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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백제계’ 아키히토 일왕의 '양위' 승부수

“내 모계에 한국계 인물이 있는 것 같다…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음을 느낀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1990년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에게 속삭인 말이다. 일왕이 “내 조상은 한국계”라고 직접 인정한 폭탄발언이었지만 당시엔 부각되지 않았다.

통역을 맡았던 김상배씨는 2010년 아사이신문에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는 일왕의 사죄발언에 묻혔다”고 전한바 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한국의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을 살펴보고 있다.

2001년 68회 생일을 맞이한 일왕은 공개 기자회견장에서 “간무(桓武) 천황(재위 781~806년)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속일본기>에 기록돼있다”면서 “한국과 깊은 연을 느낀다”고 선언했다.

<속일본기> 기록이 사실이라면 빼도박도 못한다. 790년 2월 간무 천황이 “백제왕씨는 나의 외척(朕之外戚)”이라고 선언했으니 말이다.

여기에 “간무천황의 어머니인 다카노노니가사(高野新笠) 황태후의 조상은 백제 무령왕의 아들인 순태 태자”이며, “따라서 황태후는 백제의 원조(遠祖)인 도모왕(주몽)의 후손”이라는 기록(<속일본기>)까지 등장한다. 일왕가의 뿌리가 백제는 물론 고구려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일왕이 역사서까지 인용하며 백제후손설을 공식인정하자 발칵 뒤집어졌다.
“일왕가의 백제계설’이 일왕의 육성으로 확인됐다”고 흥분한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조상이 같으니 식민지배도 괜찮다는 이른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과 다를 바 없다는 경계심도 터져나왔다.

일왕가. 3년전 아키히토 일왕(왼쪽에서 세번째)의 79회 생일 때 모였다. 왼쪽부터 왕세자빈인 마사코와 나루히토 왕세자, 아키히토 일왕, 미치코 왕비의 모습이다.

어떻든 스스로 백제인의 피가 흐른다고 고백한 일왕가의 친한(親韓) 행보에 거침이 없었다. 2004년 일왕의 당숙(아사카노 마사히코·朝香誠彦)은 충남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을 참배했다. 일왕은 왕실에 한국 요리사를 초청해서 김치·잡채파티를 열고,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다 사망한 고 이수현씨를 소재로 한 영화를 관람했다.

그 뿐이 아니라 여러차례 일제가 과거 저지른 침략전쟁을 반성했다. 2005년 사이판의 한국 전몰자 위령지인 ‘한국평화기념탑’에 참배함으로써 평화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전쟁국가로 나가려는 아베(安倍) 정권의 폭주에 제동을 거는 유일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아키히토 일왕이 그제 이른바 ‘생전 양위의 뜻’을 강하게 밝혔다.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국가로 나서려는 아베(安倍) 정권의 ‘개헌 야욕’에 제동을 걸려는 승부수로 보인다. 하기야 개정될 ‘전쟁 헌법’ 초안은 일왕을 국가원수로 명문화하고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니 아키히토 일왕과, 아버지 못지않은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나루히토 왕세자(56)에게도 쉽게 용납할 수 없는 역할인 것이다.

일왕은 누누이 “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진 오늘, 일본은 평화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