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5월 설악산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반달가슴곰이 2주 이상 고통을 호소하다가 끝내 숨졌다.
밀렵꾼들이 10여일 이상 총을 맞고 고통 속에 죽어가는 곰의 동태를 살피면서 밀매꾼들과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곰의 쓸개, 즉 웅담을 키우려고 사경을 해매는 곰을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다.
더욱 기막힌 뉴스는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이 죽은 곰의 웅담(180g)을 4600만원에 공매처분했다는 것이다.
창경궁에서 실시된 공매의 낙찰자 인터뷰 기사까지 자랑스레 실렸다. 다른 곳도 아닌 문화재관리국이 천연기념물(제329호)의 내장(웅담)을 대놓고 팔았다는, 지금 같으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뉴스가 버젓이 등장한 것이다.
이보다 앞선 1975년 9월에는 꿀바른 고기에 폭약을 넣어 반달가슴곰이 지나는 길목의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은 장면이 포착되었다. 고기를 덥석 물은 곰은 턱과 입이 박살난채 죽을 수밖에 없었다.
반달곰은 이렇게 웅담을 좇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절멸의 위기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단군신화의 주인공 답게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했다. 2000년 무렵 지리산에서 5마리 내외의 반달곰 영상이 포착됐다.
그때부터 러시아·중국·북한 반달곰 등을 더해 복원사업을 벌였고, 지금 이 순간에는 지리산에서만 56마리나 살고 있다. 50마리가 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리산 반달곰의 경우 MVP(최소개체존속수·Minimum Viable Population)는 51마리로 평가된다. 즉 지리산에서 야생 반달곰이 51마리 이상 서식하면 어떤 개체수·환경·유전변화와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100~1000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99%가 된다는 뜻이다.
반달곰의 수명(20~25년)을 감안하면 2027년 쯤이면 지리산에만 약 100마리 정도가 서식할 수 있다. 또 지리산이 수용할 수 있는 개체수는 78마리 정도로 추산된다.
이제부터는 반달곰의 거주지역을 꼭 지리산으로 제한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비근한 예로 지난해 지리산에서 약 100㎞ 떨어진 김천 수도산까지 두 번이나 이동한 반달곰은 번번히 붙잡혀왔다.
그러나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김천 뿐 아니라 광양이나 곡성까지 이동하는 반달곰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체수 번식’에서 ‘서식지 관리를 통한 인간과의 공존’으로 정책방향이 바뀔 수밖에 없다.
어떤 매체의 표현에 착안하면 ‘반달곰이여! 그대들에게 거주 이전의 자유를 허한다’고 선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다만 공존이 아닌 충돌 가능성도 늘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반달곰은 어디까지나 맹수가 아닌가.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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