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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루트를 찾아서

불함-홍류 하느님과 유화 성모신앙

‘코리안 루트’ 1만km 대장정
‘부르한’은 천손을 잉태하는 모태로 ‘모성적인 하느님’

 

대흥안령 타이가 지대의 자작나무 군락. 스키토·시베리안은 고원지대의 흰 자작나무와 저습지대의 붉은 버드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여겼다.

7월 10일 정석배 교수팀의 연해주 체르냐치노 발해 유적지 발굴 현장을 답사하고 나서 나는 이를 다음 답사지인 바이칼 호반 톤타 유적의 그것들과 비교해 검토해보려 했다. 체르냐치노 고분군과 톤타 유적은 모두 돌로 무덤을 쓴 점에서 유사해보여서다.

그런데 7월 13일에 바이칼 호반에서 나린얄가 천제단으로 답사지가 바뀌었다. 나린얄가를 보면 톤타는 안 봐도 된다는 것이었다. 천제단 유적으로는 두 곳이 같다고 할 수 있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부르한(Burqan)과 붉은 버드나무(紅柳) 때문이었다. 나는 일찍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비밀의 열쇠가 이 속에 숨어 있다고 보았다.

바이칼 호 동남쪽으로 가장 길게 뻗어 있는 유명한 홍류 산맥 속 우드 강 발원지. 거기에 부르한의 원형이 제일 잘 보존돼 있다. 이는 울란우데 현지 학자들로부터 끊임없이 들어온 정보다. 하지만 모랫길 때문에 헬리콥터를 띄워야 한다고 해서 그동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언저리만 맴돌았다.

매우 아쉬워하던 차였는데, 부이르 호수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뜻밖의 수확을 올렸다. 들개 떼들이 모여 쉬는 황량한 스텝에 멀리 점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다. 원래는 차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길이었지만 버스 기사를 재촉해 초지로 진입해 가까이 다가갔다. 짐작했던 대로 홍류 오보(서낭당)였다.

불함은 투르크-몽골어로 하느님 지칭
 
[##_'1R|cfile29.uf@1609EE464EC4B807141C63.jpg|width="197"_##]'>연해주에 여섯 번째로 발을 들여놓은 나는 ‘산해경’ 대황북경 17에 ‘불함유숙신지국(不咸有肅愼之國)’이라는 첫 기록이 있어서 ‘불함=홍류’의 원형을 숙신의 옛 땅 연해주에서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2005년 겨울 답사 때 잎이 진 홍류의 가지 떼를 확인하려고 깊은 눈 속을 헤매다가 시간에 쫓겨 포기한 적도 있었다. 라즈돌로예 기차역에서 두만강 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주민들의 정보만 확보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불함(不咸)-부르한 신앙은 스키토·시베리안 원주민 사회에 보편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분포돼 왔다. 이는 투르크-몽골어로 하느님을 지칭하며, 이후에는 부처님도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그 신앙 대상이 어떤 생태권에서 어떤 원주민들이 어떤 역사 배경을 가지고 형성되었는지는 제대로 연구된 적이 없다. 이를테면 그 성격이 남성이나 여성 중에 어느 것에 가까운지, 함의하는 색깔이 ‘붉음’인지 ‘밝음’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탐구해본 연구는 거의 없었다.

인터넷 덕분에 2000년 초에 필자는 후진 투바에서 선교하는 이철성 목사가 현지에서 하느님을 ‘부르한’이라고 한다는 정보를 이메일로 보내줘 이내 이를 확인하게 됐다. 한성용 한국수달연구소장은 근래에 컴퓨터로 검색해서 ‘가야’라는 물고기의 분포지가 흑해 언저리고 그것이 육당 최남선이 제기하는 불함 문화 기원지와 일치함을 내게 일깨워주었다. 순록과 더불어 물과 친연성을 갖는 문화권역에 소속되는 것들이어서 흥미롭다.
러시아 정교의 탄압으로 원주민의 샤머니즘이 잦아든 터전에 조용히 불붙기 시작한 알타이산의 신흥종교 ‘부르한이즘’이 금방 뇌리를 스쳤다. 육당은 이런 부르한 하느님 신앙권을 ‘불함문화권’이라고 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 나름의 역사 배경을 지니는 광활한 스키토·시베리안 생태 무대에서 구체적인 발전 과정을 통해 각각 다양한 변화를 경험했겠지만, 그런대로 제 나름의 ‘맞춤형 하느님’ 개념으로 정립돼오면서 일련의 부르한 하느님 신앙권을 형성해나왔을 터다.

이번 답사 중에 이에 관한 이야기 보따리가 줄줄이 풀려나오기 시작한 것은 물론 코리(순록)의 생태본지 무대인 북극해권으로 흐르는 장대한 두 강줄기, 즉 예니세이와 레나의 발원지라 할 바이칼 호에서다. 7월 12일에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부르한 중의 부르한을 모시는 바이칼 호 최대의 섬인 코리족 시조 탄생 설화의 무대 알혼 섬 부르한 바위에 도착했다. 부르한-하느님 바위가 자리 잡은 마을은 짐승들이 핥아먹을 염분이 바닥에 허옇게 깔린 ‘후지르’가 있는 후지르 마을이다.

스키토·시베리안 생태 무대가 다 그렇지만 바이칼 호수에서 한반도 천안 삼거리 버들공원에 이르기까지 물이 있는 곳이면 버드나무가 있고, 버드나무 떼가 있는 스텝-타이가면 대개 수렵-유목민들이 살아왔다. 버드나무 가지에는 흰색, 누런색, 그리고 붉은색이 있는데 저습지대의 붉은 가지 버드나무인 홍류 떼(Krasno talinik berba)는 고원 지대의 자작나무 떼와 함께 그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됐다.

눈이 덮인 설원의 잎이 진 홍류 떼는 복사꽃 핀 마을이나 피어오르는 불꽃을 떠올리게 하고 눈보다 더 흰 자작나무 줄기 떼들은 신비감마저 자아낸다. 황금빛 햇살을 받아 타오르는 툰드라의 붉은 불길 같은 홍류 떼를 인격신화한 것이 부르한-유화(柳花) 성모일 터다. 한국에 버들아기와 같은 말이 있듯이, 버드나무는 이 지역에서도 대체로 여성을 상징한다. 고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는 ‘버들꽃’이라는 뜻의 이름인데 최희수 교수(연변대)는 그대로 만주인들의 ‘보드마마’ 모태회귀 신앙과 직관된다고 했다.

유화’는 만주인의 ‘보드마마’와 직관

[##_'1R|cfile8.uf@130763464EC4B807161CB0.jpg|width="350"_##]'>불함(不咸)을 육당이 ‘밝음’으로 해석한 것과는 달리, 같은 시대를 살다간 몽골의 거물 언어학자 에린친은 ‘몽골비사’ 초두 몽골 여시조 알랑 고아 관련 기사에 나오는 ‘부르한·칼둔’의 ‘칼둔’을 일종의 버드나무로 보아 ‘부르한(不咸)’을 이와 관련시킨다. 원래 시베리아 타이가에 살았던 몽골 겨레의 오보도 실은 처음에는 돌이 아닌 버드나무로 만들어서 버드나무 오보(borgasan oboo)라고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버드나무’ 자체를 ‘부르칸(Purkan)’이라고 하는 허저(赫哲)말 단어는 ‘부르칸’과 ‘버드나무-보드마마 신앙’이 직접 접맥될 수 있음을 웅변한다.

용왕의 딸 하백녀 유화가 그렇듯이 버드나무는 바로 물과 직관된다. 물을 뿌려주면 잘 자라는 순록의 뿔(전병태 교수 보고)이나 쌍어문의 가야 물고기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몽골 여시조 알랑 고아나 유화, 그리고 그 원조라 할 북부여 동명성왕의 어머니 고리(槁離)국의 시비가 그렇듯이 그들은 햇빛을 받아 천손족을 잉태한다.
추측컨대 알타이산지 파지리크의 얼음 공주 여사제도 같은 유형일 수 있다. 더 원천적으로는 옥룡이 껴묻거리로 출토되는 홍산문화 만기(BC 3500~3000) 우하량 여신 묘(廟)의 여신도 이런 장대한 스키토·시베리안의 여신-부르한 신앙과 접맥될 수 있다. 통천무(通天巫)인 여사제가 하늘의 햇빛을 받아 천손(天孫)을 잉태하면서 보드마마인 ‘부르한’으로 성육신화(成肉身化)하는 것이다.

부르한 신앙은 조선 겨레 따라 발전

‘부르한’은 천손의 모태가 된다. 즉 ‘천손을 잉태하는 모태’로서의 ‘하느님’, 곧 ‘모성적인 하느님’이 된다. 작열하는 태양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고대 이집트나 잉카의 태양 숭배처럼 부성적이며 공격적인 절대자가 아니라, 툰드라-타이가-스텝으로 이어져 발효 식품이 유난히 발달한 이 지역 나름의 햇살 아래서 생명을 품어 안아 마음을 삭이며 순리로 키워내는 구체적인 한 생명의 모태화한 하느님을 ‘부르한’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 건조한 고원인 몽골리안루트 지역에서는 햇빛은 금빛이고 부르한 모태는 금빛을 하늘로 품어 천손인 알탄우룩(황금씨족)-김(金)씨를 잉태한다. 그래서 스키토·시베리안에게는 김씨가 고유명사가 아니고 천손-임금 핏줄이라는 보통명사다. 물론 아쿠타도 칭기스칸도 ‘알탄우룩’(Altan urug: 황금씨족)-김씨다. 지금도 만주족 황손들은 아이신교로(愛新覺羅: 황금겨레)로도 쓰고 김씨로 표기하기도 한다.

김알지도 당연히 그랬다. 햇빛이 여성의 육신에 내재화되어 천손을 잉태한 모태가 될 경우에는 ‘길림성야생식물지’(장춘, 1926)에서 ‘조선류’라고도 불린 홍류로 상징되는 보드마마가 되는데, 바로 이 ‘보드마마(柳母)’가 ‘부르한’인 이들의 모성 하느님이 된다. 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한 여인의 몸과 맘에 내재화해 회임한 모태로 다시 난, 모성적 사랑의 주체가 이들의 하느님일 수 있다.
따라서 이 경우의 ‘부르한’은 ‘밝음’이 아닌 ‘붉음’의 뜻을 갖는데, 그 붉음은 구체적인 생명 밖의 물리적인 불덩이와 같은 붉음이 아니라 구체적인 생명 속에 내재화한 가장 붉은 사랑의 심정-곧 모성적 사랑-생생지심(生生之心)으로서의 ‘심정적 붉음’이 된다.

붉음은 무당 사제의 상징색이다. 박혁거세의 박(朴)도 ‘밝’이 아니고 ‘붉’이다. ‘붉을 혁(赫)’자로 혁거세(赫居世: 弗矩內=붉은 누리)를 누리는 사제계급의 성이어서다. 흰색은 유목민의 주식인 젖의 색깔이어서 지극히 존중은 되지만, 삶의 방편일 뿐 홍색처럼 주체 생명의 심정적 존재와 본질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시공을 초월해서 부르한은 이들에게 굿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들에게 영원한 모태회귀 신앙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부르한 하느님 신앙 전통은 순록의 주식이 나는 ‘이끼의 길’이라는 조선 겨레의 이동로를 따라 발전해왔다. 주유소가 없는 광야로는 차가 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스키토·시베리안과는 달리 조선 겨레의 주류 한민족은 한눈팔지 않고 주로 시베리아-몽골-만주-백두대간-태평양으로 진출해 ‘초원의 바다’와 ‘바다의 초원’으로부터 쳐들어오는 침략 세력의 강력한 파고에 맞서며 한반도라는 ‘산성섬 요새’를 기지로 삼아 북방 수렵유목문화의 유서 깊은 전통을 가장 순수하게 고도로 발전시켜냈다. 그 추동력의 핵심 축이 부르한이즘이라는 것을 이번 코리안루트 탐사 과정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주채혁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몽골사>
<후원 : 대순진리회>