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분계선(휴전선)은 엄밀히 따지면 군사분계점(휴전점)이라 해야 한다. 선이 아니라 점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에 따라 유엔군·공산군측은 54년 9월까지 임진강변의 제0001호 말뚝(표지판)에서 동해안의 제1292호 말뚝까지를 지도상으로 이은 선을 군사분계선이라 했다.
그중 696개는 유엔군이, 596개는 북한군이 관리한다. 간격도 200~500m 사이로 들쭉날쭉했다.
흔히 155마일(248㎞)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디지털맵으로는 148마일(238~239㎞)로 계산된다. 어찌됐든 이 ‘지도상의 선’을 기준으로 남북 2㎞씩 만들어놓은 완충지대가 바로 비무장지대다.
그런데 휴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은 육지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즉 임진강변 이하~강화도와 황해도 사이의 한강하구~서해로 이어지는 강·해상에는 군사분계선이 없다.
서해 바다까지 군사분계선을 둔다면 북한을 해상봉쇄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다만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 5도만은 유엔군 사령관의 통제아래 두었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모호한 군사분계선 때문에 수십년동안 남북간 엄청난 분란을 겪었던 것이다.
육지의 군사분계선 역시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분계선 말뚝 표지판이 낡거나, 홍수 등으로 소실되거나, 지형과 지세가 자연스럽게 바뀌거나 한 탓이다.
곳에 따라서는 30~40m 이상 넘나들어도 쌍방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 1973년 3월7일에는 분계선 말뚝 작업을 끝낸 한국군 작업반이 총격을 받아 3명의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그나마 공동경비구역인 판문점에는 군사분계선 없이 쌍방 경비병이 뒤섞여 다녔다.
그러나 1976년 8월18일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고, “이런 상태로는 언제든 참극이 재발할 수 있다”는 북한의 제의에 따라 그해 9월 판문점에도 군사분계선이 생겼다.
말뚝 표지판인 다른 곳과 달리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은 높이 5㎝, 폭 50㎝의 야트막한 돌턱이다. 명확한 구분선을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는 내 땅, 거기는 니 땅이니 서로 금 밟고 넘어가면 큰일난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닌가.
27일 판문점의 ‘군사분계턱’을 넘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영접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다시 북쪽으로 넘어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김정은 위원장의 탈북과 문재인 대통령의 월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터져나온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식으로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두 정상의 스스럼없는 표정에서 65년 이어진 적대감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느끼게 된다.
수십년동안 남북한을 저토록 옥죄고 갈등을 유발시켰던 분계선이 마음 먹기에 따라 저렇게 아무 것도 아닌 ‘금’이 되었다. 두 정상은 어린아이처럼 ‘금 밟기 놀이’를 했다. 얼굴을 한번 꼬집어봐야겠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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