. 대간은 물론 의정부와 육조 판서들까지 다 나서 난리를 쳤습니다. “임금이 엄연히 계시는데 세자가 군통수권자가 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면서 “군령은 두 곳에서 나올 수 없다”고 아우성쳤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너희는 임금의 병이 깊어져 손 쓸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대리청정을 맡기겠느냐”고 윽박질렀습니다.

■세종의 한가지 양보
기어코 대리청정을 성공시킨 세종은 1443년 4월17일 세자가 신료들의 조회를 받으며 정사를 펼칠 정당(집무실)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계조당입니다. 세종은 원래 계조당을 남쪽을 향해 지었습니다. 
“세자가 남면(南面·남쪽을 향함)해서 정사를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소신료들이 벌떼처럼 일어났습니다. ‘남면’은 오로지 군주가 정사를 펼칠 때 앉는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신료들은 “하늘에 두 태양이 뜰 수 없다”며 일제히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세종은 이 대목에서는 ‘그까짓것’하며 양보했습니다. ‘대리청정’을 받아냈으니 ‘남면’ 카드는 슬쩍 버린 겁니다. 결국 세자는 계조당 안에서 서쪽을 향하는 ‘서면’으로 대신들을 맞는 것으로 결정됐습니다.

■세종을 쏙 빼닮은 세자
아버지가 쳐준 든든한 울타리 속에서 세자(문종)는 29살 때인 1442년(세종 24)부터 사실상 대리청정을 시작했습니다.
세종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세자, 즉 문종이 당신(세종)을 닮아 성군의 자질을 타고났다는 겁니다.
예컨대 아버지를 닮아 학문을 좋아했던 세자(문종)는 한밤에 인적이 뜸해지면 책 한 권을 들고 집현전 학사가 숙직하는 거처까지 걸어와 밤새도록 토론했답니다. 그래서 집현전 숙직자들은 감히 의대를 풀지 못했답니다. 
어느 날 숙직자였던 성삼문(1418~1456)은 밤이 늦어 세자가 행차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 옷을 벗고 누우려 했답니다. 
그때 갑자기 문 밖에 신 끄는 소리가 들리면서 “근보!(성삼문의 자), 근보!”했답니다. 이에 성삼문은 매우 놀라 허겁지겁 나가 절했다는 데요. 선비와 학문을 좋아하는 세자(문종)의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용천담적기>입니다. 
효성 또한 대단했습니다. 예컨대 아버지(세종)가 앵두를 즐기자 세자는 후원에 손수 앵두나무를 심었답니다. 세종은 세자가 따주는 앵두를 맛보고는 “외부에서 바친 앵두가 어찌 세자의 손수 심은 것과 같겠느냐”고 좋아했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한 성현(1439~1504)은 “지금도 궁궐 안에 온통 앵두나무만 자란다”(<용재총화>)고 전했습니다.

세종은 신료들이 세자의 남면을 끈질기게 반대하자 새 전각(계조당)을 세워 세자가 ‘서쪽을 향하는 ’서면’으로 대신들을 맞이하는 것을 허락했다, ‘대리청정’을 받아냈으니 ‘남면’ 카드는 양보한 것이다.

■측우기의 발명자는 문종
그러나 문종은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지(1450년 2월) 불과 2년 3개월 만(1452년 5월)에 39살의 춘추로 승하합니다. 
원체 병약했던데다 어머니(소헌왕후·1395~1446)와 아버지(세종·1397~1450, 재위 1418~1450)의 3년상을 잇달아 치르는 바람에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된 겁니다. 재위기간으로만 보면 너무 짧았습니다. 
그러나 대리청정까지 합한다면 문종의 치세는 사실상 10년 정도는 됩니다. 그 사이 세종은 웬만한 정사를 아들에게 넘기고 훈민정음 창제(1443) 및 반포(1446)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문종의 업적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1441년 4월29일자 <세종실록>에는 의미심장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세자(문종)가 가뭄을 근심하여 비 올 때마다 땅을 파서 젖어 들어간 깊이를 재었다. 구리로 만든 원통형 기구를 궁중에 설치하고, 여기에 고인 빗물의 푼수를 조사했다.”
세종의 업적 중 하나인 측우기 발명가가 다름아닌 세자(문종)였던 겁니다. <세종실록>은 “문종이 천문을 잘 관측하고 후기(候氣)에 정교하여, 우레가 어느 때에 치고 어느 방위에서 일어난다고 예언하면 반드시 적중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종의 치세가 오래되었다면…
한 시대를 풍미한 절세의 성군(세종)이 승하했지만 권력의 공백은 없었습니다. 모두 대리청정의 덕분이었죠.
문종은 특히 6품 이상까지 윤대(輪對·문무 관원이 교대로 궁중에 참석하여 임금의 질문에 응대하던 일)를 허락했습니다. 
<연려실기술>은 “문종이 지위가 낮은 신하라도 온화한 안색과 부드러운 말씨로 응대해서 언로를 활짝 열었다”고 전했습니다. 또 이민족과의 전쟁·전란사인 <동국병감>을 펴냈고., 역사서인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편찬했습니다.

또 태종 때 만들었던 화차를 새롭게 개발하여 혹시나 있을 전쟁과 국방에 대비하고자 했습니다.
2년 3개월의 짧은 치세 치고는 만만치않은 업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가 성군 아버지(세종)의 후계자 이양 방안, 즉 ‘8년여 대리청정’의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

<세종실록> 1441년 4월29일자는 문종이 세종 시대의 위대한 발명품인 측우기를 발명했다고 증언했다

지만 문종이 너무 일찍 승하하는 바람에 세자(단종·재위 1452~1455)가 12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를 잇는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만약 문종이 오래 왕위에 있었다면 계유정난(1453)과 같은 불행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문종은 세종의 치세를 계승했을 겁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제 어린 왕의 등극으로 쓸모가 없어진 계조당은 단종 즉위년(1452년) 9년만에 헐리고 맙니다. 그래도 대리청정은 후대 왕세자의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의 모델로 활용됐습니다. 
바로 경종(재위 1720~1724)과 영조(재위 1724~1776), 장조(사도세자·생몰 1735~1762), 정조(재위 1776~1800, 익종(효명세자·생몰 1809~1830) 등의 대리청정이죠. 지금 복원 막바지에 임박한 경복궁 계조당에는 성군의 정치를 잇고자 했던 세종대왕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이 기사를 위해 정성조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장과 조은경 복원정비과장, 배수경 학예연구사가 도움말과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참고자료>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경복궁 향원정·계조당지 발굴조사 보고서>, 2020
미추홀 건축사무소, <경복궁 계조당권역 복원공사 설계용역>, 문화재청, 2019
김가람, ‘왕세자의 조참의례와 계조당’, <흥복전 왕실아카데미 자료집>,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2023 
김문식, ‘세종의 국왕권 이양방안, 대리청정’, <문헌과해석> 31권 2005년 여름호
　        ‘사도세자의 대리청정’, <문헌과해석> 45권, 2008년 겨울호
조미은, ‘조선시대 왕세자 대리청정기 문서연구’, <고문서연구> 36권, 한국고문서학회,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