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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고구려군의 짬밥

“좋은 밭이 없다. 힘들여 밭을 갈아봐야 수확이 충분치 못하다. 배가 고프다. 고로 사람들은 음식을 절약한다(無良田 雖力佃作 不足以實口腹 故其人節食飮).”(<삼국지> ‘위서·동이전’, <북사> ‘열전’ 등)

중국 역사서는 죄다 고구려를 ‘배고픈 나라’로 표현하고 있다. ‘큰 산과 깊은 계곡이 많기(多大山深谷)’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품이 흉악하고 급해서 노략질을 즐기며, 전투를 익힌다”(<삼국지>, <후한서>)고 부연설명까지 했다. 더 꼬집었다. “농사를 짓지 않은 채 앉아서 밥을 먹는 자(坐食者)가 1만호나 됐다”(<삼국지>)는 것이다. 비참한 일이다. 백성들이 배를 곯고, 고관대작들은 무위도식하고 있었다니….

그러나 후세의 연구자들은 ‘고구려의 헝그리 정신’으로 미화했다. 배고픔을 ‘헝그리 정신’으로 이겨내며 끊임없이 정복전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로써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해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의 ‘700년 사직’은 과연 기아로 점철된 역사였을까. 고구려군 최전방사령부(553~668년)가 주둔했던 경기 연천 호로고루의 군량창고 등에서 비밀을 풀 실마리가 쏟아져 나왔다(토지박물관 발굴). 쌀·콩·조·팥 등의 곡식과 소·사슴·멧돼지 등 다량의 동물뼈…. 특히 고구려군이 당시로서는 최고급 곡식인 쌀을 ‘짬밥’으로 먹었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또 하나, 무려 1300g의 밥이 들어가는 밥그릇(사진)이 나왔다. 요즘 ‘밥 한 공기’(210~350g)의 4~6배나 들어가는…. 여기에 장양(藏釀·고구려 발효음식)에 맥적(貊炙·고기를 꼬챙이에 꿰어 구운 고구려 전통요리)까지 먹었던 고구려군을 상상해보라. 혹자는 이것을 척박한 땅에서 출발한 고구려가 마침내 만주와 랴오둥(遼東)의 곡창지대를 석권한 증거라고 한다. 

이후에도 선조들은 ‘밥’에 목숨을 걸었다. <용재총화(용齋叢話)>(1525년 간행)는 “배고픈 것을 참지 못하고, 가난뱅이들은 부잣집에서 꾸어서 양껏 먹었다. 군대 이동 때는 군량짐이 반을 차지했다”고 했다. 전라 진휼사(賑恤使) 이극돈(李克墩·1435∼1503)은 “중국인이 하루 먹을 양을 한 끼에 해치운다”고 한탄했다. 구한말 서양인들은 한결같이 ‘대식국(大食國)’이라면서 조선인의 식탐(食貪)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들 어떠하리. 누가 뭐라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밥심’은 ‘천심’이었는데…. 요즘도 “진지 잡쉈어요” 혹은 “밥 먹었어” 하는 인사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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