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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졸지에 사기꾼이 된 파스칼

블라즈 파스칼(1623~1662)하면 명상록 <팡세>와, “인간은 갈대에 지나지 않지만, 생각하는 갈대”라는 명언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파스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수식어가 있으니 바로 수학천재였다. 르네 데카르트(1595~1650)는 1639년 블레즈 파스칼이 불과 16살의 나이에 발표한 ‘원추곡선의 기하학’ 논문을 “믿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건 걔(파스칼)가 쓴 게 아니야. 아버지가 쓴 게 분명해.”

데카르트조차 미처 깨닫지못할 정도의 수학신동이었던 것이다.
판사 출신 세무감독관인 아버지(에티엔)는 오로지 독학으로 아들을 가르쳤다. 특히 수학은 15살 이후에나 배우라고 했다.

블레즈 파스칼은 희대의 신동이었다. 철학과 신학, 심리학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수학에 관한한 불세출의 천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파스칼은 12살 때 유클리드의 23가지 공리와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을 스스로 터득했다. 아버지는 결국 14살에 불과한 아들을 마랭 메르센느 신부가 주도한 수학자 모임에 데려간다.

그 모임에서 발표한 첫작품이 바로 ‘원추곡선의 기하학’이었다. 파스칼은 아버지의 세금징수를 도와주려고 계산기를 발명했다. ‘파스칼리느’라 명명된 세계 최초의 디지털 계산기였다.

1654년 파스칼이 타고 있던 사두마차의 고삐가 풀려 마차가 다리로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더욱 신학에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파스칼은 천생 ‘수학의 신’이었다. 1658년 어느 날 치통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못한 파스칼은 사이클로이드 곡선 연구에 정신을 쏟아 단 8일만에 그 원리를 풀어냈다.

고통을 잊기위해 수학문제를 풀었다니 아무도 못말리는 ‘수학 덕후’였던 것이다. 그런 파스칼이 남긴 가장 위대한 과학적 업적이 있었다.

파스칼의 원리. 액체를 용기속에 밀폐하고 그 일부에 압력을 가했을 때, 압력은 모든 부분에 그대로 전달된다.(출처:기계공학용어사전, 기계공학사전편찬위원회, 1995. 3. 1., 한국사전연구사)

1653년 설명한 ‘파스칼의 원리’이다. 즉 밀폐 용기 내부의 유체 일부에 압력을 가하면 그 압력은 유체 내의 모든 곳에 ‘같은 크기’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고무풍선 구멍으로 공기를 불어넣으면 풍선 전체가 동시에 부풀어오르는 이치와 같다. 치약 짜기와 주사바늘, 지렛대·도르래·유압기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작동시키는 것이 바로 파스칼의 원리이다.

최근 ‘파스칼의 원리’에 따라 개발했다는 침대 매트리스 사업에 투자자를 모아 170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온몸의 체중을 침대 전체에 고루 분산시켜준다고 선전했으니 그럴듯 하다.

하지만 자체생산설비도 없는, 제품 판매를 가장한 다단계 업체일 뿐이었다. 사후 400년이나 지난 파스칼의 이름까지 팔아 사기치는 세상이 되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