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풍이 형하고 나란히 소변을 보면서 감독(윤상문)을 세게 뒷담화했어요. 감독이 화장실 안에 있는 지도 모르고….”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코리아’ 단일팀으로 참가했던 당시 이유성 코치의 회고담이다. 북측 조남풍 코치와 ‘짝짜궁’이 되어 남측 윤상문 감독을 험담하다가 혼쭐이 났다는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이 ‘우리 남풍이형’, ‘우리 유성이’하는 통에 얼굴도 모르는 양쪽 코치의 부인들도 마치 친동서간처럼 지냈다. “통일되면 내가 남풍이 형 노후를 책임진다고 했는데….”(이유성씨)
1991년 3~4월은 남북 탁구선수들이 ‘46일간의 작은 통일’을 이룬 아름다운 나날로 기억된다. 현정화-리분희, 유남규-김성희 조 등 남북한 선수들이 팀과 짝을 이뤄 전지훈련과 대회기간 내내 한솥밥을 먹었다.
셔틀버스 안에서 남측 유남규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북측 리분희는 ‘대장부의 노래’, 유순복은 ‘설죽화’를 구성지게 불렀다. 코리아 선수들은 함께 부를 수 있는 ‘반달’과 ‘나의 살던 고향은’을 함창하며 울컥하기도 했다.
북측 김성희는 복식짝궁 유남규를 두고 “실력은 좋지만 시건방을 떠는 게 흠”이라고 서슴없이 꼬집어 폭소를 자아냈다. 북한선수들은 남측 김택수와 이철승 등에게 북한 영화 주인공 이름인 ‘민보(이철승)’, ‘택까니(김택수)’라는 별명을 붙이며 놀렸다.
북측 김국철은 남측 여자선수들의, 남측 현정화는 북측 남자선수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훗날 현정화는 “꼭 제 옆에 앉는 북쪽 남자선수가 있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회도중 간염에 걸린 리분희에게 초밥이라도 사먹이려고 동분서주했던 추억도 아스라하다.
전지훈련 숙소에서 생면부지 남측 기자의 전화를 1시간 가까이 받아 평양의 일상을 차근차근 말해주던 리근상과 리분희의 목소리가 지금도 필자의 귓전을 때린다.
2016 리우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남측 이은주(17)와 북측 홍은정(27) 선수가 셀카를 찍은 모습이 화제를 뿌리고 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장은 올림픽만이 보여줄 수 있는 ‘위대한 몸짓(Great gesture)’이라 치켜세웠다. 정치학자 이언 브레머 뉴욕대 교수는 셀카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이것이 올림픽을 하는 이유’라 했다.
하지만 25년 전 ‘46일의 통일’을 경험한 필자의 느낌은 ‘씁쓸함’이다. 아니 선수끼리 다정한 포즈로 셀카 한 번 찍었다고 저렇게 ‘위대한’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 일인가.
어떤 이들은 심지어 두 선수가 혹시 각자의 나라에서 쓸데없는 짓을 벌였다고 욕이나 먹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도 한다. 가만 보면 올림픽 개막식 때 남북한이 공동 입장한 것도 벌써 10년 전(2006년 토리노 동계)의 일이다.
이번 리우올림픽 때는 거론조차 안됐다. 남북스포츠 교류는 진전은커녕 1980년대 이전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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