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리우 올림픽 남자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자 만큼이나 박수를 받은 선수가 있었다.
캄보디아 대표인 다키자키 구니아키(39·瀧崎邦明)였다. 다키자키는 155명 중 140명이 완주한 이날 레이스에서 요르단의 메스컬 드라이스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꼴찌를 간신히 면했다. 139위.
147㎝의 초단신인 다키자키의 원래 직업은 전문 마라토너가 아니다. 일본 개그맨이다. 2005년 일본 TBC 방송 프로그램 ‘올스타 감사제’ 중 ‘미니 마라톤’ 코너에 출연해서 3시간48분57초를 기록했다. 이것이 마라톤 입문의 계기였다.
남다른 재능을 발견한 다키자키는 개그와 마라톤을 겸업했다. 그러던 2009년 한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일본에서는 안되는 실력인데, 국적을 바꿔 도전하면 어떠냐”는 농담을 들었다.
2011 앙코르와트 국제대회에서 3위에 입상하면서 농담이 현실로 바뀌었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아예 캄보디아로 국적을 바꿨다. 올 5월 캄보디아 국내 선발전 우승으로 리우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고, 올림픽 레이스에서 마침내 탈꼴찌의 성적표를 얻어냈다.
2시간45분44초라면 11년 전의 첫 기록보다 1시간 3분 여를 단축시킨 셈이다. 기특한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 개그맨 출신 마라토너의 인간 드라마를 쓰자는 것이 아니다.
다키자키의 사연 뒤에 숨은 한국 마라톤의 슬픈 현실을 언급하고자 한다.
즉 다키자키의 바로 앞 순위인 138위(2시간42분42초)와, 불과 8단계 위인 131위(2시간36분21초)가 바로 한국 선수들이다. 포기 없이 완주한 두 선수를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손기정-서윤복-황영조-이봉주 등 세계를 주름 잡았던 한국 마라톤의 위상이 저렇게 추락했다. 딱 80년 전인 손기정 선수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우승기록(2시간29분19초)보다도 7~13분이나 처진 기록이다. 국가 대표 전문 마라토너의 노력이 한 개그맨의 개인적인 분투와 비교·희화화 되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다.
요즘 메달지상주의를 두고 ‘촌스럽다’고 폄훼한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의 “올림픽은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올림픽 강령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올림픽의 표어는 라틴어로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이다. 참가하는 데 의미도 있지만 경쟁 또한 올림픽의 숭고한 정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오로지 올림픽을 위해 4년 간 흘려온 선수들의 피와 땀을 생각하면 ‘울지마라. 올림픽 자체를 즐기라’고 강요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졌다면 분하고, 슬퍼하고, 낙담해야 한다. 그것이 승부사의 인지상정이다. 그런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올림픽 같은 이벤트가 끝난 뒤 당연히 과정과 결과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졌다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패인을 파악하고 묘책을 마련하는 일은 체육계의 ‘올림픽 후 과제’이다. 그런 다음 선수들이 제대로 뛸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주고 격려를 하든 책망을 하든 해야 한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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