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에 출전한 김동성 선수의 금메달 꿈은 신기루 같았다.
결승선 직전까지 중국의 리자쥔(李佳軍)에 뒤져 있었기 때문이다. 리자쥔이 환호하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뒤에서 파고들던 김동성 선수가 사력을 다해 왼발을 쭉 뻗었다.
사진판독결과 김동성의 스케이트날이 간발의 차로 먼저 결승선을 지났다. 우승을 확신했던 리자쥔의 그 황망한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국 특유의 필살기였던 ‘스케이트 날 들이밀기’는 이후 쇼트트랙 피니시 전법의 기본이 되었다. 한가지 ‘들이밀기’에서 주의할 점은 날을 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꺼번에 레이스를 펼치는 종목 특성상 부상의 위험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쇼트트랙에서는 빙판에 설치된 센서의 판독으로 순위를 정하므로 날이 들리면 기록이 측정되지 않는다.
반면 스피드스케이팅의 ‘피니시 신공’은 ‘날 차올리기’이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 출전한 이상화 선수는 결승선 통과할 때 스케이트 앞날을 차올려 기록을 단축했다. 이 ‘차올리기 기술’은 캐나다 선수들이 착안한 것이다.
신체 일부가 결승선을 통과하면 되는 스키 크로스 선수들은 손가락을 쭉 내미는 피니시 기술로 등위를 가린다. 다소 얍삽해보이기도 하지만 0.0001초라도 먼저 골인하고픈 선수의 본능이 끝내기 비법으로 승화된 것이다.
2016 리우 올림픽 육상 여자 400m 결승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샤우내 밀러(22·바하마)가 ‘다이빙 골인’으로 엘리슨 펠릭스(30·미국)을 0.07초 차로 제치고 역전우승했다. 상대가 미국인의 우상이어서 그런가. 밀러에게 ‘비겁한 승리’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밀러의 다이빙은 무죄다. ‘목, 팔, 머리, 다리, 손을 제외한 몸통(가슴)이 결승선을 먼저 통과해야 한다’는 피니시 규정 때문이다. 사진판독 결과 몸을 던진 밀러의 가슴 부위가 분명 앞서 있다.
다만 발로 승부를 거는 육상경기에서 ‘발’이 아닌 ‘가슴’으로 승부하는게 스포츠맨십에 부합되는 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다. 밀러는 일부러 넘어진게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전에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어쩌다보니 넘어져 있었고, 머리가 하얘졌다. 어렴풋 엄마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금메달이었다.”
미국의 육상영웅 마이클 존슨(48)도 “중심을 잃은 밀러가 넘어지지 않으려고 다이빙한 것이며, 이것은 이번 올림픽 최고의 장면이었다”고 옹호했다.
‘본능 다이빙’이었다면 다행이지만 고의였다면 절대 칭찬할 수 없다. 물이나 얼음, 눈 위라면 혹 몰라도 딱딱한 트랙에서 다이빙을 남발한다면 어찌되겠는가.
게다가 육상은 아무런 보호장비없이 몸 하나를 밑천 삼아 달리는 운동이다. 밀러도 타박상을 입고 몇분간 누워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지 않은가.
경우는 다르지만 그라운드에서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몸싸움을 벌이는 축구 선수들에게도 ‘다이빙’은 비신사적인 행위로 손가락질 받는다. 심하면 옐로카드까지 받는다.
그러고보면 다이빙은 물(다이빙), 얼음(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눈(스키·스노보드) 위에서나 할 수 있지 트랙이나 그라운드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행위인 것 같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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