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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20전8승5패

고구려와 백제는 동족(부여계)이면서도 피비린내 나는 상잔(相殘)을 벌였다. 369년부터 시작된 전쟁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 같다. 배신과 복수, 간계와 반간계가 난무한….

전적은 고구려 기준으로 20전8승5패(7전은 승패불명). 초반 승자는 백제였다. 승리의 주역은 ‘배신의 아이콘’ 사기(斯紀)였다. 사기는 백제 시절, 왕의 말발굽을 다치게 한 뒤 고구려로 망명했다. 371년 고구려의 남침 소식에 백제는 불안에 떨었다. 그때 사기가 백제 진영으로 잠입한다.
 

“고구려 군사의 수가 많다지만 새빨간 거짓입니다.”(<삼국사기> ‘근구수왕조’)

사기의 말을 듣고 백제는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다. 마침내 평양성 전투에서 고구려 고국원왕을 죽인다. 하지만 눈에는 눈. 396년 이번에는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쳐 58성 700촌을 빼앗는다. 백제 아신왕은 광개토대왕 앞에 무릎을 꿇고 맹세한다. “영원한 노객(奴客)이 되겠노라”고….(‘광개토대왕 비문’) 

고구려는 끝장을 보려 한다. 장수왕이 간첩을 모집한다. 승려 도림(道林)이 “내가 가겠다”고 자청한다. 백제로 잠입한 도림은 바둑을 좋아하는 개로왕을 만났다.

“한 수 가르쳐드리겠나이다.”

도림은 국수(國手)였다. 개로왕이 바둑에 넋을 잃었다. 도림이 세 치 혀를 놀렸다.

“백제는 천혜의 요새입니다. 한데 성곽과 궁실이 엉망입니다. 선왕의 해골이 흩어져 있고, 민가는 강물에 자주 허물어집니다.”

개로왕은 백성들을 징발했다. 대대적인 궁실 및 성벽 수축에 나섰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게(儉而不陋), 화려하지만 사치하지 않게(華而不侈) 하라”는 창업주(온조)의 유지를 깬 것이었다. 창고는 텅 비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도림의 계책이 통하자 장수왕은 백제 공략에 나선다. 원정군은 걸루(桀婁)와 만년(萬年)이 맡았다. 둘다 백제에서 죄를 짓고 고구려로 망명한 배신자들이었다. 개로왕은 이들의 손에 최후를 맞는다. 

“걸루·만년이 개로왕을 보고 말에서 내려 절을 한 뒤 세 번 침을 뱉었다(下馬拜已 向王面三唾之). 그런 뒤 아차산(사진) 아래에서 죽였다.”(<삼국사기> ‘개로왕조’)

백제·고구려의 106년 전쟁은 고구려의 승리로 마무리된다(475년). 그러나 동족 간 반목과 갈등은 15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재연되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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