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정동 안가와 파가저택

조선시대 때 ‘파가저택(破家저澤)’이라는 형벌이 있었다.

죄인을 극형에 처한 뒤 그 집을 헐고, 집터에 연못을 팠던…. 대역죄나 존속살인 등 삼강오륜을 위배한 강상죄인(綱常罪人)에게 부과된 형벌이었다. 풍운아 허균(許筠·1569~1618)과 천주교인 유항검(柳恒儉·1756~1801) 등이 바로 능지처참과 함께 파가저택의 형을 받았다. 형벌의 뿌리는 춘추시대 주루국(婁國)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루국의 정공(定公) 때 아비를 시해한 자가 있었다. 정공은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고, 아들이 아비를 죽이면 용서없이 죽인 뒤 그 집을 허물고 집터를 파서 연못으로 만든다’고 했다.”(<예기> ‘단궁 하’)

‘주루국’은 동이계의 터전이었던 산둥성(山東省)에 존재했다. 주루국이 있었던 추(鄒)와 노(魯) 땅은 공자와 맹자가 태어나고 활동한 곳이다. 그래서 예와 학문을 중시하는 고을을 ‘추로지향’이라 했다. 정공은 바로 그 ‘강상죄인’을 엄벌에 처했을 것이다. 

자, 이제, 청와대 옆에 조성된 작은 공원을 가본다. 표지석을 보자.(사진)

“안가를 헐어버리고…. 민주화의 길을 되돌아보는 역사의 배움터로 사랑받기를….”

밑도 끝도 없다. 안가는 무엇이고, 민주화는 무엇이며, 뭘 되돌아보라는 건가. 아무 배경설명도 없이…. 그렇다. 이곳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궁정동 안가 터이다. 1993년 7월 김영삼 대통령이 헐어버린 뒤 ‘무궁화동산’을 조성했다. “밀실정치의 상징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면서…. 동산 안에는 정(井)자 모양의 우물을 만들었다. ‘궁정동(宮井洞)’을 의미한단다. 하지만 ‘파가저택’의 형벌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바늘을 훔친 이는 주살되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 제후의 문에 인의가 있다(竊鉤者誅 竊國者侯 侯之門仁義存).”(<사기> ‘유협전’)

‘성공한 쿠데타’라면 처벌은커녕 되레 ‘인의를 갖춘 성군’으로 추앙받는다는 것이 아닌가. 실패자는? 그저 바늘도둑처럼 주륙당하고 마는 것. 그래도 역사를 그렇게 지워버려도 되는 것일까. 반면교사라는 말도 있는데…. 

“지난 일을 기술하여 후세사람들을 생각에 잠기도록 한다(故述往事 思來者).”

이 시간, 사마천이 불후의 역사서인 <사기(史記)>를 쓴 까닭을 다시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