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한정동의 동시 ‘따오기’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읊었다. 일본에서 발견된 새라서 ‘니포니아 니폰(Nipponia nippon)’이라는 학명이 붙었다.
훗날 동요로 거듭난 ‘따오기’가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애환을 표현한 노래로 금지곡이 됐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1960~70년대엔 ‘보일듯 보이지 않는…’의 가사 때문에 ‘미니스커트’의 다른 말로 전용되기도 했다.
몸길이가 70㎝에 이르는 따오기는 ‘황새의 재판’ 설화에서 뇌물공여자로 등장한다.
꾀꼬리·뻐꾸기와 목소리 소송을 벌이던 따오기는 ‘재판관’ 황새를 찾아가 개구리를 바쳤다. 뇌물공세는 주효했다.
재판관 황새는 곱디고운 꾀꼬리·뻐꾸기의 노래를 무시하고 그저 ‘따옥’ 소리만 낸 따오기의 손을 들어주었다.
부패사회의 상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것이다.
따오기는 예부터 마을의 소나무나 논가에서 한가롭게 노닐던, 민간과 매우 친숙한 새였다. 사람과 친해지면 경계심을 푼다.
개구리와 논새우, 미꾸라지 등을 먹는다. 얼마나 깔끔을 떠는지 죽었거나 썩은 먹이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흙이 조금이라도 묻은 먹이는 씻어 먹을 정도다. 결벽증 환자 같다.
바로 이런 습성 때문에 멸종의 위기에 빠진다.
1882년 조선에 머물던 영국의 조셉 캠벨은 “매우 흔한 조선의 따오기는 손쉽게 사냥총의 밥이 된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말부터 따오기의 깃을 화살에 붙여 쏠만큼 남획했다. 여기에 매와 독수리 등 천적의 공격에 따오기는 속수무책이었다.
한국에서는 1979년 경기 파주 비무장지대 일대에서 한마리 발견된 게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사라졌던 따오기가 인공번식 끝에 171마리나 생겼다는 소식이 들린다.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보낸 따오기 한 쌍이 낳은 자손들 덕분이다.
경남도와 창녕군은 2013년 유전자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수컷 두마리를 더 들여와 번식력을 더 높였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복원한 따오기가 10월4일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이성봉 창녕군청 따오기복원팀장은 “내년 10월 야생방사까지 예정돼 있다.”고 전한다.
생전 처음으로 ‘따옥 따옥’ 따오기의 울음 소리를 직접 들어봐야겠다. 세계적으로도 1000여 마리 뿐이란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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