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겨울 꽁꽁 얼어붙은 향원정 연못에 서양 외교관 부부들이 모였다. 날달린 구두를 신고 지친다는 ‘빙족희(氷足戱)’가 무엇인지 궁금해한 고종이 시범을 보여달라고 청한 것이다.”
이것은 조선을 방문한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이 경복궁 향원정에서 벌어진 빙족희, 즉 피겨스케이트 시범을 소개한 기록(<조선과 이웃나라들>)이다. 이때 고종과 ‘빙족희’를 관람하던 명성황후(1851~1895)가 남긴 촌평이 자못 재미있다. “남녀가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게 꼭 사당패와 색주가들 같구나.”
향원정 해체 복원 중 발굴된 온돌구조, 일반적으로 장바닥 전체에 여러 줄의 고래를 놓아 방 전체를 데우는 방식과 달리 향원정 온돌구조는 가장자리에만 난방이 되는 독특한 구조이다,|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제공
그렇지만 비숍은 “처음에는 ‘무슨 짓이냐’며 못마땅해하던 명성황후가 시연자들이 얼음판 위에 놓인 의자를 훌쩍 뛰어넘는 곡예를 부리자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고 소개했다. 1886년 육영공원(국립영어학교) 교사로 초빙되어 조선을 방문한 조지 길모어(1857~?)의 <서울풍물지>(1892년)도 경복궁 향원정에서 벌어진 피겨스케이트 시연 모습을 소개한다,
“‘시범을 보이라’는 왕비(명성황후)의 초청장이 배포되어 상당한 스케이터가 응했다. 궁궐 안…둥근 모양에 직경으로 약 70야드쯤 되며 중심부의 섬에 예쁘고 작은 정자가 있었다. 장막 뒤에 몸을 가렸지만 시야는 확보된 시종들과 더불어 국왕과 왕비는 이 정자에 있었다. 두 분 역시 의심할 바 없이 열정적인 구경꾼이었다.”
길모어는 “마술전문가이자 피겨스케이터가 전속력으로 달려와 아이스체어 위로 점프를 했을 때 흥미는 최고조에 달하였다”면서 “두 분 전하의 탄성의 소리가 스케이터의 귀에까지 들렸다”고 전했다.
러시아 베베르 공사가 찍은 경복궁 향원정 모습. 1891~1901년 사진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향원정(보물 제1761호)은 1873년(고종 10년) 고종 부부의 거처인 건청궁 조성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복궁 후원 영역에 네모난 연못(향원지)을 파서 섬을 만들고 조성된 2층 정자건물이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거처인 건청궁과는 다리(취향교)를 통해 연못을 건널 수 있게 했다. 연못 위의 육각형 정자는 ‘향기(香)가 멀리(遠) 퍼지는 정자(亭)’라는 뜻의 ‘향원정’이며, 향원지를 건너는 다리는 ‘향기에 취한다”는 뜻의 취향교(醉香橋)라 했다. 향원지와 향원정은 고종와 명성황후 부부의 휴식공간이었지만 비숍과 길모어의 기록에서 보듯 한겨울 피겨스케이팅의 시연장 역할도 했다. 고종과 명성황후 부부는 물론이고 외교사절 및 귀빈들까지 무언가 따뜻한 난방시설 덕분에 쾌적한 환경에서 피겨스케이팅 시범공연을 관람했을 것이 분명하다. 시연을 관람한 비숍과 길모어 중 누구도 ‘추워 죽을 뻔했다’는 소감을 남기지 않았으니 말이다.
향원정의 중앙부에 흙을 쌓은 모습.. 방의 기초는 건물 기단 안으로 기와를 깨서 넓게 펴고 그 위로 석회가 섞인 점토를 다지는 것을 교차로 반복해서 조성했다.|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제공
이에 전문가들은 ‘1층 온돌, 2층 마루인 향원정에는 1층에 아궁이가 설치된 독특한 형태의 온돌시설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해왔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여러번 풍동(실제와 같은 모형으로 축소해서 오염물질 확산현상을 재현하는 실험) 및 연막실험(하수관로에 연막을 뿜어 각 관이 제 역할을 하는 지 알아보는 실험)을 해봤지만 배연구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9월 향원정을 조사하던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발굴팀이 비로소 온돌유구를 찾아냈다. 물론 구들장은 확인되지 않았다.
연도가 노출된 상황.
언젠가 정자바닥을 부분 수리하면서 구들장을 걷어내고 시멘트로 발라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발굴결과 온돌유구의 흔적이 명백한 고래둑(구들장 밑에 낸 고랑), 개자리(불기운 빨아들이고 연기를 머물게 하려고 온돌 윗목에 방고래보다 깊이 파놓은 고랑), 연도(연기통로) 등을 확인했다. 방의 기초는 건물 기단 안으로 기와를 깨서 넓게 펴고 그 위로 석회가 섞인 점토를 다지는 것을 교차로 반복해서 조성했다. 이렇게 조성된 기초 바깥으로 방고래와 개자리를 두르고 있었다.
향원정의 온돌구조는 독특하다. 오현덕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일반적으로 방바닥 전체에 여러 줄의 고래를 놓아 방 전체를 데우는 방식과 달리 향원정 온돌구조는 가장자리만 난방이 되는 구조”라고 전했다. 아궁이에서 피워진 연기는 굴뚝을 통과하지 않고 연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는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향원정은 해방 이후 몇차례 보수를 거쳤지만 건물의 기울어짐과 뒤틀림 현상이 계속되어왔다.
김태영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사무관은 “이번 발굴에서 주춧돌을 받치고 있는 초반석에 균열이 생긴 것을 확인했다”면서 “건물이 지속적으로 기울고 뒤틀리는 현상의 원인을 파악한 것이 큰 성과”라고 밝혔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지난 2017년부터 향원정 해체 복원 공사를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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