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더 있는 해와 달을 보면 크기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해보인다.
간단하지만 오묘한 우주의 조화가 숨어있다.
즉 해의 지름이 달의 지름보다 400배나 크지만 거리는 달보다 약 400배 떨어져 있다. 그래서 지구-달-태양이 일직선에 놓인다면 개기일식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1년에 12번 일어나지만 그 때마다 개기일식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지구와 달의 공전궤도면이 5도 정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보통 4년에 3번 꼴로 발생하지만 이마저 관측 가능한 곳은 대부분 바다 위이다.
21일(현지시간) 그렇게 관측하기 어려운 개기일식이 서부 태평양 해안부터 동부 대서양 해안까지 횡단했다.
1918년 이후 99년 만에 처음이라니 미국 전역이 흥분에 휩싸일만 하다. 이번 개기일식은 시속 2735㎞의 속도로 약 1시간 34분 동안 미 대륙을 가로질렀다. 한 자리의 최대관측시간은 2분 30초가 되었다,
천문학자들은 평소 태양 빛 때문에 관측할 수 없었던 코로나(태양의 대기층)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즉 지구자기장을 교란시키는 코로나에서 방출하는 초고온 가스(플라스마)를 관측할 수 있다. 일생에 한번 볼까말까 한 우주쇼를 즐기려는 일반의 관심도 대단했다.
주민 1100만명이 개기일식을 직접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잘보인다는 오레건 주의 사막지대인 매드라스에는 약 10만명이 찾았다.
개기일식이 엄청난 관광수입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물론 개기일식을 보려고 자리를 비울 노동자들의 공백 등을 감안하면 7억 달러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보도도 있다.
요즘은 이렇게 개기일식을 과학과 경제의 측면에서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예전의 동양사회 같았으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하늘의 버림을 받은 지도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을 것이다.
“군주의 표상인 태양이 (일식으로) 가리고 먹혔으니 곧 재앙이 조짐”(<춘추호씨전>)이라는 해석이 동양사회를 지배했으니 말이다.
“여자가 남편을 타고 올라서고 신하가 군주를 등지며 권력이 신하에게 있고 오랑캐가 중국을 침범하는 것은 모두 양기가 미약하고 음기가 성한 증거이다.”
이를 두고 <예기>는 “남자를 가르치지 않아서 양사(陽事·남녀의 육체관계)가 알맞지 않으면 하늘이 꾸짖어서 일식이 있게 된다”고 해석했다.
그러니까 일식은 여자가 남자를 올라타는 격이며. 남녀의 비정상적인 육체관계를 상징해서 하늘이 견책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라고 여긴 것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무슨 시대착오적 이야기냐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식은 하늘의 견책이라 천자(황제)는 소복을 입고 정사를 정비한다”(<예기>)고 했다.
기상현상까지도 지도자의 도리와 연결시킨 동양사회의 가르침을 이 순간 한번쯤 되새겨본들 나쁠 것은 없겠다. 게다가 지금 미국과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대통령이 누구인가. 트럼프가 아닌가.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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